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나는 나이 든 나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4화 그녀의 향기

by 박시원


그녀의 향기

나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봤다. 예전과는 좀 다른 헤어스타일과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내 두 눈에 자석처럼 빨려 들어왔다. 마치 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이동을 멈추고 일시 정지한 사이 그녀만이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도 있다. 인간에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신비한 능력들이 있다. 단지 우리는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할 뿐이다.

마치 비디오 플레이어의 기능처럼 순간 정지시켜버리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은 아쉽게도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내게는 그 신비한 능력이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나타났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정례 브리핑을 하는 동아 나는 평소처럼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위트 넘치는 홍보수석의 말에 기자들은 기계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 장난감의 버튼을 누르면 사람 얼굴의 인형이 신호를 받아 웃게 되는 그런 종류의 웃음 말이다.

가끔씩 열정이 넘쳐 앞뒤 분간 못하고 뒤통수치는 몇몇 신참내기 기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청와대에 소속되어 있는 기자라고 보면 된다.

나는 이곳에 들어온 지 불과 며칠 만에 고 기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왜 그토록 우리나라 기자단의 출입처 제도를 강력히 비난했는지를.

하지만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그들 무리의 하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청와대에서 준비한 보도 자료를 기사로 알맞게 써서 송고한다. 마지막으로 기사 끝에 내 이름을 넣어 주면 된다.

항상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무 환경은 경찰서 시절보다 좋다. 욕하는 형사도, 또 기자에게 협박하는 조폭도 없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부 고위직 인사들과의 친분도 어느 정도 쌓였다.

이제 억지로 웃고, 이야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나의 모습이다.

내가 있던 경찰서의 조사실에나 앉아있어야 할 사람들이 전혀 다른 세계인 이곳에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씩 구역질이 난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이란 것을 느낀다.

그들이 잡고 있는 끈을 절대로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지나온 터널은 너무도 어두워서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브리핑이 끝난 후 마침내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기지개를 켰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두 눈으로 들어와 머릿속 특정 부분을 강하게 자극했다. 눈이 그녀를 인식하는 순간 온몸으로 그녀의 향기가 퍼졌다. 이모든 것은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내 눈 보다 몸 안에 어떤 특별한 것이 작동해 그녀를 알아본 것 같았다.

그렇다. 그녀였다.

여전히 그녀는 아름다운 모습을 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난 한참 동안 그녀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서였을까? 아니면 혼자 남아있던 내가 눈에 띄었던 걸까? 그녀가 나가기 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재빨리 노트북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1초, 2초, 3초……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있던 자리를 보니 아무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녀의 눈을 피할 이유가 없었는데……마치 스토커가 된 기분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횡단보도, 집 앞 골목길에서도 그녀의 눈빛을 떠올렸다.

‘혹시나 나를 알아보았던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와 난 너무도 머나먼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나는 길모퉁이에 서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씩 길모퉁이에 한참 동안 서 있곤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녀를 다시 만나길 기다리며…….

며칠 후

그녀를 다시 만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대학시절 내내 잠들기 전 상상으로만 만들어 냈던 조각들이 거짓말처럼 현실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보며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굳이 시간으로 환산하자면 아마도 3초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불과 그 3초의 시간 동안 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뒤돌아서서 뛰어가고 싶은 충동에 강하게 사로 잡혔다.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른다. 그토록 원했던 그녀와의 만남을 눈앞에 두고 기쁜 마음보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더 거대하게 나타날지 나 역시 알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다 위에 자그마한 빙산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 밑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그녀는 이미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검은색 단정한 헤어스타일, 깔끔하게 차려입은 살색 투피스에 높지도 그리 낮지도 않은 날렵하게 생긴 하이힐을 신은 모습은 깔끔함을 중요시하는 이곳과 잘 어울렸다.

더 이상 대학시절의 풋풋한 여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그때도 몸매는 성숙했지만). 성숙한 그녀의 외모는 어느 유럽의 공주처럼 품위 있고 고귀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또한 과한 의상은 아니었지만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몸매(그런 정직한 복장이 더욱 매혹적이었다)를 숨길 수 없었다.

어떤 남자라도 그녀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알프스 어느 산등성이에 피어있는 노란색 야생화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났다.

