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친정에 갔다가 다음달이 아빠 제사라는 말을 엄마에게 들었다.
일 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봄과 여름을 지나서 벌써 가을이 돌아와 아빠 기일도 돌아왔다.
늘 가을이 되면 기분이 우울했었다.
내 생일도 가을이었지만 태어난 김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고 화려하고 풍족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무채색으로 앙상하게 바뀌는 풍경을 보면 더 쓸쓸하게 느껴졌었다.
계절의 영향도 있었지만 아프다가 일찍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애잔함과 아빠의 빈자리에서 고생하시며 우리를 기른 엄마의 고단함이 제사상 향내와 함께 거부할 수 없이 스며들어서
사진에 절을 하고 잘 들어가지도 않는 제삿밥을 꾸역꾸역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체해 그 다음 날은 굶다시피 했던 게 아빠 기일쯤 느껴지는 내 쓸쓸함과 우울함의 근간이었다.
그래서 가을에 하늘이 맑고 예뻐도, 어느 좋은 곳을 가도 그다지 감흥이 없이 무덤덤했었다.
이번 아빠 기일도 별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엄마가 제사를 지내지 않고 성묘로 대체하시겠다며 말을 꺼내셨다.
엄마도 나이가 드셔서 평일 밤 차리는 제사상이 힘들게 느껴지셨고 20년 넘게 해오셨으니 이젠 편하게 주말 낮에 가족들과 만나 즐겁게 밥 먹고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성묘를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의 햇수를 세어보니 정확히 25년이 되었다.
40대 초반이었던 엄마는 이제 60대 중반을 넘어가서 후반으로 가고 계셨다.
누구는 제사는 조상들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전통이라 말하고 누구는 죽은 사람이 뭘 아느냐며 산사람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니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고 잘못된 거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예전에는 종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무교에 가까운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 행복한 기일을 맞이 하고 싶다.
그래서 엄마가 내린 결정이 참 반가웠다.
이제 무거운 마음으로 늦은 밤에 향내를 맡으며 억지로 제삿밥을 먹지 않아도 되고 몇 번을 지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제삿날의 우울한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데도 엄마의 결정 하나에 내가 느끼는 계절은 다르게 느껴진다.
이번 가을은 우울하거나 쓸쓸하지 않은, 마음이 가벼운 가을이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