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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시월 Jul 19. 2016

여기까지만

초단편소설

커다란 거울이 움직인다.

유리창 같은  문이었다.


엄마를 따라 모두 바빠 보이는 거울문 안쪽에 들어갔다. 좋은, 냄새가 났다. 엄마는 마트보다 여기를 좋아한다. 엄마 얼굴에 웃음이 있어서 안다.


나는 마트를 더 좋아한다. 마트는 늘 새로운 물건으로 가득하다. 읽어야 할 글자가 많다. 까페의 물건은 늘 똑같지만 사람들은 마트처럼 계속 바뀐다. 아이들이 마트만큼 많지 않아서 어떨 때는 여기가 더 마음에 든다.
엄마는 여기를 더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마트에 들어설 때 엄마는 언제나 이마를 찡그리고 있는데, 여기 들어갈 때는 내 레몬색 모자처럼 엄마 이마가 반듯하다.


엄마는 자리부터 잡는다. 엄마가 좋아하는 자리는 세 가지다. 창가에 있는 나무 탁자, 안족에 놓여 있는 녹색 가죽 소파, 커피 만드는 게 보이는 의자가 딱딱한 자리.

난 소파를 좋아한다. 낮아서 올라가기 쉽다. 햇빛이 좋을 때는 나무 탁자 자리도 괜찮다.
 

오늘은 녹색 소파도 나무 탁자 자리도 비어있지 않아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야 했다. 의자가 높아서 엄마가 나를 들어서 올려줬다. 어린애처럼.
난 아이지만 어린애는 아니다. 나보다 애기들도 자주 만난다. 난 동생들도 꽤 많은 그런 애매모호한 나이쯤의 아이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어린애라고 생각한다.

“핫초코 먹을래?”
“아니.”
“왜?”
“커피 마실래.”

엄마가 잠깐 웃는다.

“커피는 엄마들만 먹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메뉴판을 하나씩 읽는다. 망고라떼가 궁금했다. 그래도 나는 입을 곡 다물고 커피를 만드는 오빠를 봤다.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넌 물 마셔.”

엄마는 조금 화가 난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난 발을  까딱이면서 엄마가 어떤 언니에게 주문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예쁜 언니다. 여기는 예쁜 언니, 오빠만 커피를 만들 수 있다.

까페에는 어른들만 가득하다. 어린이는 나 혼자다. 병아리색 모자를 쓴 아기가 있지만, 아기는 어린이가 아니니까. 아기는 커피를 마실 수도 없다.
엄마가 내게 돌아왔다. 하얀색 찻잔에 하얀색 구름이 떠 있었다.

커피는 한 잔뿐이었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탁자에 놓여있는 보라색 꽃을 노려봤다. 화가 난 것처럼 행동하면 눈물이 쏙 들어가기 때문이다. 꽃잎이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다섯 개. 바로 같아. 꽃잎이 다섯 개라니.

엄마가 찻잔을 내밀었다. 나는 엄마를 올려다봤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색 구름에 혀를 대보았다. 사르륵하며 하얀색 구름이 솜사탕처럼 입에 들어와서 조금 놀랐다. 구름은 달지 않고 엷은 우유맛이 났다. 구름 사이로 커피 냄새가 올라왔다.

“여기까지만.”

엄마가 찻잔을 가져가 버렸다. 엄마는 찻잔을 들어 냄새를 살짝 맡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얀색 찻잔에 내 모습이 말끄라미 비쳤다. 나도 엄마처럼 어른이 되고 싶다. 어서.


엄마, 난 그런 생각 하고 있지 않았어. 커피를 마시고 싶지도 않았고 엄마가 찻잔을 가져가서 삐지지도 않았어.

엄마는 오늘 한 번도 웃지 않았어. 엄마는 내 뾰로통한 모습을 좋아하는 걸 알아.

여기 올 때는 늘 그런 날이야. 엄마에게서 웃음을 볼 수 없는 날. 아빠가 늦게 집에 왔거나, 술을 마시고 왔거나 한 다음날처럼…….

내가 커피를 마시려고 하면, 엄마는 늘 ‘여기까지만.’ 하고 얘기해. 그럼 난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엄마는 처음으로 웃음을 보여.

난 안심이 돼서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해. 울면 모든 게 끝나버리니까 울지 않아. 내가 언제까지 엄마를 웃게 하는 사람일 수 있을까? 아빠처럼 엄마를 웃지 않게 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 오늘은 성공했어.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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