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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시월 Oct 31. 2016

정동

초단편 소설




그이는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들었다. 낮이 되니 조금씩 몸이 따뜻해졌다. 정동길 가로수들도 그이처럼 따뜻해지고 있었다. 패치워크 한 것처럼 물든 노란 은행나무와 단감색 단풍나무들의 행렬이  나뭇잎에 가을 햇빛을 채우고 있는  같았다. 그이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다 멈췄다. 소담한 길에 오가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나무를 찍고 싶었지 사람을 찍고 싶은  아니어서 한적한 길이 나올 때까지 그냥 걸어보자 싶었다.


 정동길의  다른 그이는 스타킹이 신경 쓰였다. 아침에는 분명 스타킹을 신어야 했는데 지금은 당장이라도 스타킹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발바닥에는 벌써 땀이 나는  같았다. 추운 것도 싫고 더운 것도 싫으니  날씨에  입기가  곤란하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출근길이라는 걸 잠깐 깜빡할  있었다. 오늘은 정동에 있는 까페에서 인터뷰가 있어서 점심을 먹고 바로 외근을 나왔다.


 사무실을 나와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을 마주 했을 때 기분이 좋아졌던 것도 잠깐이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할 때쯤 스타킹을 벗지 않고 외근 나온 걸 후회했다. 지하철은 에어컨이 틀어져있어서 후회는 잠깐 자부심으로 바뀌었지만, 내려서 정동까지 걸어오며 자부심은 금방 후회로 다시 변했다. 잠깐 멈춰 서자 바람이 불어서 조금 땀이 식는 것 같았다.

 이화여대 건물에 걸려있는 ‘대한민국 여성 교육사전시회 현수막이 혼자 녹색으로 나풀거렸다. 잠깐 들렀다  시간이 되지만, 사무실의 누구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가쁘다. 다음에,라고 지나치지만 보러 가지 않게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집 가방을  아이들이  줄로 서서 스마트폰으로 아마도 나무를 찍으며 지나갔다. 아이들은 들떠보였고  앞에서 아이들을 챙기는 또래 여자는 나무를  마음 같은  들지 않는  같았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도 서로의 눈빛을 살피느라 바쁘다. 아이들에게도 나무를  시간은 많지 않은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그이는 또래 여자의 고단함이  짠했다.


2 아니면 3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은 앞면이 모두 유리창이었다.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는 유리창인지 가을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구름이 유리창 안에서 서서히 흘러갔다. 그이는 마음을 정했다.  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가을 하늘 속에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같았다. 그러고 보면, 가을 하늘을 비행하며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생각해보니 가을에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는  같기도 하다. 그이는 비행기하면 구름과 비행기 날개와 파란 하늘만 떠올랐다. 언젠가 가을 하늘 속에서 커피를 마셔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이가 까페에 들어섰다. 까페는 널찍하고 느긋했다. 1층도 좋았지만, 가을 하늘 속에 있고 싶어서 들어왔기 때문에 2층으로 올라갔다. 죽고 사는 얘기를 탁구 치듯 주고받으며 얘기하는 중년 사람들 모임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혼자 일을 하는 사람들의 서로를 모르는 공동체 같은 조용한 분위기가  섞여있었다.  그이는 은행나무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파랗게 물든 유리창과 노란 은행잎이  어우러졌다. 어떤 커피를 마실까 생각하며 의자에 가디건을 걸쳤다. 그이의 시선이 까페  거리를 무심히 향했다. 가을 거리에서 혼자 초겨울옷차림을  사람이 멈춰 서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주말도 아닌데 놀러 나와서 그런가 보다는 상대방의 웃음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그이는 일정을 떠올렸다. 인터뷰가  시간 밀리면 어떻게 일정을 조정해야 야근을 하지 않을  있을까. 어쨌든 상대방의 일정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는  알고 있다. 그이는 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스마트폰을 들고 잠깐 멍하니  있었다.  시간을 어쩐다. 정동길을 걸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아까 지나간 아이들처럼 왁자지껄한 행렬이 낙엽처럼 팔랑일  같았다. 그이가 작게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순간, 눈에 호수가 비치는  같아 자세히 보니 까페 유리창에 가을 하늘이 담겨 있었다. 까페문이 열려있었다. 그이는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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