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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Apr 05. 2020

너는 왜 그렇게 바빠?

너는 왜 그렇게 바빠?


타닥타닥. 끊이지 않는 키보드 자판 소리가 빗소리처럼 이어지고, 덩달아 시선도 요리조리 바쁘게 움직입니다.


깜빡깜빡. 커서가 머무는 곳에서 생각이 머무르고, 줄줄이 이어지는 생각들에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며 모니터 속에 빠져들 즈음, 동기가 파티션 너머 고개를 내밉니다.


"커피 마시러 갈래?"

자그마한 한숨을 삼키며, 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항상 바빠?"

동기는 아쉬움 서린 질문을 남기곤,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사실 잠깐 시간 내서 커피를 받아오는 것. 따져보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닐 텐데, 잠깐 갔다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왜 그렇게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시간적인 여유도 여유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업무의 제일 바닥에 있는 실무자니까요. 실무자에겐 실제로 '쳐'내야 할 업무들이 매우 많습니다. 정말 있는 힘을 다해 쳐내지 않으면, 스케줄러 속 완료할 수 있는 업무는 몇 개 없을 겁니다. 한 줄로 정리되어 있더라도, 생각보다 꽤 많은 손이 필요한 업무거든요.


대행사로부터 받은 자료들을 일차적으로 빠르게 검토해서, 수정을 요청합니다. 수정안이 오면 팀장님까지 순차적으로 올라가며 컨펌도 받아야 하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가 발생합니다. 디자인이나 영상 시안의 경우에는 일이 좀 더 복잡해집니다. 서로의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들을 맞춰가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부적으로는 팀원들, 외부적으로는 대행사, 매체사, 디자이너와 합을 맞추고, 최종 컨펌을 받는 그 과정의 바닥에 제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다른 사람보다 더욱더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네, 저는 그래서 바쁩니다.






의도치 않게 달려온 사람


생각해보면 처음 듣는 질문은 아닙니다. 너는 왜 그렇게 항상 바쁘냐는 질문, 그리고 지금만 바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저는 항상 바빴습니다. 학생 때도, 인턴을 할 때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말이죠.


어떤 이들은 제가 바쁜 건 제 성향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겠죠.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저를 '부지런한 사람'으로 착각하니까요.  


사실 저는 늦은 아침 눈을 떠 해가 중천을 넘어갈 때 즈음 겨우 이불 밖을 나서는 게으른 여유를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할 일을 미루고 또 미루는 게으름뱅이라서, 놓치는 것들도 꽤 많습니다. 뭐 굳이 정의하자면 저는 부지런하기보단, 책임감이 강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겁이 많아 의도치 않게 숨가쁘게 달려온 사람이구요.

시몬스테라스의 장줄리앙 작품 / 저렇게 마냥 자는 걸 좋아하는 1인 :)


시작은 불안함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대학 입시가 불안해서, 1~2점 차이에도 눈물을 쏟으며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여전히 한 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제 앞길은 흐릿했거든요.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조차 제대로 모르고 그저 흘러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휩쓸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표가 고개를 들때면 어느 순간 또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하고 있노라면 안도감이 들었죠. '나는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뭐라도 남는 게 있겠지'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호기심은 아주 좋은 구실이었죠. ‘재미있어 보이니까, 멋있어 보이니까, 궁금하니까, 한 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 말입니다. 불안함에 발을 떼어, 호기심이 안내하는 곳에 한 발을 내디디고, 새로운 곳에 도착하니 막상 또 열심히 잘해보고 싶은 겁니다. 열정이 타오르며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좋은 결과물들이 나왔습니다. 이런 결과물들을 보니 뿌듯하고, 신이 나기도 했죠.


하지만 그때 잠시, 뭔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왜 같이하는 일인데, 나만 이렇게 일이 많지?'


나와 온도가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밀려오는 당혹감과 억울한 감정이 저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생각보다 높았던 제 온도 덕분에 모임에 찬물을 끼얹는 프리라이더 따위는 가뿐히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처럼 어정쩡하게 발 걸치고 이도 저도 아닌 스펙 한 줄을 얻을 바에야, 아예 푹 빠져들어 흠뻑 젖어버리자고. 그렇게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냈을 때, 결국엔 그런 것들이 남아 제게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경험들은 제가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때 당시 찾았던 느낌표는 제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지금 이 말이 위안이 되지 않는 건,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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