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는 비둘기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평화의 상징이라 불리던 과거에도, 도심의 천덕꾸러기가 된 지금에도 비둘기는 인간이 붙인 이름과 정의 따위 알 리 없다.
비둘기는 그저 '비둘기'일 뿐이다.
변한 것은 인간이다
변한 건 비둘기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다.
도시화로 인해 비둘기의 삶의 터전이 숲에서 건물이나 구조물로 변화한 것은 인간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닌 단지, 생존의 본능 때문이다.
뛰어난 번식력으로 도심 어디서나 흔히 마주치는 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한 것은 결국 인간의 편의를 위한 선택일 것이다.
피하기보다 마주해 보다
언제부턴가 나는 비둘기와 마주치면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두 발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제법 통통한 몸을 지탱하며 걷는 여린 두 발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서둘러 서울에 갔던 날도 그랬다.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들른 카페는 2월의 한기를 녹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하는 수 없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비둘기 두 마리가 테이블 사이를 유유히 지나다녔고 그 모습을 본 옆 테이블의 남녀는 질색했다.
이제 비둘기는 도심의 매연과 먼지로 세균의 온상이라 여겨지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나는 비둘기의 발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두 녀석 중 하나가 발을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대도시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는 건 비둘기에게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라 생각하니 절름거리며 걷는 비둘기가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작은 두 발로 얼마나 고단할까. 비둘기에게도 부디 평화가 함께하길..'
비둘기의 발을 들여다보게 된 이후,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남편에게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비둘기 발 봐봐. 꼭 핑크색 구두 신은 거 같지 않아?" 남편은 익숙하다는 듯 그저 웃을 뿐이었다.
마주한 순간 보이는 것
무심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비둘기의 발은 생각보다 귀여웠고 비둘기를 애석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비둘기는 혐오가 아닌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지구는 모두의 것
지구는 모든 존재가 공생하는 곳이다
어느 한 종이 도태된다면 인간 또한 살아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제는 인간중심의 사고를 넘어 동물과 더불어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비둘기의 발
사람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때론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일회성 만남으로 그치면 다행이지만 사회적이거나 의무적인 관계라면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런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이 상처 입는 일이다. 미움의 날은 대개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 나 역시 약점투성이다. 내가 싫어하는 그이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쓰러워지는 '비둘기의 발'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애석한 면을 발견하면 연민이 싹트고 마음을 어지럽히던 미움은 조금씩 증발할 것이다.
그 과정도 결국 타자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함이다.
떠오른 아침 비둘기의 발을 떠올린다
이 아침, 글을 읽으며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 나와는 너무 달라서 버겁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서 '비둘기의 발'을 떠올려보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애석함이 우리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비둘기의 발'을 찾았다면,
그냥 한 번 웃으면 된다.
'허허, 그이도 나처럼 애쓰며 살아가는구나.'
그리하여 오늘 아침,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움보다는 연민의 감정으로 또 하루를 맞이하기를 .
좋은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