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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D Jun 27. 2022

010.밤의 얼굴

내 마음 관찰일기

예전에 써 놓았던 이야기가 있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집에서

홀로 깨어 밖을 보다가 문득

밤이 얼굴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난 늘 밤의 뒷모습만을 보는 건 아닐까.

어쩌면 밤과 낮은 하나인 존재로

낮엔 그의 앞모습만을 보고

밤엔 그의 뒷모습만을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두운 밤은 왠지 넘실대는 긴 머리카락과 같고

그 안에 떠 있는 달과 별은 머리에 꽂아놓은 핀 같았다.

저 검고 어둡고 풍성한 밤의 머리칼을

한 움큼 잘라 예쁘고 작은 병에 넣어두고

밤에 스탠드를 켜 두듯

낮에 그 고고한 어둠을 보며

조용하고 평온했던 시간을 기억해보면

육아로 힘들던 몸과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았다.


그때 썼던 짧은 글을 덧붙여 본다.




<밤의 얼굴>


아이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밤이 오려는 듯 서서히 어두워지는 창 밖을 아이는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어쩜 저렇게 예쁠 수 있을까....'


아이는 밤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작은 가방에 밤을 만나면 보여줄 작은 손거울 하나와

밤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에 꽂아줄 아끼는 반달 모양의 핀과

밤에게 들려줄 오르골 하나가 들어 있었다.


길을 나선 아이는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도 밤의 작은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아, 다리 아파.... 누가 밤에게 날 데려다줬으면..."


그때 검은 개 한 마리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밤의 얼굴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다리가 아파서 갈 수가 없어요."


"내가 태워줄까? 밤에게 데려다주면 넌 내게 뭘 줄 수 있니?"


"제가 가진건 이것들 뿐이에요."


검은 개는 손거울을 집어 들고 자신을 비춰본 후 만족스럽게 말했다.


"이 손거울 맘에 드네. 손거울을 내게 주면 널 태워 줄게."


아이는 손거울을 검은 개에게 주고 검은 개의 어깨에 올라탔다.

검은 개는 아이를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검은 개의 날리는 털과 차가운 바람, 그리고 조금씩 어두워지는 주변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검은 개는 발을 멈추고 아이에게 말했다.


"난 여기까지 밖에 못가. 여긴 하늘이라 난 갈 수 없어.

넌 가벼우니까 저 구름들을 밟고 가면 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안녕."


검은 개는  사라지고 아이는 혼자 남았다.

낭떠러지 앞에서 아이는 건너야 할지 말아야 할지 두려워 오도카니 서 있었다.

왠지 밤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검은 새 한 마리가 아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밤의 얼굴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낭떠러지라 갈 수가 없어요."


"내가 태워줄까? 밤에게 데려다주면 넌 내게 뭘 줄 수 있니?"


"제가 가진건 이것들 뿐이에요."


검은 새는 반달 모양의 핀을 집어 들었다.


"이 핀 맘에 드네. 이걸 네게 주면 널 태워줄게."


아이는 반달 핀을 검은 새에게 주고 검은 새의 등에 올라탔다.

검은 새는 아이를 태우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아이는 검은 새의 날갯짓소리와 뺨에 스쳐가는 구름 조각, 그리고 아까보다 더 어두워진 주변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날던 검은 새는 날갯짓을 멈추고 어느 바다의 해변에 앉았다.


"난 지쳐서 더 이상 못 가겠어. 더 날다가는 저 어두운 바닷속으로 떨어져 버릴 거야.

넌 가벼우니까 저 물 위에 떠가면 갈 수 있을 거야. 안녕."


검은 새는 사라지고 아이 혼자 남았다.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 수 없는 바다 앞에서 아이는 썰물에 발이 젖는 것도 모르고 서 있었다.

왠지 밤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아이는 눈물을 톡 흘렸다.


그때 바닷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밤의 얼굴울 보러 가려고 하는데 바다가 너무 깊어 갈 수가 없어요."


"내가 태워 줄까? 내가 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면 넌 내게 뭘 줄 수 있니?"


"제가 가진건 이것뿐이에요."


아이가 오르골을 돌리자 오르골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천천히 돌았다.


"이거 맘에 드네. 좋아, 이걸 내게 주면 널 태워줄게."


아이는 물고기의 머리 위에 오르골을 올려두고 물고기 등에 올라탔다.

물고기는 아이를 태우고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쳐 나가기 시작했다.

바닷물은 신기하게도 전혀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점점 어둠이 짙어 올 때쯤 물고기는 아이를 섬 한가운데에 내려주었다.


"여기서 기다리면 곧 밤이 곧 올 거야. 밤은 늘 이곳을 지나가니까 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하지만 절대 잠들어서는 안 돼. 알았지?"

물고기는 오르골을 머리에 이고 검은 바닷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섬 위에 앉아 있던 아이는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주 크고 천천히,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릴 듯 한 고요함이 아이의 눈 위에 올라앉았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다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에 눈을 뜨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은 이미 아이를 지나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길게 늘어트려진 밤의 머리카락에서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흔들흔들 빛나고 있었다.


"안돼!!!"


아이는 밤의 머리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쥘 수 있는 만큼 밤의 머리칼을 잡고 힘껏 뜯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때 밤이 아이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밤이 얼굴을 돌린 그 순간 너무 눈이 부셔 아이는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한참 후 아이가 눈을 떴을 땐 밤은 온데간데없이 환한 빛만이 세상에 가득 차 있었다.

아이는 서둘러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밤의 머리칼을 꺼내 보았다.

하지만 주머니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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