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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D Aug 23. 2022

호칭의 무게

그럼에도 갖고 싶은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남편이 나에게 그랬다.

나는 하고 싶은걸 직업으로 삼으며 살지 못할 것 같으니 너라도 하고 싶은걸 하며 살라고.

돈을 못 벌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걸 본다면 대리만족이 될 것 같다고.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보라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남편이 처음이어서 큰 감정의 기복이 없는 나도 속으로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땐 하고 싶은 거 하라는 그 말이 얼마나 고맙고 좋던지 날름 하고 싶은 것만 쭉 하며 살았다.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는 말은 내 인생의 모토가 되어버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생활이라 불리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고 사회에서 불리는 호칭 또한 거의 없었다.

그나마 사회에서 얻은 호칭이라면 그림을 그린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려서 얻은 작가님이라는 오글거리는 호칭뿐.


물론 나에게도 여러 가지 호칭이 있다.

딸,엄마, 아내, 며느리, 시누이, 처형, 언니, 동생, 누나, 친구, 학부모 등등

그 호칭들은 내가 굳이 가지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는 가벼운 것들이다.

하지만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내게 주는 무게감은 달랐다.

그림을 그린다고 그러고는 있지만 내가 그림을 그려 버는 돈은 정말 티끌 같아서

실상 나는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적합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불러주면 혼자 마음이 불편해져 등과 머릿속에서 식은땀이 난다.

근래엔 사장님 혹은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가끔 듣게 되는데

정말이지 손발이 오그라지고 시공간이 비틀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를 뭐라고 불러 달라고 해야 할까.

생각해봐도 나를 부를 마땅한 호칭이 사회에서는 별로 없긴 하다.

그래서 아무 무게도 없이 불러주는 그 호칭에 혼자 마음이 무겁게 불편하다.

내가 스스로 작가라고, 사장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데

누군가 나를 작가님, 사장님 같은 호칭으로 부르면

떳떳하지 못한 내 마음이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구멍 속으로 숨어든다.

어릴 땐 지금의 내 나이쯤엔 적어도 무언가 하나쯤은 이뤄놔서

거기에 걸맞은 그런 호칭을 당연히 갖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원하는 호칭을 당당하게 갖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새삼 깨닫고 있다.


누군가 날 부르는 호칭 따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 호칭이 가지고 싶어 진다.

나에게 맞춤옷 같은 그런 호칭이 정말 너무나도 가지고 싶어 진다.

가까운 미래에 무게를 버텨내며 당당하게 원하는 호칭으로 불리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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