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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2)

2. 이번 한 달도 금방 지나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by 이양고


1. 축제를 기획한다는 거, 생각보다 재밌구나



아침이 되었습니다.

고개를 들어주세요.



간밤에 새벽 두 시가 넘어서까지 못 잤다.

간헐적으로 "딱!", "딱!" 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기 때문.




낯선 곳에서 잘 못 자는 나로서는

잘 자보려고 귀마개도 하고, 유튜브로 잠 잘오는 음악 같은 것도 틀어봤지만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선명한 소리에 도무지 잠들 수 없었다.


화가 나서 소리의 원인을 찾아보려 방을 살펴보았는데,

방이 눅눅해서 틀어둔 보일러가 설정된 온도에 따라 켜졌다 커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보일러를 끄자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고, 그제서야 잤다는 이야기....는 차치하고.


10시까지 모여야 했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벼 준비를 마치고 청춘만개로 향했다.




오늘 우리의 첫번째 일정은

'머니 플레이' 해보고 피드백 나누기.


머니플레이란

리치리치 페스티벌에서 운영할 팝업 부스 이름인데

큰 틀은 짜여있고 우리는 그 게임을 함께 해보며 피드백을 나누면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확인하러 온 의령 군청 사람들과 함께 머니 플레이 시작!


시작할 때 가짜 돈 5,000리치를 받고,

그걸 5개의 상회에서 사고 팔면서 정해진 시간 내에 30,000리치를 만들면 게임이 끝나는 거였다.


처음 설명만 들었을 땐 감이 안 왔지만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열을 올리며 하는 우리를 발견했다.


15분 동안의 짧은 게임 이후 우리는 자리에 앉아

100리치 보다 단위가 큰 500리치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5분에 한 번씩 가격 변동이 있으면 혼동이 있을 수 있으니 10분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미니 게임은 부스마다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등 다양한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축제 기획자로 일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도움은 될까? 고민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기뻤다.


그런 사람이라는 걸 파악했기에 뽑힌 거겠지..?

모쪼록 축제가 끝날 때까지 홍의별곡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화정소바'

의령 맛집을 검색했을 때 화정소바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어서

의령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은 꼭 가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방문하게 됐다.


화정소바는 의령시장에 위치해있고,

늘 웨이팅이 있을 편일 정도로 맛집이니

만약 방문하게 된다면 미리 전화로 예약 하는 걸 추천한다.





메뉴는 온소바, 냉소바, 비빔소바, 들기름소바 등이 있는데 우리는 돈가스와 비빔소바, 냉소바, 만두를 주문했다.



돈가스는 다 같이 나눠먹는 음식이었고

비빔소바는 또치와 망고가 주문한 것이었고

나와 만듀, 썸머는 냉소바를 주문했다.


의령식 소바를 좋아해서 여름이면 집 근처 "의령소바"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 "의령소바"와는 좀 다른 느낌의 소바였고 고명이 풍부하고 국물이 진해서 맛있었다.



의령에는 화정소바뿐만 아니라, 전국에 퍼진 의령소바 프랜차이즈의 본점도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의령에 온다면 꼭 한 번 소바를 맛보길 권하고 싶다.


순천에서 꼬막정식이나 짱뚱어탕을 맛보았듯,
의령에서 유명한 음식은 소바와 망개떡이다.



한 곳에 붙박혀 살 땐 관심도 없었던 각 지역 특산품들을 접하고 먹어보는 일이라니.

퇴사하고 여러 지역에서 지내보길 잘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시장을 한 바퀴 크게 둘러보는데,

망고님이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 해서 함께 방문한 곳은 무인 신발 가게.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무인 신발 가게요?" 하고 되물었더니 정말, 신발을 무인으로 판매하는 곳이라고 했다.


어떻게 무인으로 판매한다는 거지? 싶어서 의아한 마음으로 함께 방문했는데

망고님이 오랫동안 서성이면 전화가 오니 지나가는 척 봐야한다며 누가봐도 의심스럽게 앞을 왔다갔다 했다.


