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띠링 띠링
폰 알림을 끄고 좀 더 누워있으려고 했는데 냉장고가 경박하게 경고음을 울린다.
K가 또 물을 마시고 냉장고 문을 덜닫은 모양이었다.
자기가 듣고 나오겠지 하면서 뭉기적거리려는데 다시
띠링 띠링 띠리리리링!!
아까와 같은 소리였겠으나 내 귀에는 매우 신경질적으로 빽빽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으이구, 하면서 마지못해 일어나 냉장고 문을 닫고 다시 돌아와 누우니 잠이 싹 달아났다.
이런 일이 한 두 번도 아니건만 희한하게도 그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얼마 전 냉장고를 바꿨다
전에 사용하던 것은 문을 열 때 경쾌한 알림소리가 났다. 나보다 열 배는 더 자주 냉장고 문을 여닫는 K가 집에 있는 날은 냉장고 문 여는 소리에 집 안이 고요할 겨를이 없다.
문을 열 때와 제대로 닫지 않았을 때 나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그랬다.
그러다 왼쪽 문이 고장이 났다.
문을 열 때 다른 쪽 문 지지대 역할을 하는 바에 스프링이 부러져 고정이 되지 않았다.
하여 문을 닫으려면 바를 손으로 접어넣고 닫아야 했다.
AS센터에 물으니 중국 완제품 수입이라 부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일일이 주문을 해야하는데 비용도 비싸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다 어쩌면 생산이 안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부품 구하느니 새로 사시는게 나을 수도 있어요.”
라는 AS기사 단골 멘트를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칠 년째 사용중인 것을 냉장이나 냉동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닌 문 때문에 교체를 해야하나 어쩌나 며칠 고민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냉장고 경고음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렸고 문을 닫을 때 벌컥 소리까지 얹혔다.
이대로 사용하더라도 다른 고장은 계속 이어질 텐데 그 때까지 저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한다 생각하니 고민이 순식간에 끝났다.
새 냉장고가 들어오자 문을 열 때 소리가 나지 않는 것 만으로도 집안 소음이 반은 준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K는 여전히 문을 꼭 닫는데 무심했고 그럼으로 덜닫힌 문 경고음은 여전하다.
문을 덜 닫거나 아예 닫지 않는 습관은 냉장고 뿐이 아니다.
아침에 누룽지를 끓이고 나면 누룽지 보관함 뚜껑은 거의 활짝 열린채다.
오이무침을 한 후에는 참기름 병 뚜껑이 그대로 열려있고 밥을 푼 후에는 밥솥 뚜껑이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뚜껑을 닫으면 물도 빨리 끓고 연료도 절약이 된다고 말했지만 국수를 삶을 때마다 그는 인덕션 온도는 최고로 올려놓고 뚜껑은 덮지 않는다.
K2가 집에 왔을 때 이러이러하다며 즈그아무지 흉을 봤다.
그랬더니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프로 뚜껑못닫러, 우리집에도 있어여~”
“엥? 그런 말도 있어?”
“그냥 내가 붙인 말이야 히히”
내 남편만 그런게 아니었다고 한다.
딸의 남편 또한 물건을 쓰고, 돌아서면 그만이라고 했다.
아침에 ‘율무(그집 강아지)애비’가 출근을 하고 나면 화장실에 로션뚜껑이 열린채로 있고
커피를 내린 테이블에는 원두 보관통이 열린채로 있으며 씽크대 상부장 문을 닫지 않아서 자기 머리를 부딪히는 일도 빈번하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K뿐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장인 사위 모아놓고 따끔하게 참교육(?)을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활짝 열린 누룽지 뚜껑 옆에 삼리터짜리 고춧가루 병이 또 천정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전에 누룽지는 지퍼가 달린 비닐 봉투에 담겨온 그대로 두고 먹었는데 번번이 쩍 벌어져있는 비닐 팩을 내가 닫다가 보관통을 쓰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주문했었다.
누룽지는 바싹 말라있는 상태라 열어놓으면 습기도 빨아들이고 주변 냄새며 먼지도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닫아놓아야 한다, 기름은 공가와 닿으면 산패가 되고 고춧가루 등 양념 뚜껑을 닫지 않으면 고유의 향과 맛이 날아가 버린다, 며 일장 연설을 해봤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이쯤 되면 그냥 내가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마도 K가 상남자라서 그런가보다...했다.
원래 큰 일을 하는 상남자는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라고 애써 명분을 세워보았다.
오늘 아침, 열려있는 누룽지 통 뚜껑을 내가 닫는 것을 K가 보았다.
‘상남자라서 그런 거다, 상남자라서 그런 거다.’ 라며 어제의 다짐을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재밌지? 늘어놓는 사람이 있어야 치우는 재미도 있는 거고, 뚜껑을 열어 놔야 따라다니며 닫기도 하는거잖아.”
라고 한다.
아이쿠...
“그...그렇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