항상 상상으로만 맡아보던 그녀의 향기였다.

"지난번에 한번 뵈었죠? 한국투데이에 박 기자님 맞으시죠?"

“아, 네.”

몽롱한 향기에 사로잡혀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피한 채 바닥을 보며 대답했다.

나는 마치 겁에 질린 아이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는 곧 우리가 같은 시기에 같은 대학을 다녔다는 것도 알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특별한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이곳은 우리와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그녀는 청와대 홍보부 직원답게 행동했다.

내게 지난번 기사를 잘 보았다는 기계적인 말을 하고 이번 '청와대 내부 정보 유출자' 건에 대한 기사도 잘 작성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보다 더 기계처럼 대답했다.

나의 시선은 그녀의 오른쪽 하이힐 끝에 멍하니 고정되어 있었고 기본적인 이성마저 이미 이곳에서 멀리 도망가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나의 모습에도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그럼 또 뵐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벌써 작별의 인사를 했다.

항상 멀리서 바라보던 그녀의 존재가 내 앞에 살아 걸어와 말을 걸었다는 것에 흥분되었다. 연예인이 내게 말을 걸은 것보다 더 한 감동과 신기함이 몰려왔다. 그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수많은 기자들에게도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대할 것이다. 가볍게 안부를 묻고 ‘잘 부탁합니다.’라는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인사. 이곳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특히나 기자들은 항상 그런 말을 듣는다. 누군가 좋은 기사를 써주면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조금 다른 인사를 건넬 뿐이다.

그녀도 내게 그런 흔해빠진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잠시나마 그녀가 혹시나 나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순간 텅 빈 복도를 채우던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멈췄다.

“저기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녁에 저와 식사하실래요?”

그녀의 그 제안으로 우리 관계가 거짓말처럼 시작되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있을 때도 그녀와 함께 집 앞 골목길 길모퉁이를 지나는 순간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걷고 있다가 돌아선 그녀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순간들이 마치 꿈에서 현실로 잠시 떨어져 나온 조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더욱더 믿을 수 없던 순간은 그녀와 내가 처음으로 깊은 밤중에 나누었던 대화였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 완벽한 교감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아침, 난 그 믿을 수 없는 모든 조각들이 마침내 하나로 맞춰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 맛 본 인생의 달콤함.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인생의 환희!

그리고 그녀를 품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세상 그 어떤 경험보다 황홀했다.

행복이란 기분을 인생 처음으로 맛볼 수 있었다.

난 처음으로 미치도록 지금 이 순간을 지키고 싶었다. 만약 그녀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이제 나도 더 이상 없다.

그녀는 이제 또 다른 나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 후, 나는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그녀는 내 청혼을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언제부터 그랬냐는 듯 너무도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나에게 더 이상 불행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미치도록 행복했다.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복잡하고 힘들게 하는 결혼은 질색이라며 우리만의 결혼식을 먼저 제안했다.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혼인신고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야망이 큰 여자였다.

자신이 결혼한 사실을 알리면 절대로 원하는 자리까지 오르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난 상관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만약 내가 혼인신고를 하자고 고집을 피웠다면 그녀는 나와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는 큰 꿈을 그리고 있었다.

내 꿈은 그녀와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종이 하나로 그녀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우리의 결혼 생활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친 듯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녀만 옆에 있다면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음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그녀가 너무 바빠 함께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녀와 같은 침대를 쓰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고 만족했다.

하지만 그녀는 매일같이 늦게 들어왔고 나는 늦은 시간까지 그녀를 기다리다가 잠들곤 했다.

그녀가 바쁘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서운한 마음이 하나씩 쌓여가고 있다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항상 철저하게 피임을 했고 나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했다. 결혼 초기에는 나 역시도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아기가 태어나면 불후한 내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태어나 살아가게 될까 봐 불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우리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와 그녀를 닮은 작은 생명이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상상은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하지 못할 신비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내게서 떠나 버릴까 봐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를 원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 가져볼래?”

어느 날 내가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답지 않게 갑자기 왜 그래? 당신도 싫다고 했던 거 잊었어?”

“알고 있어. 사실 겁나기도 해. 하지만 너와 닮은 딸을…….”

“그만해.”

