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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시월 Nov 14. 2016

어느 날의 오렌지 차

초단편 소설


정민은 핸드폰 볼륨을 높였다. 옆에 앉은 사람이 툭툭 내뱉는 돈의 단위만큼이나 확 올렸다. 핸드폰으로 듣던 음악은 음량이 올라갈수록 주변에 보호막을 쳐주는 것 같았다.


 까페에 하얀색 롱패딩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다시 지나가서 자세히 보니 하얀색이 아니라 베이지색이었다. 그 사람은 스마트폰을 연신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민은 읽고 있던 책을 마저 볼까 덮어놓을까 고민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이 실린 문예지이지만 몇 장을 읽다 멈췄다. 요즘은 어떤 책의 문장도 뉴스 헤드라인처럼 흥미롭지 않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패가 제일 한심한 모습으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정민은 현실이 어디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민이 알고 있던 현실은 사라져 버렸다.

스마트폰 속에서 열띠게 바뀌는 뉴스 헤드라인들이 현실인가? 과연 부패의 핵심에 있지 않은 사람이 죽기 전에 현실이 뭔지 알 수 있을까? 현실이란 뭘까.

현실은 오렌지주스 같은 건지도 모른다. 진짜 오렌지가 몇 퍼센트 포함되어서 진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진짜라고 할 수도 없는 오렌지주스.


정민은 아직 따뜻한 오렌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기만큼이나 진한 오렌지의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정민은 느꼈다. 정민이 살면서 알게 되는 현실은, 그저 진짜 오렌지가 든 차를 마시는 것 정도일 것이다.  

견실한 과일, 신선한 채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곡물. 귀에 닿는 음악소리.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


정민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이 뭔지 알 수 없을 것이었다. 그제야 정민은 우주비행사가 되려는 사람들과 우주비행사의 체험을 들으려고 열망하는 사람들을 조금 이해할 것 같았었다. 높은 곳에 가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높은 곳에 있으면 세상이 더 잘 보일 거라고 믿었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가 보여주는 건, 높은 곳에 올라가면 제 입맛에 맞는 현실을 만들어내 다른 사람들을 가둘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민은 세상이 가두리 양식장으로 가득 찬 바다처럼 느껴졌다.


진짜라고, 진짜니까 집중할 거라고 오렌지 차에 열중해봐도 이 오렌지 차가 진짜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정민이 믿을 수 있는 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것뿐이었다. 정민도, 옆에 앉은 사람도, 흰 패딩을 입은 사람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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