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통영에서 해 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통영에서 해 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달아공원 방향으로 가야 한다. 통영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명성답게 해질 무렵 이곳을 지나다 보면 왜 이곳이 일몰로 유명한지를 깨닫게 된다. 바다를 사정없이 불태우고 있는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왜 바다는 밤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렇게 멋진 노래를 불러 나그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새벽이면 바다는 제 몸을 다 열어 젖힌 채 또 다른 눈부신 장관을 보여줄 것이다. 이곳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통영을 사랑했지만 사람들에게 통영을 통영으로 새로 각인시키는 데 일조한 것은 동피랑 마을이다. 통영을 찾은 이라면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눈에 먼저 들어올 것이다. 한국전쟁때 통영에 자리잡았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산비탈에 마을을 꾸린 것이 동피랑의 기원이라 한다. 평지가 편한 것은 당연지사. 그런 평지를 두고 산비탈이나 언덕배기에 터를 일굴 수밖에 없던 이들의 삶이란 게 척박하고 힘든 것은 당연하다. 불과 수년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철거 예정지로 마을 입구조차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몇몇 지역 예술가들이 마을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벽과 계단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기적을 낳았다. 시에서는 철거하려던 원래 계획을 바꿔 동피랑 벽화마을을 예술마을로 지정함으로써 통영을 대표하는 명소로 부각시켰다.
이 마을 구석구석을 채운 벽화를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이 주목하고 사랑하면서 동피랑은 통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명소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닮은 벽화부터 미래의 꿈과 상상력을 곁들인 벽화까지 규모와 종류도 다양하다. 산의 거의 꼭대기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거나 뿌리 내릴 수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집이 들어서 있다. 그나마 집과 집을 이어주는 것은 골목이다. 동피랑 마을에는 골목 골목이 터널처럼 이어져 있다. 아마도 아이들은 그 골목을 놀이터 삼아 뛰어 놀고, 이웃과 이웃의 이야기가 골목을 통로 삼아 온 마을로 퍼져나갔으리라.
언덕배기 꾸불꾸불한 골목길이
뭐 볼 게 있다고
그 골목마다 그림을 그려두었나
동피랑에 어둠이 깔리면
사람들이 하나둘 도란거리며 돌아오는 소리
문지방 너머 들리고,
덩달아 낯선 이들 발소리도 서걱대나니
그 틈에 몰래 고향 떠난
그리운 얼굴도 언제나 보이려나
다음 세상에는
- 동피랑에 불 들어온다
골목을 가만가만 따라가다 보면 이곳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나온다. 도시 재개발의 입장에서 보면 난삽하게 산등성이를 채우고 있는 낡은 동네는 철거의 대상에 불과했다. 낡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마을 철거를 계획하였던 이들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게 만든 것은 벽화였다. 어쩌면 동피랑 마을 사람들에게 벽화는 그들의 이웃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항변이자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울분이었으며 직장에서 돌아와 가족과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요즘은 동피랑 마을은 통영을 찾는 이라면 한번쯤은 찾아야하는 곳처럼 인식되고 있다. 동피랑의 인기에 힘입어 서피랑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동피랑의 명성은 식지 않았다. 오늘날의 동피랑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으로 관광객을 빼놓을 수 없지만 이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디서나 관광객은 환대받지 못하지만 그게 생활권과 충돌할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오죽하면 베네치아에서는 관광객이 시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자고까지 하겠는가.
통영에는 동피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서가 있듯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피랑이 있다. 동피랑만큼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게 볼 만한 구경거리가 제법 있다. 동피랑이 골목으로 이어지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면 서피랑은 선이 좀 굵은 편이다. 동피랑이 시골 오일장과 같은 느낌이라면 서피랑은 조금은 세련된 편의점을 연상하게 한다.
여름철
바다도 후끈하다
저런 바다가 저런 산이 통영에는 넘쳐난다
바다 닮은 사내들과
해초 냄새나는 여인들이
운치 있는 통영에는 사시사철 넘쳐나고
그렁 그렁
눈물이 아롱 맺혀
울먹이는 저 여인 닮은
통 영
- 통영바다에서 길을 묻다
관광객이란 얄궂은 존재라서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 편의에 맞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지인의 삶이나 생활을 배려하지 않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편히 쉬고 싶은 집에 불쑥 사진기나 핸드폰을 들이대는 무례함을 좋아하는 이란 세상에 없는 법이다. 소음이나 생활 쓰레기는 말할 나위도 없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도 현지인과 관광객,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제는 당신이 통영에서 만난 진짜 통영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이다.
여름이어서 날은 겁나게 덥고
습기까지 긁어모은 날씨에
숨이 턱, 막힐 때
통영으로 가는 꿈을 꾸는 게다
물살이 시간을 가르고
투박한 경상도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면
통영시내 중앙시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충무 원조 할매 김밥집이나 슬쩍 들려서 김밥 한 줄 사 들고
항구 어디쯤에 질펀하게 앉아
여름이 마지막으로 사그라드는 소리를 들어보는 게다
졸리면
철썩대는 파도 소리 따라 바다가 써 놓은 지도를 읽어보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들이
하품을 하거나 무심히 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 보기도 하면서
항구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아까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서 어색한 웃음을 건네거나
무료하지만 언젠가는 그리워질 것만 같은 지금을 즐겨보는 것이다
- 한여름 밤의 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