그녀는 내 말을 잘랐다. 듣고 싶지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몹시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연인 사이는 반드시 둘 중에 한 명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나야만 싸움이 끝난다.

우리 사이에서 뒤로 물러나는 쪽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나였다. 항상 조심스러웠고 행동 하나하나에도 그녀를 생각했다.

게임으로 치자면 나는 매번 지는 팀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억울하거나 손해 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하나의 게임이지만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게임은 아니다. 이해득실을 따질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게 사랑게임이다.

나는 그녀와 밀고 당기는 사랑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녀를 진실 되게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다른 그녀의 모든 걸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유 있는 불안감에 나는 더 조급해지고 있었다.

내 사랑은 마치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작은 구름 조각 같았다. 보기에는 달콤해 보이지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디로 사라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느낌만은 좋았다.

그녀만을 바라보는 내 모습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녀는 종종 내게 집착 증세가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유독 어떤 한 것에 집착한다. 일반적으로는 일, 사랑, 취미 등이 있다. 또한 각기 다른 성적 취향(강한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여자 구두의 생김새 등)이 있다. 그것들은 삶을 좀 더 윤택하게 해준다.

나는 나를 컨트롤하려고 꽤나 노력했다. 최대한 그녀를 이해하고 자유롭게 해주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녀를 항상 걱정하며 위해주었다. ‘사랑’ 이란 것도 그런 종류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 아닌 누군가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마음. 그러나 그녀는 다른 단어로 받아들였다.

나는 ‘사랑’을 주었는데 그녀는 ‘집착’으로 받았다.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집착으로 변질되어가는 걸까?

왜 내가 준 것과 그녀가 받은 것은 완벽히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어쩌면 자유롭게 살아온 그녀가 나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게 느끼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 더 다가가는 것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내겐 별다른 취미도 없었고 일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녀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을 꿈꾸지만 어림없는 꿈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청소를 하고 우리가 쓰는 침대를 정성스레 정리한다. 매일같이 침대 맡에 놓인 그녀와 나의 베개를 멍하니 바라본다. 매번 믿을 수 없는 꿈같은 현실에 웃음을 짓지만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녀가 사라질 것 만 같은 불길한 상상을 한다.

나는 늘 저녁을 준비한다. 밥이 다되면 먼저 그녀의 밥그릇에 갓 지은 밥을 미리 퍼 담아 밥솥에 넣어 놓는다.

처음에는 불가능했던 여러 반찬을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김치찌개는 미리 끓여놓으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뚝배기에 일단 담아 놓고 그녀가 집에 도착하면 바로 끓이기 시작한다.

결혼생활 초기에 우리는 꽤나 자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물론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나의 작은 정성에 고맙다며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것은 내 삶을 매우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행복감과 함께 오는 불안감은 나의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기에 지금의 행복은 항상 위태롭다고 느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의 불안감은 조급함으로 표출되어 나타나곤 했는데 나는 그녀가 친구를 만난다던지 회식을 참석하는 것조차 싫었다. 나는 항상 혼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는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생활패턴을 바꾸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나는 쉴 새 없이 문자와 전화를 한다. 사실 밤 9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하지만 밤 10시가 넘어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전에 연락을 하면 나를 집착증 환자로 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그녀는 내게 친구도 만나고 취미를 만들어 자신만의 생활을 가지라고 충고하지만 내겐 그 쉬운 일들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또한 그녀와 결혼을 한 뒤 일도 뒷전이었다. 내 인생은 오로지 그녀만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는 점점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여느 부부에게나 그렇듯 잠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일로 인한 피로 때문이라고 애써 변명했지만 세상에 어느 배우자가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까.

하지만 나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를 이해해주는 마음씨 넓은 남편처럼 연기할 뿐.

사실 남녀 관계라는 것은 쉽게 하나가 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두부보다 더 연약해서 물러지고 부서지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기름에 튀기고 부쳐서 겉을 딱딱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겉을 공고하게 다지면 수많은 위기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항상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준비가 된 건 아니었다.

사실 이러한 위기가 있을 때는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서툴고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남녀관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책도 보고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그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전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차가움에 나는 막연한 두려움을 맞닥뜨리고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조급함 마음을 잘 참았던 이전과는 다르게 나는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문자와 전화를 했고 그녀가 늦게 들어오면 심지어 화를 내기도 했다. 우리의 관계를 위태롭지만 지켜주었던 나만의 기준을 나 스스로 무너뜨려 버렸다.

