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행에서 배운다.
떠나는 것과 머무는 것의 차이를,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간극을 깨닫는다.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는 우리를 가둬두지 못한다.
오늘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슴이 뛴다.
근래 나는 통영에 푹 빠져 있다. 통영에는 ㅇ이 두 개나 받침으로 있어서인지 발음을 하고 난 후에도 바로 끝나지 않고 살짝 여운이 남는다. 좀 더 끌고 가면 좋겠다는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소리는 음을 더 끌고 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돌고 만다. 그것은 먼 길을 떠나겠다고 당차게 출발했지만 갈 데가 없어 근처를 서성이는 어설픈 나그네의 몸짓과 닮았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혼자 나지막하게 소리내어 보라. 통영, 통영, 몇 번 되뇌이다 보면 그 소리는 어느새 내 안에 잠긴다.
아내의 표현을 빌자면 또 통영이냐는 투다. 예전에는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무렵이면 습관처럼 해남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최근 통영으로 옮겼다고나 할까. 언젠가부터 나는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봄을 맛볼 수 있는 해남이 그냥 좋았다. 2월 무렵 그곳에 가면 가장 먼저 봄 기운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긋나긋한 햇살을 받고 일렁이는 붉은 흙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먼저 뛰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순위가 바뀌었다. 해남의 자리를 통영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사람에게 공간이란 많은 것을 내포한다. 공간이 단지 지리적인 위도와 경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치열한 삶이 교차하는 자리이자 생존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공간은 시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공간이 사람의 역사이자 삶의 내력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전라도 사람에게 경상도는 그냥 동쪽 어느 지점에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때 경상도와의 거리는 단순한 물리적인 수치나 시간상의 간극을 넘어 심리적인 거리감까지를 내포한다. 그것은 통영을 포함해서 경상도 대부분 지방이 비슷하다. 심하게 말하면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먼 곳에 해당하는 강원도만큼의 거리 이상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도시
거기서는
서두르지 않아도
누비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거기 하루도 그럴 것만 같은
통영
가만 읇조리면
바다 내음이 입에 가득 고이는,
가만 따라가면 그리움이 번지는
내 마음의 두 번째 고향
통영
- 통영 밤이나 같을까
내게 통영이라는 지명은 경상도의 한 부분을 넘어서 가슴 설레는 단어이자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이름이었다. 안타깝게도 통영에 가기 전 느꼈던 설렘은 도착한 후의 흥분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몇 번의 통영행을 거듭하면서 설렘은 더 편안하고 느긋하게 통영을 볼 수 있는 여유로 변했다. 마치 예전부터 통영을 잘 알았다는 것처럼,
통영의 역사는 삼한시대로 거슬러 간다. 삼한과 가야시대, 그리고 삼국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통영은 그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부침을 겪었다. 선조37년(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시)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통영의 명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 통영(統營)이니 처음 내가 통영을 들었을 때 그리 살갑지 않은 이유가 다 있었다. 사실 통영이라는 말 속에는 쟁쟁한 쇳소리, 전쟁터를 떠도는 원혼의 서러움이 담뿍 스며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니 통영이라는 발음에는 유장미보다는 촉급함이 더 배어 있는 게 당연하다.
나는 통영을 알게 된 후 가끔 아내에게 통영 이야기를 자주 했다. 통영앓이나 할까. 지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도시는 많지 않다. 내게 그런 느낌을 주는 도시는 파리나 프라하 정도이다. 비록 에펠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했어도 지금도 파리를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예전에는 그게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았던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와즈의 교회>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했으나 잘 생각해보면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조만간 나는 파리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쏘다니거나 센강에서 해가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볼 것이다. 비오는 파리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우울한 음악을 듣거나 하루 종일 바쁘게 지낸 후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레옹 식당에서 느긋하게 홍합요리를 먹고 있을 게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가 많지만 나는 그 중 통영이 제일 좋다. 통영의 매력은 강구안처럼 허리가 잘룩한 바다를 품에 안고 있는 푸근함에서 나온다. 그것은 때로 호수 같고 강을 닮았다. 하기야 강구안 포구 모습만 보고 있으면 누가 거기를 바다라 하겠는가. 호수라고 우겨도 믿을 만큼 강구안은 잔잔하고 편안한다. 분명히 바다이면서도 바다가 아닌 느낌을 주는 곳이 바로 강구안이다. 바다를 인접한 도시 중에 이와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는 내가 아는 한 거의 없다. 아, 비슷한 느낌의 여수 방죽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방죽포는 통영처럼 사람이 북적이는 동네가 아니다.
통영의 숨은 매력은 아마도 사람일 것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통영 사람들은 친절했다. 그들의 삶이 예전부터 그러했다는 듯, 나를 이방인으로 맞이하지 않고 살갑게 대했다. 그래서인지 몇 번 안 갔을 뿐인데도 오래 전부터 살았던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싱싱한 해산물을 취급하는 재래시장이 발치에 있고, 가지각색의 다양한 맛을 자랑하는 꿀빵을 비롯해서 충무김밥집까지 유명한 맛집이 강구안을 끼고 길게 드리워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통영의 누비를 대표하는 아씨 통영누비 명품관의 손대표님과 갈 때마다 선도 좋은 물건을 값싸게 주고 게다가 가면서 먹으라고 덤까지 건네는 건어물 가게 아저씨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이들이다.
나도 언젠가 떠나야겠지만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겠다
노을을 보지 못했다고
해가 지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나만의 세상을 그 언저리에 얼마쯤은 남겨 두겠다
다음을 기약하며
- 한여름 밤의 꿈 1
집에서 2시간 남짓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이런 도시가 있다는 게 나는 참 좋다. 그래서 물회를 좋아하는 아내가 물회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나는 은근히 곁에서 부추긴다. 물론 우리 지역에도 물회집이 있기는 하지만 통영에서 먹는 물회만큼 맛은 없다. 물회가 유명한 집은 정갈하고 푸짐한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바닷가에서 먹는 물회는 우선 들어가는 재료 자체가 다르다. 입으로 들어가기 전 눈이 먼저 푸릇푸릇한 바다를 맛보는 셈이다. 이러니 다른 지방에서 바닷가의 싱싱함을 따라 잡기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아내는 굴을 좋아한다. 특히 찬바람 불면서 굴 수확이 제철을 맞을 때면 마음이 설레는 모양이다. 그다지 굴을 즐겨하지 않는 내가 마트에서 굴 코너를 지나칠 때마다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누구나 공감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통영만큼 알이 굵고 실한 굴이 나오는 곳은 없다. 제철을 맞은 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굴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축복이자 은사에 가깝다. 이처럼 싱싱한 해산물이야말로 우리 부부가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해서 통영으로 발길을 옮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통영 바다가 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