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도 봄, 가을은 짧았지만 계절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언젠가부터 기나긴 겨울과 겨울 같은 봄, 여름 같은 봄, 기나긴 여름, 여름 같은 가을을 겪어내면 한 해가 지나가는것 같다.
봄과 가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더 짧아질수록, 최대한 만끽해보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가지 않던 벚꽃놀이도 가고 가을을 즐기고 싶어서 고궁으로 산책도 가게 됐다.
사람들이 벚꽃을 보며 누르는 셔터에 담긴 시간을 멈추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서 정말로 봄의 시간을 조금더 늘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씨가 따사로운 햇살이나 시원한 바람으로 봄, 가을을 느끼게 허락해주어도 미세먼지가 허락하지 않을 때도 많다.
황량하게 사막행성으로 변해버린 지구의 미래를 SF작품으로 볼 때 이제는 먼 미래의 일로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황사마스크를 쓰고 미세먼지로 인해 누런 하늘을 보며 걷다보면 그런 미래가 성큼 다가온 것 같다.
매년 더 뜨겁고 습해지는 여름, 빨라지는 겨울을 살다보니 계절이 시간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지치고 끈덕진 나날을 넘으면 덜덜 떠는 겨울을 살아야하고, 그 다음은 또 지치고 습한 나날과 겨울의 반복.
원하는건 맑고 적당히 서늘한 날씨에 큰 나무들이 가득한 길을 걷는 것인데...
계절의 시간처럼 인생의 시간도 그런 순간들을 너무나 드물게 허락한다.
그래서 가끔 좋은 순간이 찾아오면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게 되나보다.
사진으로 담느라 정작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아쉬워서. 아쉬워서.
내일은 여름은 가고 가을 혼자 거리를 거니는 날씨였으면 좋겠다.
-2018년 초가을에 쓴 글인데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