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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15. 2024

마지막 잎새와 나의 글쓰기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죽음을 앞둔 가난한 여류화가 존시에게 담쟁이덩굴의 남은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잎사귀가 생명을 담보하는 희망이었음을 말해준다. 폐렴에 걸린 존시는 하루하루 줄어드는 담쟁이덩굴을 보면서 자신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마침내 단 한 장의 이파리가 남았을 때 그녀는 이제 자신의 운명도 마지막이라고 예감한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 달리 혹독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그 이파리는 살아남았다. 그 사정을 아는 노 화가 베어먼이 자신의 목숨값으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노 화가의 죽음과 맞바꿔 그린 이파리 덕분에 고비를 넘겼고 마침내 살아야 할 희망을 찾는다. 만약 그 중간에 잎새가 떨어졌더라면 그녀에게 살아갈 희망은 사라졌을 테고 당연히 다음을 기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필사적으로 붙잡고 싶은 마지막 잎새가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브런치에 쓰는 글 한 편 한 편이 마지막 잎새처럼 느껴진다. 지금 나는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을 쓰는 중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글의 끈을 놓지 않는 일이다. 글은 오헨리 소설 속 존시가 그랬듯이, 내가 이 지옥에서 버티고 살아 나갈 희망을 준다.      

나는 평소 치유의 글쓰기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글을 써왔지만 그게 현실로 직접 다가온 건 이번 달이다. 그만큼 글 한 편 한 편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고도 죽지 않고 <사기>를 쓰면서 자기 삶의 존재 이유를 확인했던 것처럼, 수많은 작가들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글을 쓰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웠던 까닭을 이제야 어렴풋하게나마 알 듯하다. 등단 이후 20년이 넘은 이제야 진실의 문에 한걸음 더 다가선 느낌이다.      

인류 역사는 지옥에서 살아남았다. 그 역사는 다 파괴된 폐허에서 새로운 미래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아무 희망 없는 이를 죽을힘을 다해 버티게 만든 동력이었다. 누군들 지옥 같지 않았던 날이 하루라도 있기는 했을까? 특히 전쟁은 인간이 지닌 모든 것을 한꺼번에 파괴하는 힘을 갖고 있다. 요즘 전쟁의 양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을 넘어 이란까지 개입하는 확전 형태로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상황은 점점 더 악화 중이다.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죽음이 주변을 서성이는 하루를 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전쟁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체념하면서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건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오가는 상황이지만 우리 삶 또한 만만하지 않다.      

오늘도 누군가는 떨어지지 않은 마지막 잎새를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다. 그게 남들은 진저리를 치는 스팸문자일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일 수도 있고, 문자로 오는 알바 합격 소식일 수도 있다. 어쩌면 기다리던 전화 한 통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희망이란 말을 좋아한다. 생의 밑바닥에서도 그 말을 위안 삼아 또 하루를 견딜 힘을 얻는 것이다. 한때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말했다. 오늘 뜬 태양이 당신에게 가장 행복한 하루를 선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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