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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D Jun 27. 2022

009. 개미와 나

내 마음 관찰일기

한동안 개미를 관찰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적이 있었다.

여기저기 흔하게 보이던 개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1살 여름방학 때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가 내 인생 중 제일 자유롭고 즐겁던 시절이었다.

동네의 꼭대기 집이라고 부르던 그 집은

엄마 아빠에겐 끔찍하게 살기 싫은 곳이었는지 몰라도

나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마루에 가만 앉아 밖만 보아도 시시각각 즐겁고 행복했다.

그날도 여동생과 클로버 밭에 보자기를 깔고 소꿉놀이를 하다가

우리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에 모여든 개미들을 보게 되었다.

큰 과자 조각을 들고 가려고 여러 마리가 모여들기도 했고

패기 있는 개미는 혼자 자기보다 훨씬 커 보이는 과자 부스러기를 들고 옮겼다.

한참을 개미들을 보다가 그 개미들은 어디로 가는지 쫓기 시작했다.

개미들은 아무렇게 가는 것 같아도 결국은 개미굴로 보이는 땅속 구멍으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나는 여동생과 놀기를 그만두고 며칠을 개미들을 지켜보았다.

개미들은 비가 오기 전날엔 정말 긴 줄을 만들어 어디론가 열심히 갔다.

중간에 큰 돌을 놓아두면 처음엔 우왕좌왕 대다가도

돌을 돌아 다시 길을 만들어 나아갔다.

나뭇잎을 놓고 중간에 가던 개미들을 납치해 한참이 떨어진 곳에 놓아두어도

개미들은 어떻게든 다시 그 줄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개미의 줄은 정말 길어서 당시 우리 집 앞은 너른 밭이었는데 그 밭 주위를 빙 돌고도

어디로 가는지 줄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간신히 찾은 개미굴 입구는 비 올 것을 대비해서 수리가 한창이었는데

개미들은 흙을 퍼다가 밖으로 나르기도 하고 굴 입구를 작은 돌들로 막다가 열다가를 반복했다.

개미들은 사냥도 참 능숙했는데

비 온 뒤 나온 지렁이들은 개미들의 공격을 받았다.

지렁이가 불쌍해 보여 몇 번 구해 다른 곳에 놓아주었지만

이미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렁이들은 어찌 되었든 죽는 걸 몇 번 보고는

개미들이 하는 대로 그대로 두었다.

개미들이 지렁이를 둘러싸고 물면 지렁이는 아픈 듯 꿈틀거렸는데 

꿈틀거림이 멎어져 가면 개미들은 지렁이를 잘게 잘라 옮기기 시작했다.

개미를 집에서 키우고 싶었지만 어릴 때라 방법도 알 길이 없었고

부모님에게 말하기엔 안된다는 거절의 말을 듣는 게 무서웠다.

너무 작고 보잘것없고 흔한 아이였던 나는

흔하게 돌아다니던 개미와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여름에 나는 개미를 관찰한 게 아니라 나를 관찰한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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