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잘 산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는 사실.
오늘의 점심은, 어제 막걸리를 함께 마셨던 국수의 국수집으로 정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렇게 마주했던 얼굴을 식당에서 다시 보니 괜스레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동생 같은 느낌이었는데,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니 사장님 포스가 물씬 풍겼다.
사람은 역시, 자기 일을 할 때 가장 멋있어 보이는 법인가 보다.
망고는 비빔국수를,
나와 썸머는 물국수를 시켜서 먹었는데
슴슴한 맛이 매력적인 촌국수의 느낌이었다.
농사일을 하다가 중간에 와
후루룩 먹어 배를 채우기 좋을 것만 같은 맛에,
든든하게 배를 불릴 수 있을 것 같은 넉넉한 양까지.
보리향기 국수집은 김치를 직접 담근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두부에 곁들여 먹는 김치에서 감칠맛이 살아 돌아,
입맛을 제대로 돋워주었다.
국수는 우리에게 음식을 내주며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더 말하라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괜히 더 사장님답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홍의별곡 사무실에 돌아와
필요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소포장을 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빗소리가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면 마치 자리를 내어주기 아쉽다는 듯
여름의 열기가 마지막 눈물을 흘려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비가 한 번 왔다가 그칠 때마다
공기는 조금 더 선선해지고, 그 변화가 고스란히 피부로 느껴진다.
오늘은 수요일이었지만
목요일부터 일정이 있는 나는 마산역으로 향했는데,
다행히도 마산역으로 가는 도중에는 비가 그쳐있었다.
망고와 만듀, 대표님인 왕바우는 대구에서 야구를 보러 간다고 하여
나를 마산역까지 데려다주고 가는 것이었는데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어디서나
속도를 약간 내 쌩쌩 달릴 수 있는 의령과는 달리
마산으로 들어오자마자 앞뒤로 차가 빽빽하게 막혔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이 그렇게 도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의령에서 지내다 마산으로 들어오니 역체감이 확 느껴졌다.
의령에서 지내는 그 짧은 시간에 어쩌면 의령에 벌써 적응을 한 것일지도 몰랐다.
예전에 촌에 살 때는 도시에선 절대 못 살겠다고,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건 도시에서 직접 살아본 경험이 없었기에
도시의 삶이 어떤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한참을 살다가
순천이나 의령, 청양 같은 곳에 처음 가면
이번엔 또 ‘어떻게 이런 시골에서 살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 지역에서 실제로 살아보지 않고,
그곳의 일상과 삶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지금 몸담고 있는 단체나 환경이 최선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새로운 것에 노출되기보다
이미 적응해버린 환경에 그대로 머무는 게
더 편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적응하는 아주 잠깐뿐이고,
한 번만 지나고 나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이 결국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과 가벼운 분식을 저녁으로 먹으며 생각했다.
과연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그건 회사를 다니며 내내 고민해왔던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잘 산다는 건 늘 상대적이며,
나만의 기준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는 점점 확실해진다.
더 가지겠다는, 더 필요하다는 욕심만 버리면
내 손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아주 작고 단순한 진리 하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