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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 (4)

4. 일하고 먹는 밥이 더 맛있는 이유

by 이양고

1. 자 가보자, 일하러.



오늘도 카페쇼 부스를 지키러 부산으로 출발.

어제는 부스를 세팅하기 위해 일찍 출발했는데 오늘은 출발 시간이 8시라 여유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오자마자 시음을 위한 차를 만들고,

좀 더 챙겨온 물량을 채워놓고.


하루 해봤다고 그새 일에 익숙해진 것인지 뭘 해야하는지 눈에 착착 들어온다.




오픈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늦지 않게 식사를 마치기 위해 김밥을 챙겨 들고 홀로 나가, 썸머와 나란히 앉아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부스에 서서 고객을 맞이하고, 차를 권하고, 판매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분명 재미있다.

하지만 챙길 것이 많다 보니 긴장감이 곧 피로로 이어지곤 한다.


아무래도 ‘일’이라는 이름 아래 서 있기 때문일까.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 혹여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면 어쩌나 하는 조심스러움이 온몸을 더 굳게 만든다.




확실히 목요일이었던 어제보다 박람회 안을 오가는 사람은 늘었지만,
정작 부스를 찾아와 물건을 사려는 이들은 여전히 많지 않았다.


작은 부스에 다섯 명이 모여 있는 모습은 다소 어색하고, 어쩐지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우리는 망고와 만듀를 부스에 남겨둔 채,
카페쇼 바로 옆에서 열리고 있던 건축박람회를 구경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쇼는 현장 등록 기준으로 10,000원의 입장료가 있지만 건축박람회는 무료로 관람 가능한데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아 신나게 구경했다.


역시 일하는 도중에 하는 땡땡이가 제일 신나는 법인가 보다.





우리 부스 바로 앞에는 ‘비틀’이라는 술을 파는 부스가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부스는 자연스럽게 다가가 시식도 하고 구경도 할 수 있지만,
바로 앞에 있으니 왠지 멋쩍어 어제는 지나치기만 했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 마침내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하는 부스였던 탓일까.

내가 다가가자마자 '술 마시러 왔어?' 하는 표정으로 사장님은 술병을 들어 보이셨다.


쑥스러움 반, 호기심 반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작은 잔에 45도짜리 증류주를 내어주셨다.

아주 작은 잔에 받은 소량이었지만, 높은 도수 덕분에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속을 뜨겁게 흔적 남기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2. 혼자가 아니라서 괜찮아요.




어느덧 시간은 흘러 16시.

점심으로 주문한 비빔밥이 배달에 한 시간 넘게 걸린 탓에, 결국 의도치 않게 ‘점저’를 먹게 되었다.


이번에도 우리의 식사 공간은 어김없이 벡스코 홀.

찾아보면 테이블이 있는 장소도 있었겠지만,

잠시 밥만 먹고 다시 부스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테이블을 찾으러 가는 일조차 품이 드는 일이었다.


첫날 샌드위치를 홀에서 먹었던 것을 시작으로, 결국 이틀 내내 샌드위치와 김밥, 비빔밥을 그 자리에서 나란히 먹게 되었다.


넓은 홀 가장자리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자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혼자였다면 꽤 민망했을지도 모르지만, 함께였기에 오히려 마음이 든든했다.





17시가 넘어가자 박람회장 안은 한결 조용해졌다.
나는 그 틈을 타 다시 한번 부스를 돌아다니며 구경에 나섰다.


쿠키 증정 이벤트 부스에서는 가위바위보를 하고 작은 쿠키를 받아 들었고,
동생이 좋아할 만한 안주도 챙겼다.


윗지방에 사는 썸머는 버스를 타야 해서 일찌감치 16시 30분쯤 퇴근했고,
저녁 약속이 있던 또치도 17시 30분 무렵 자리를 떠났다.

남은 건 나와 망고, 그리고 만듀.

우리는 셋이서 오순도순 남아 마저 버리지 못한 차를 정리하고, 내일 손님 맞을 준비를 간단히 마친 뒤 퇴근길에 올랐다.





우리가 퇴근할 시간은

다른 사람들도 퇴근할 시간이라 차가 몹시 막혔는데,

하지만 그 덕분에 부산의 화려한 야경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어 오히려 기뻤다.



내일은 주말!

회사를 다닐 땐 주말마다 동생들이랑 근교로 여행다니는 것이 낙이었는데,

퇴사 후 한 달 살기나 여행 등을 다니는 통에 오히려 동생들과 함께인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일은 집에서 동생들이랑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며 좀 쉬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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