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회생활이 그렇듯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 순간이 온다.
내가 아끼고 챙겼던 사람이 사실은 뒤에서 내 이야기를 좋지 않게 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혹은 나의 도전, 성공, 기쁨을 함께 기뻐해 줄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 내 소식을 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때, 그럴 때 마음 깊숙이 상처를 받는다.
초등학생 때는 중학생이 되면,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이 되면, 고등학생 때는 어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인간관계를 대하는 내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 어른스럽게 변할 거라 믿었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폭넓게 포용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매번 그런 기대를 품고 자랐던 것 같다.
하지만 서른을 넘긴 지금의 나는, 내가 베푼 것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여전히 마음이 저릿하다. 내가 좋아해서 아끼고 잘해주었던 사람이, 정작 내가 기대했던 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때보다 커진 건 머리와 몸일 뿐, 마음은 여전히 그때 그대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 감정은 더욱 자주 찾아왔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지만,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 속에서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그래서 대부분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정을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끔은 본능처럼 꼬리를 붕붕 흔드는 강아지처럼 다가갔다.
그저 그 사람이 좋았고, 나와 잘 맞는 것 같았고, 그 사람 또한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기에 마음 가득 호감과 애정, 정성을 담아 건넸다.하지만 돌이켜보면, 직장생활 속에서 내가 느꼈던 호감은 대부분 찰나에 불과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옆 사람이, 옆 사람이 없으면 그 앞사람이 일을 맡아야 하는 구조 안에서 애정과 호감만으로 관계를 맺으려 했던 내 마음이 어리석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주 애정을 담아 마음을 건넸고, 대부분은 누더기가 된 채로 그것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도무지 괜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픔을 느꼈다.
물론 항상 상처받기만 한 건 아니다. 사람에 지쳐 "고양이가 최고야, 고양이만 나를 쉬게 해줘"라며 집에 틀어박힌 적도 많았지만, 역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받기도 했다.
기대 없이 던진 안부 인사에 따뜻한 말이 돌아올 때면 코끝이 찡했고, 크게 축하받지 못할 것 같아 조심스레 전한 기쁜 소식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면 마음이 울컥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건,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웃어주던 사람이 왜 오늘은 인사조차 없이 멀어지는지. 분명 나를 좋아했던 것 같던 사람이 어떤 연유로 등을 돌렸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실수를 한 건지, 나의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건지 묻고 싶었다.
진심 어린 사과라도 전하고 싶은데, 멀어진 사람들은 내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나에게 마음을 준 적 없다는 듯, 그저 조용히, 확실하게 멀어진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오늘도 10년 뒤의 나에게 부탁한다. 그때의 너는 남의 평판에, 날카로운 말에,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비난에, 칼날 같은 시선에 상처받지 말아달라고.
이토록 힘든 건 지금의 내가 다 할 테니, 미래의 너는 아프지 말고, 앓지 말고, 부디 평안하길 바란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것은 늘고, 잃을 것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기에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겁이 많다는 것도 알기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는 그저 미래의 나를 응원하며, 이렇게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