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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 (6)

6. 평소에 얼마나 나를 낮추고 살았던 걸까

by 이양고


1. 좌충우돌 자전거 여행기


청춘만개에서는 신분증을 맡기면 무료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대여품목은 자전거, 태블릿, 이동식 빔프로젝터, 노트북, 블루투스 무선마이크(강의용, 유튜브용), 전동 드릴 드라이버를 대여할 수 있다.
대여기준은 가구당 최대 2가지 물품까지 대여 가능(동일 품목은 1개만 가능)하며 최대 2박 3일간, 한 차례만 연장 가능하다.
대여를 원하는 신청자는 전화 예약 후 신분증을 지참하여 현장 수령해야 하며 신분증에 기재된 주소가 실거주지와 다를 시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해야 한다.
물품대여 서비스 운영시간은 평일 9시부터 18시까지다.

출처 : http://www.jji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24269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썸머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까지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었고,

망고가 자전거 투어를 하기 좋은 길을 알려준다고 해서 나와 또치도 함께 하게 되었다.




청춘만개에서는 자전거가 녹슬지 않게 잘 관리하고 계셨는데,

그 덕에 1시간 30분이나 자전거를 타도 불편함 없이 탈 수 있었다.




청춘만개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출발하는 우리 모습.


가다 보니 바퀴에 바람이 약간 빠진 것 같아서 홍의별곡 근처에서 바람을 넣으려고 했지만

튜브에 공기를 주입하는 용도가 아니어서 실패.

읍내로 가다보면 바퀴에 바람 넣는 곳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우선 읍내로 출발하기로 했다.



벌써 가을이구나.

이제 낮에 긴팔을 입어도 덥지 않다.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아져

피부로도 눈으로도 가을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을 느끼면 왜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의령에 관련된 이야기도 중간중간에 듣고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잠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 같은 정자도 보고,

카페쇼에서 팔았던 차가 제작되는 다향연 본사의 모습도 보고.


의령 한 달살기가 시작된지 어느덧 2주차에 접어들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것을 못 본 채로 지내왔다는 것을,

자전거 투어를 하는 오늘에서야 역설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축제 기획자로 이곳에 와 있다.

그러니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늘만 봐도 여름과 가을을 알 수 있다.

여름엔 온도가 높고 높은 습도 때문에 경계가 뚜렷한 뭉게구름을 주로 볼 수 있지만 가을은 기온이 낮아지고 습도도 낮아져 흩어진 얇은 구름을 볼 수 있게 된다.


여름은 더워서 힘들지만 뭉게구름을 눈에, 마음에 담을 수 있어 좋았고

가을은 뭉게구름은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야외에서 뭘 해도 산뜻하게 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름엔 자전거를 탈 엄두를 내기 어려웠지만

가을 바람이 살랑이는 오늘은 그저 자전거를 타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모든 계절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의령에는 비교적 자전거를 탈 수 있게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혹시 모를 안전 사고를 대비해서 만듀님이 차로 우리 뒤에서 보호를 해주셨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속도를 내고 달려오는 자동차에

겁을 잔뜩 집어먹곤 하는데

오늘은 든든하게 지켜주는 만듀님이 있어

그저 자전거를 타는 일에만 몰입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어렸을 땐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서
이유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달려가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할 일도 많아지고, 볼 것도 많아지고,
해야 할 일들이 쌓이다 보니 자전거 타는 재미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의령에 와서, 조금씩 짙어지고 있는 가을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자전거를 타고 있노라니
내가 자전거 타는 걸 이토록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얼마나 많이 잊고 지내온 걸까.






오늘의 점심은 육회비빔밥!


아무리 가을이 짙어지고 있다 해도,
뜨거운 햇볕 아래서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나니 시원한 음식이 당겼다.


그래서 냉면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는데,
막상 자리에 앉고 보니 면보다는 밥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더 좋을 것 같아
육회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육회비빔밥은 호불호가 약간 갈렸지만,
냉면과 육회비빔밥 중 뭐가 더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육회비빔밥이 조금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입맛에 냉면은 여전히,
진주식 냉면이 최고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2.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뒤,
세탁기를 돌리러 청춘만개로 향했다.


잠깐 정비하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모이기로 했기에,
나는 서둘러 세탁기에 옷을 넣어두고 잠시 쉬었다가
약속한 시간에 맞춰 홍의별곡으로 향했다.




망고가 읍내에서 사다 준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니,
시골은 역시 차가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산이 코앞에 있는 듯 가깝고,
작은 냇물이지만 졸졸 흐르는 강까지 곁에 있는 이런 시골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이 스쳤다.


아마 내가 19년 동안 촌에서 살아온 사람이기에,
예전의 감각이 다시 깨어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또래들과 어울려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


어쩌면, 이런 게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었을까.




참가자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직장 생활 경험이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다들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딱딱 알아서 해냈다.


나는 고객들이 처음 와서 받아볼 게임 설명서를 제작하는 걸 담당했는데,

마케터로 일할 때의 경험을 살려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회사를 4년이나 다니면서도 늘 마케팅을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을

그저 회사를 다니며 배웠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1인분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이 드니

회사에서 보낸 시간들이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 있었다.

오늘 우리의 저녁은 두부김치와 막걸리.


차를 몰고 마트에 가서 뭐라도 사올 수 있었지만,
일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려
결국 홍의별곡 사무실에 있는 재료로 해결하기로 했다.


다행히 요리를 잘하는 우리의 요리사, 망고가 두부김치를 아주 맛있게 만들어주었다.




오늘은 또치가 저녁에 약속이 있어
칠곡 마을 앞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에 가야 했는데,
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나가 또치를 배웅해 주었다.


빨간 옷을 입은 친구는 홍의별곡 근처에 있는 '보리향기'라는 국수집 요리사,
‘국수’라는 친구다.


이 마을에 또래가 없어 심심할 때면 홍의별곡에 놀러 오곤 했는데,
그 인연으로 오늘 저녁을 함께하게 된 것이다.


같은 마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오며 가며 마주친 얼굴과 약속도 없이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


이런 기분은 학창시절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막걸리에 취한 게 아니라, 좋은 기분에 취한 듯한 밤이었다.






또치를 배웅해주고 돌아온 우리는

망고가 좋아한다는 영화 '어나더라운드'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나더라운드> 줄거리, 출처 네이버

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매일이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르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기가 생긴 마르틴의 후일담에 친구들 모두 동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정한다.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할 것!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도전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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