알고 보니 주인분께서는 매장에 상주하는 건 아니지만

cctv로 매장을 보고 계셔서 누군가 신발을 사는 것 같으면 전화를 하는건데,

전화를 받아서 구매의사를 밝히고 계좌이체를 하면 되는 모양이었다.


한국이 아니라면, 촌 시장이 아니라면 상상도 못할 판매 방식이었다.




의령 시장은 3일과 8일마다 열리는데, 우리가 함께 방문한 날은 7일이라 시장이 조용했다.

시장이 열리면 사람이 훨씬 많다며 머쓱한 듯 웃으셨는데 나는 오히려 조용해서 구경하기가 좋았다.


이제 차로 갑시다, 하며 발걸음을 옮기다가 본 '다슬기'

나는 시골 출신이라 초등학생이었을 때, 여름이면 강에서 다슬기를 잡곤 했는데

오랜만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다슬기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밀려왔다.

심지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있는지 다라이를 벗어난 다슬기가 꽤 보였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 이를 닦고 30분 가량 쉬다가 다시 모여 향한 곳은 '가배목림'


홍의별곡에서 걸어서 갈 수도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카페인 '가배목림'은 의령에 몇 안 되는 청년 가게 중 하나로, 세 번째로 문을 열었다고 했다.


오리엔테이션 할 때 '가배목림'에 대한 설명을 짧게 들어서 의령에서 지내는 동안 꼭 한 번은 가봐야지 생각했던 곳 중 한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방문할 수 있어(22) 더욱 반가웠다.




인테리어는 멋스러웠고, 내부에 자리도 많았다.

실제로 이미 자리를 잡고 음료를 마시는 손님이 5명 가량 있었는데,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카페를 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무색했다.


해가 지면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용해지는 칠곡면이지만

낮에는 유동인구가 꽤 있구나 싶어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개성 가득한 음료 선택.

망고와 만듀는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또치는 커피나무숲, 썸머는 딸기라떼, 나는 게이샤를 주문해 마셨다.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하다가 비싼 거 먹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주문한 것이었는데,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깊은 맛이었다.






의령에는 정착한 청년이 많지 않다고 한다.


망고는 의령에 정착한 청년의 사례를 들려주었는데

가배목림처럼 장사를 하거나, 군청이나 은행 같은 곳에 소속 되어 일하는 사람이 거의 전부라고 했다.


홍의별곡 (청년마을)에서 일하는 왕바우, 망고, 만듀를 다 합쳐도 13명 남짓이라고 하니 청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 또한 경남 사람이었으나 의령에 와본 적도, 유명한 것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의령을 알리고자 한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던 우리의 다음 일정은 의령투어.

의령에서 유명한 몇 곳을 둘러보는 것이 우리 일정이었으나 먹구름이 심상치 않은 얼굴로 칠곡면으로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비가 오면 움직이기 힘드니 우리는 얼른 다녀오자며 몸을 일으켰고,

그런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1조'나 기부했다는 기부왕 '이종환 회장' 생가.





넓은 부지와 여러 채의 한옥이 있었는데

어찌나 관리를 열심히 하시는지

쓰레기 하나 없이 아주 말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비싼 나무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같은 모양의 고층 아파트와는 다른 느낌의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의령은 부자 1번지로 불리는데,

기부를 1조나 할 만큼 부자였던 이종환 회장을 포함해서 엄청난 부자들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


솥바위를 중심으로 8km 내인 의령에선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진주에선 LG그룹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이, 함안에선 효성그룹 창업주인 만우 조홍제 회장이 태어났다. 놀랍게도 전설에서 전해오는 것처럼 실제로 솥바위의 세 다리가 가리키는 방향에 각각 호암, 연암, 만우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관광자원을 지니고 있는 의령은 의령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자 관광을 만들어 냈다. 의령에서 2022년에 먼저 내놓은 사업이 ‘의령 리치리치 페스티벌’이다. 일명 ‘의령 부자축제’다. 국내에 유일하게 부자를 테마로 한 이색축제다.

