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두근두근, 신지도 명사십리
발길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블루 플래그에 뽑혔다는 신지도 명사십리로 향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글로벌 비영리단체 환경교육재단(FEE)에서는 100여 개의 기준을 점검하여 블루 플래그(BLUE FLAG)의 명칭을 부여한다. 한국에서는 4월에 신지도 명사십리가 유일하게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소나무 숲을 지나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들어서면 너른 백사장이 반겨준다. 명사십리 해변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면 모래 우는 소리가 십 리 밖에까지 울려 퍼진다 해서 ‘울모래등’ 또는 ‘명사십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맨발로 모래사장을 슬슬 걸고 있노라면 편안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솔숲을 지나 해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다른 힐링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고운 모래에서 발바닥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은 이 해변에 머무는 시간을 아깝게 만든다. 도심보다 음이온이 50배 넘게 나온다는 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공기가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한여름인데도 수온이 낮아서인지 바닷물은 서늘하고, 해수욕하기에 차가울 정도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여름 더위를 피해 물놀이 하러 나온 아이들은 신이 난다. 그걸 지켜보는 어른들도 덩달아 그 재미에 푹 빠진다. 신지도의 여름이 가고 있다.
신지도는 완도항 맞은편에 있는 섬이다. 그래서 완도타워에 올라가서 보면 신지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예전에 처음 신지도를 찾았을 때는 배를 타고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2005년 말 완도읍과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가 완공되면서 이제는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기가 훨씬 쉬워졌다.
대개의 서해안의 해수욕장이 그러하듯이, 신지도 명사십리는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그중에서도 뜨겁고 부드러운 모래로 하는 모래찜질은 관절염과 신경통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변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고동을 잡는다. 해변에는 흔하디흔한 게 조개이고 모래고동이다. 잠시만 주워도 바구니가 한가득이다. 소라게는 먹지 못하지만 모래고동은 맛이 달단다. 고동은 모래가 많기 때문에 다섯 시간 정도 바닷물에 해감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단다. 아이들은 오늘 저녁에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성스럽게 잡은 모래고동을 먹을 것이다.
엄마가 들려주던 바다 이야기는
고동이 밤새 만든 길이다
엄마의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매일 바닷물이 빠지면 함지박을 이고
밭에 나와서 몇 시간씩
물이 들어올 때까지 고동을 골랐을 것이다
그 기억의 끝을 잡고
오늘은 아이가 고동을 잡아 온다
아마 아이도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에게 고동 고르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
내일은 다시 고동이 길을 열고
바다로 나올 것이다
- <고동의 길>
그리운 충무공, 고금 묘당도
지금은 신지도를 비롯하여 고금도, 약산도까지 다리로 이어져 배를 타지 않고도 자동차로도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하다. 비록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금도는 이 충무공 관련 유적지가 있다. 완도 고금도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행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1598년 2월 17일. 정유재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에게 충무공은 여수, 충무, 통영, 명랑, 노량 정도의 지명과 잇닿아 있었다. 하지만 완도 고금도가 충무공께서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던 격전장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고금도는 명나라 수군도독이었던 진린이 병사들과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지금도 이곳에는 관왕묘를 비롯한 중국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이곳이 충무공이 마지막 머문 곳이라는 점이다.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한 충무공을 모셨던 곳이 바로 묘당도이다. 노량에서 전사한 장군의 유해는 노량 앞 관음포에 잠시 안치되었다가 조명연합수군 명군 사령부가 있던 묘당도에 머무른다. 이후 선산이 있던 아산으로 옮기기 전까지 80여 일 동안 충무공의 유해를 모셨던 곳이 바로 고금도의 월송대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조선의 백성과 조선 땅을 떠나면서 장군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부에서는 선조의 견제가 심했고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서애 유성룡마저 관직 삭탈 되어 안동으로 낙향한 터였다. 전쟁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고 더 이상 이 땅에 머무는 것은 충무공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지 않았을까? 신하를 믿지 않는 주군, 그를 견제하는 당쟁 세력들. 사방이 적이고 온 천지가 원수의 목소리였다. 그를 믿고 따르던 부하들과 백성을 제외하고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완도 수목원
