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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 (3)

3.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열심히 하고 싶은 걸

by 이양고


1. 카페쇼에 왔습니다, 참가 업체로요.




비몽사몽한 아침.

부산 카페쇼에 참가하기 위해 의령에서 일곱시 반에 출발해야 했고, 준비하기 위해 여섯시 반에 일어났다.


물론 어제도 잘 못 잤다.

순천에서는 기절하듯이 자곤 했는데, 의령에서는 2일 째 뒤척이고 있다.

언젠가 적응되면 여기서도 잘 잘 수 있겠지.


그나저나 이제 아침엔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 말은 곧 이제 점점 추워질 일만 남았다는 것이고,

내가 퇴사한지 3개월이 다 되어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퇴사한 이후 나는 후회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그런 감상은 혼자 있을 때나 하는 걸로.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지만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부지런해져야 했다.




세팅을 위해 이른 시간 출발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부스들은 이미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우리는 대표님(닉네임 왕바우)께서 보내준 디스플레이 레퍼런스를 참고하여 최대한 비슷하게 꾸며보았다.


벡스코 안에는 에어컨이 틀려있었지만 10시 전에 준비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땀이 삐질삐질 날 정도였다.




아침으로 사온 서브웨이는 아까 전에 도착했지만,

고객들이 오기 전에 준비를 마치고자 하는 마음에 자꾸만 뒤로 미루다 보니 10시가 넘어서야 먹게 됐다.

이미 식어버린 샌드위치였지만, 배가 고프니 오히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벡스코 카페쇼에 참가하게 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10월에 열릴 ‘리치리치 페스티벌’에서 머니 플레이라는 게임을 진행하는 부스를 맡게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운영하기에 앞서 작은 무대에서 몸을 풀 듯 시험 삼아 참여해 본 것이다.


리치리치 페스티벌 팝업 부스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작은 연습 같은 자리랄까.



참고로, 다향연왕군자 명인의 집념과 정성이 담긴 올바르게 법제한 프리미엄 전통 한차 브랜드...로 청년마을 대표이기도 한 '왕바우'가 운영 중인 브랜드라고 한다.


차의 종류는 무척 다양했지만, 대구에서 열리고 있는 팝업 행사에도 물량이 필요해 오늘은 일부 품목만 준비 했다.



아침이라 아직은 쌩쌩한 우리.



우리는 차를 우리는 것을 돕고, 고객 응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웠다.


부스에 서서 고객을 응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있으니

오래 전 이런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홍보한다는 것.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마케팅을 처음 배울 때

자신의 브랜드를 근사하게 포장해서 소비시킨다는 면에서 마케팅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팝업 부스에 서서 고객들에게 차를 소개하고 있자니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나를 포함해서 부스에서 일하거나 고객을 응대하는 일을 해본 적 있던 우리는

어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차를 소개했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망고가 13시부터 16시까지 쉬고 오라며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우리가 향한 곳은 '부산 국제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영화의 전당.





나는 경남에 살면서도 부산에서 매년 열렸다는,

심지어 올해로 30년 째라는 부산 국제 영화제는 처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장으로 들어갔더니 이병헌 배우 얼굴이 스크린에 잡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어쩔 수가 없다’ 팀의 오픈토크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배우가 나란히 앉아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니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카페쇼에 참석한 것만 해도 신기한데, 이렇게 가까운 자리에서 배우들을 마주할 기회가 생기다니.


여러모로 내가 걸어오지 않았던 길 위를 잠시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선택하지 않았기에 알지 못했던 세상이 그 길 위에 펼쳐지고 있었고,

나는 그 풍경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영화 이야기를 듣고 난 우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영화의 전당 라이브러리’였다.


LP판으로 영화 OST를 들을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고, 책도 제법 많이 비치돼 있었다.


안에는 앉을 자리도 넉넉해서 사람들이 책을 골라 읽고 있었는데,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어젯밤의 불면과 오전의 노동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대로 까무룩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어쩌면 오후까지 이어질 일을 대비해 몸이 보내온 작은 S.O.S였는지도 모르겠다.






2.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돌아가기로 한 16시에 맞춰 다시 벡스코로 돌아가는 길.


오전에 서브웨이를 먹은 이후 공복 상태라 배가 몹시 고팠다.


우리가 없는 동안 고객 응대를 한 망고와 만듀도 허기진 상태라

함께 지하 1층 식당가로 향했지만 이미 문이 닫혀있었다.....


브레이크 타임에 방문한 것으로 추정...


부스를 비워두고 멀리 가서 식사를 하기에 애매하다고 생각한 우리는

카페쇼가 열리는 곳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하기로 생각하고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왔다.





퇴근 후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약속한 우리는

카페쇼 내부에 있는 "코알라파이"에서 파이를 사먹었다.


애플파이, 미트파이 등 다양한 종류를 팔고 있었는데

미트파이 1개 가격에 5900원일 정도로 약간 비싼 축에 속했다.


그렇지만 진짜 맛있었다는 점..........

동생들도 맛 보여주고 싶었다.




카페쇼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진행되는데,

목요일은 고객이 많지 않은 편이라 구경다닐 시간이 많았다.


'글뤼바인'은 뱅쇼를 파는 곳으로, 다향연 대각선에 위치했다.

다같이 우르르 가서 맛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덥썩 사버렸다.

금요일에 집에 갔을 때 동생들이랑 나눠먹으면 딱일 것 같은 맛이었기에.





17시가 넘어가자 주변 부스들이 슬슬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스를 정리하기 전

망고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받아온 세계지도를 둘러싸서 구경했는데,

별거 아닌 세계지도를 구경하는 우리의 모습이 귀여워서 한 컷 찍었다.





우리의 저녁은 "낙곱새"

부산에서 일한 적 있는 또치의 추천 식당이었다.



우리는 내내 서로를 알아 가기 위해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어찌나 맛있었는지 말도 없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웠다.


이렇게 고생 했으면 맥주 한 잔 먹어주는 게 피로회복제지만,

어제도 막걸리를 먹어 오늘은 패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라면을 사왔다.

쌓아두고 먹을 만큼 라면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의령 한달살기 동안 하루 27,000원까지 식대를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무는 사각사각 하우스 근처에는 편의점이 없어 꼭 차량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차가 없는 우리는 망고나 만듀에게 부탁해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비상식량을 챙겨둔 것이다.


숙소에 먹을 거라곤 수돗물뿐이었는데,

라면과 두유, 치즈, 바나나를 쌓아두고 나니 마음이 한결 든든해졌다.


끼니를 거를 일은 없겠지.

괜히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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