아닌 게 아니라 의령에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여러 재계 리더들이 탄생했다. 1조 7,000억원의 장학재단을 설립한 삼영화학그룹 창업주 관정 이종환 회장의 고향이 의령군 용덕면이다. 이 회장은 아시아 최대 기부왕으로 손꼽힌다. 또한 글로벌 홈 헬스케어 기업으로 유명한 세라젬 창업주 이환성 회장은 의령군 궁류면, 세계 수소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범한그룹 창업주 정영식 회장은 부림면 출신이다.

출처 : https://www.mk.co.kr/news/business/10882444


이것을 관광 포인트로 삼아 '리치리치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팝업 부스를 열어 "머니 플레이"를 진행할 예정이다.






의령에는 ‘의병박물관’이 있다.

처음 이름만 들었을 땐 왜 하필 의령일까, 잠시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이 땅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역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의령의 정신으로 남아, 지금의 박물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행지에서 흔히 만나는 관광지가 아닌,
이곳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박물관의 존재가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왼쪽은 도깨비, 망개떡, 곽재우 장군 등을 굿즈로 만들어 판매 중인 자판기였는데

하나 구매할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돌아섰다.


도깨비를 갖고 있으면 왠지 든든할 것 같아서 구매하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구매한 굿즈가 집에 넘쳐나기 때문에.. ^.ㅠ





의병박물관에서는 곽재우, 안희제 등 이 땅을 위해 힘쓴 위인들에 대한 설명을 가득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난히 기억에 남은 건,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체험 공간이었다.


평균 나이 서른을 넘긴 우리가
그곳에서 아이처럼 들떠 신나게 게임을 즐겼다.






2. 벌써부터 재밌어서 어떡하지




의병박물관에서 나온 우리가 방문한 곳은

의령에서 가장 큰 마트라는 "풀마트"


비 오는 날씨에 맞춰 전을 만들어 먹자는 생각에 방문한 것이었다.


우리는 부추전을 만들어 먹기 위해 부침가루, 부추 등 다양한 것을 구매해 홍의별곡으로 돌아왔다.


어디 한 번 요리를 해볼까! 싶었는데 망고와 만듀는

대구에서 일하고 있는 왕바우와의 약속이 있어 저녁을 함께 먹지 못 하고 대구로 향했고,

참가자인 우리(또치, 썸머, 나)만 남아 전을 굽고 막걸리를 마셨다.






오늘 우리의 저녁은 새우를 잔뜩 넣은 부추전, 냉동 새우 볶음밥, 마늘 맛이 많이 나는 오뎅탕.


서툰 우리 솜씨로 만들었지만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우리는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먹었다.




순천에 있을 땐 저녁에도

뜨거운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몹시 더웠는데

어느덧 여름이 저만치 멀어져 있는 듯

선선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어쩌면 비가 한바탕 쏟아졌기 때문에 더더욱 선선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공기를 맡을 때면

올 한 해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괜스레 쓸쓸해진다.


이건 습관처럼 찾아오는 기분이라서

가족들과 함께일 때도, 혼자일 때도 늘 따라붙는 종류의 쓸쓸함인데

생각해보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계절이 주는 영향일지도 모른다.


가을은 낮이 짧아지고 햇빛이 줄어드는 계절이다.
햇빛이 부족하면 기분을 북돋아주는 세로토닌은 줄고,
대신 졸음을 부르는 멜라토닌은 늘어난다.

그래서인지 가을만 되면 괜히 마음이 가라앉고,
쓸쓸함이 스며드는 건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물어 가는 가을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의령이라서,
이곳에 와서 코끝으로, 피부로 선선한 공기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축한 습기를 없애려고 틀어놓은 에어컨이 추웠던 또치와 썸머가 나란히 덮고 있는 담요가 귀여워서 찍어둔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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