남도가 사랑하는 완도 수목원은 1991년 개원한 한반도 최서남단에 있다. 숲 해설사를 공부하는 아내가 전에 한 번 다녀온 이후 강력하게 추천을 했던 곳이라 가기 전부터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받은 안내서에는 60분, 90분, 120분 코스별로 수목원을 도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이때만 해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코스가 너무 명확하고 간단했기 때문이다. 일단 90분 코스로 수목원을 돌기로 하고 사계정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계정원과 수변데크를 거쳐 산림박물관으로 향하는 코스이다. 하지만 이 코스를 지나면서 혼란스러워졌다. 다음 장소로 가는 안내 표지판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내서에 나와 있는 완도 수목원의 전체 규모는 2,033ha이다.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수목원에서는 표지판이 제 구실을 하지 않으면 방문객이 길을 잃거나 헤매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 수목원의 안내 지도만 보았을 때는 코스를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학생 교육용이라는 향토공예원을 지나 산림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전통한옥양식으로 지어진 난대림 전문 박물관을 지향하는 산림박물관. 사전에 해설사를 신청해서 듣는다면 유익한 시간이었겠지만 그러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산림박물관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완도 수목원을 대표하는 아열대 온실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최대의 난대림 자생지라는 말처럼 완도는 다른 지역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열대 온실의 규모도 그만큼 상당했다. 하지만 나올 때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 수생식물원이나 남원의 허브 테마 식물원을 갔을 때의 신선했던 느낌이 자꾸만 떠올랐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완도 수목원에서 길을 헤매는 사람은 나만은 아니었다. 내려올 때까지 ‘이 길이 맞냐’는 말을 몇 명이나 하는 걸 들었다. 설립 이후 거의 30년이나 역사를 자랑하는 수목원이다. 비록 일반에 개방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완도 수목원을 도는 내내 여러모로 씁쓸했다. 안내 데스크에서는 다음에 한 번 더 오시면 안내 표지판을 비롯해서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가을이 오고 있다
완도의 또 다른 매력은 인근으로 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무안, 강진, 신안, 해남까지. 잠시 발길을 돌리면 눈길을 사로잡는 근사한 곳이 너무 많다. 완도에서 가까운 거리에 수많은 볼거리와 먹거리가 도처에 넘쳐난다.
한반도의 여름은 뜨거웠으나 완도의 여름은 시원했다. 햇살은 강렬했으나 바닷바람이 일 때마다 더위는 한풀 꺾였다. 완도에서 지냈던 이번 여름은 내게 하나의 선물 같았다. 아침에 눈을 들면 바다가 눈부신 파도 빛으로 달려들었다. 점심 무렵 바다는 햇살을 그대로 토해내고 있었다. 저녁이면 숙소 앞 무인도 너머로 해가 꼴딱꼴딱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죽이며 해가 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늘 그렇지만 시간은 이번에도 내 편이 아니었다. 언제나 여행의 마지막 시간은 더 빠르게 지나가고 아쉬워진다. 물론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정이 길다고 여유를 부리거나 믿을 일이 아니다. 오늘은 백중사리. 해안의 물이 가장 많이 빠진다는 날이었다. 갯벌을 걷다 보니 막상 건질 게 거의 없다. 전복이나 해삼은 물속에나 있을 것이다. 물이 빠진 갯벌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 한구석도 그만큼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앞으로 집에 돌아가서도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눈앞에 출렁이는 바다를 두고 왔다는 생각에 밤잠 설치는 일도 많아지리라. 그만큼 완도에서 지냈던 시간이 오래 기억날 것이다. 그 아쉬운 시간이 가는 게 나는 또 아쉬워 바닷가로 나갔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여름인데도 바람이 너무 세서 추울 정도였다. 하늘에는 별 몇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람이 시원해서인지 밖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나는 마지막 밤을
완도 한적한 바닷가에서 보냈다
눈만 떠도 온통 바다여서
처음 태어날 때부터 바다와 함께 산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으면 베개 옆으로
파도 소리가 흘러갔다
오늘은 백중사리.
귀를 단단히 틀어막아도
파도 소리는 들리고
그 소리에 몇 번이나 잠을 깼다
- <지금은 백중사리>
완도는 대표 특산물인 미역과 김, 전복을 비롯하여 우럭, 광어 등 신선하고 풍부한 해산물 먹거리도 많기 때문에 가히 여행자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을, 당신이 좀 느긋한 삶의 여유를 맛보고자 한다면 완도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넉넉하고 푸근한 완도 바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