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31

그래서, 예술이란 무엇이냐고? 으악!

by 그냥 하자
KakaoTalk_20251018_032304175.jpg 내 이름은 현대 미술, 너에게 이해당하기를 거부한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아내와 둥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간 분데스뮤지엄카드로 갈만한 곳들 중에서 유명한 곳들 거진 다 가봤기에 이번엔 남들이 잘 안 가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현대미술관MUMOK과 응용예술박물관MAK, 이 두 곳이 오늘의 목표였다. 현대미술관은 빈의 뮤지엄콰르티에MuseumsQuartier 속에 있다. 뮤지엄콰르티에는 다양한 미술관/박물관이 모여져 있는 유럽 최고 수준의 복합 예술문화 지구 정도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MUMOK은 그 외관부터 인상적인데 검은색 타일로 세련되게 마감이 되어 있어서 주변 건물들과의 그 이질감이 눈에 띈다. 내부는 채광이 잘 되게 되어 있고 층고도 높고 공간도 넓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이 꼭대기 층으로 가서 하나씩 내려오기로 한다. 음. 음. 음.. 현대미술. 그렇구나 이런 것이 현대미술이구나.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알베르티나 모던에서 봤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 예술과는 또 그 궤를 달리한다. 퍼포먼스 아트 즉, 행위 예술은 그래도 이해의 출발점이 되는 '신체'가 있다. 그것을 가지고 찌르고 때리고 무엇을 하든 간에 그 '행위'를 관찰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우리는 '반응'할 수가 있다. 물론 이런 '행위'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관점의 이동 자체가 당시에는 도발적인 문제제기였으나 지금은 누구나 받아들이는 예술의 한 형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현대 미술(이라는 네이밍 자체도 이해할 수가 없지만)'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챗지피티는 '뭘 그렸는지'를 찾지 말고, 그저 그 작품에 대한 나의 '반응'에 집중하라고 한다. 혼란스러운 그 감정 자체를 차분히 받아들이고 그 의도를 느끼고, 마지막으로 작가의 설명을 다시 읽으면 더 쉽게 이해가 갈 것이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 보아도 도통 알아먹지를 못하겠다. 물론 현대미술, 아니 조금 더 세분화해서 추상회화나 개념회화를 하는 작가들에겐 당연히 어떤 '의도'가 있으리라. 그런데 꼭 그렇게 애매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그들의 예술의 본질일까? 예술이라는 것을 그렇게 어려운 방식으로 구현해야만 했던 걸까?


이 시점에서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술사를 간략하게 짚어본다. 20세기 초 인상파와 야수파 등으로 대표되는 시절의 미술사조를 근대미술Modern Art이라고 한다. 그리고 저렇게 이해가 어려운 '현대미술'이라는 것은 조금 더 정확히는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이다. 근대미술이 회화와 조각이 중심이었다면 동시대미술은 행위와 설치, 개념 등이 그 중심 매체가 되었다. '보는 예술'에서 '생각하게 하는 예술'로 전환된 셈이다. '예술'의 차원이 더 깊어졌다고 봐야겠다.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변화된 것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직관적으로 '아름답다'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이제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철학적 사유를 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어제의 글에서도 썼지만 예술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평론가들이 분석하고 이름 붙이고 개념정의를 하다 보니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라는 것이 실체화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네이밍조차 말이 안 되지 않나 생각한다. 모던 아트? 'Modern'은 '현대의, 근대의'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 않나. 그런데 그것들은 이미 '현대'가 아니라 '과거'의 미술사조가 아닌가. 또 컨템퍼러리Contemporary도 마찬가지다 '동시대'라니, 100년이 지난 뒤에도 '동시대'가 어울리나? 당연히 아닐 테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나면 모던아트나 컨템퍼러리 아트라는 말도 다른 용어로 대체될 것이다.


어쨌든 예술이란 것의 시대정신이 변화하고 확장되고 깊어지는 것이니 단순히 '난해'하다고 치부하고 눈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시간을 들여서 작가의 '사유의 세계'를 탐험해 보려 노력해 봐야겠다. 다만 조금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한 '맥락 읽기'가 중요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런 부분의 공부가 부족하다 보니 이해의 폭이 좁은 것이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작품을 바라볼 수는 없다. 모른다는 것도 인정하고 그 한계 속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여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다가 더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면? 그러면 그 지점에서 글을 하나 더 읽고, 작품을 하나 더 감상해 나가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컨템퍼러리 아트를 하는 작가들이 원하는 것 아닐까?


오늘은 그들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본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참고로 현재 MUMOK에서는 토비아스 필스Tobias Pils의 작품들이 메인으로 전시되고 기타 상설 전시도 많다. 아, 백남준의 작품들도 지하에 꽤 많이 있었다. 백남준이라는 이름도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나 또한 아주 예전, 학생시절 교과서에서도 봤던 작품들이지만 사실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빈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가능하다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번 더 들러서, 단 몇 개의 작품이라도 공을 들여 관찰해 보고 제대로 '사유'해 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겠다.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현실' 속에 먹혀버릴 경험들이겠지만, 의지만 있다면 무엇인을 못하리. 박물관을 가지 않아도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쉽게 사유의 세계로 떠날 수 있다. 그림도 그려보고 악기도 다뤄보고 싶다. 미술도 더 알아보고 싶고, 어렵지만 이 예술의 세계도 더 경험해보고 싶다. 이런 갈증을 탐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그 값어치를 다 했다고 본다.


다시금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가 생각난다. 결국 여행이란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탐색하는 여정'이란 것, 그리고 단순히 '유명인들의 흔적 따라가기'가 아니라 그들의 '일상적 감각, 사고방식'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조금은 더 깊게 알아 가고 있다.


그런데 한 달가량 머물고 나니 이제 다시 나의 본래 삶이 있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다시 또 '내면을 탐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척 강하게 든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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