내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 우리는 당연히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우린 완전히 정반대 성향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벽을 주먹으로 때려 손을 다치기도 했다. 그때 그녀는 나의 그런 모습에 소름 끼친다며 집을 뛰쳐나갔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녀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녀를 너무도 사랑해 표현할 방법이 없는데 그녀는 그것을 집착으로 보고 내가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화가 났던 것뿐이다.

사실 그녀는 나의 모습에서 공포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을 했다.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나를 멀리하는 그녀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빌고 또 빌어야 했다. 입을 굳게 닫고 있던 그녀에게서 나 올 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눈물을 보이며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고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사과를 받아주었다(정확히 사과를 받아 준 것 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고 아니, 그녀는 변했다. 나의 계속되는 문자와 전화에 이제는 무응답으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좀 늦어. 기다리지 말고 먼저 밥 먹어’라고 연락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화가 났고 참을 수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녀의 귀가가 늦어질 때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벽을 내려치고 물건을 던지며 화를 표출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너무나 쉬웠다. 그럴 때마다 항상 불같이 화를 내던 그녀였지만 언제부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반복되는 나의 사과와 용서 구걸.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곧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한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내가 말했다.

“나, 나 계속 사랑해 주는 거지?”

사실 그 상황에서는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거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게 그리 없어 보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의 실수를 이해해주기 바랐다. 그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쪽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 끄덕이며 자리를 피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란 놈은 정말 답이 없어.’ 혹은 ‘조금만 기다려, 우린 이제 곧 끝이야!’

분명 그런 종류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성을 잃게 만든 것은 그녀의 무관심이 아니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승진을 두고 일각에서는 홍보수석과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나의 참을성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소문을 접한 당일 나는 그녀에게 공격적으로 따져 물었다.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행동이었다.

그녀에 대한 소문에 물론 당황했지만 당연히 그녀가 부정하며 나를 위로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다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안아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격정적 키스…….

남녀관계는 변명과 이유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몸짓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때도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녀의 진실된 마음, 신뢰 가득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내 바람과는 달랐다.

“사실이라면 어쩔 건데?”

그녀가 몇 초 동안 나를 바라본 뒤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음정의 변화 없이 한음만으로 노래를 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뭐라고!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이란 말이야!”

나는 너무도 화가 나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넌 걸레야!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어!”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녀의 눈빛이 마침내 흔들렸고 나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에게…….

하지만 그다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더 가관이었다.

“쓰레기…….”

사실 집으로 오면서 수십 번 반복했던 말이 ‘쓰레기 같은’이었다.

본인에게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지만 다른 남자와 단둘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목격된 만큼 나는 죽고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흔들리던 그녀의 눈빛이 강하게 멈추고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나는 그녀의 팔을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선아야. 잠, 잠시만…….”

나는 그제야 내 모습을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며 도망치듯 문밖으로 뛰쳐나갔고 나는 둔기에 머리를 맞아 뇌기능이 잠시 멈춘 듯 멍하니 서있었다.

잠시 후

온 세상의 외로움이 내 몸을 휘감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나는 아마도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녀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거라고…….

사랑이라는 것에 빠져버리면 시야는 확 떨어진다. 100% 시야로 세상을 보았다면 사랑에 빠진 후 20% 의 시야만 확보된다. 축구선수로 예를 들어보면 몇 발자국 앞에 한 선수만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건 굉장히 치명 적이다.

나 역시도 온전한 시야로 세상을 보지 못했다.

무슨 짓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그녀를 잡고 싶었다.

그녀는 나의 계속된 사과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거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집을 나가 버릴까 봐 전전긍긍했지만 그녀는 집은 나가지 않았다. 물론 내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했고 그녀를 기다리다 새벽에 지쳐 쓰러진 후에나 집에 들어왔다.

또 그녀는 더 이상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자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집을 나가 버릴까 봐 불안했고 이렇게라도 있어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걸 상상하면 또다시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성을 잃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몇 주 후, 나는 그녀를 미행했다. 모든 소문들이 사실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불안한 상상은 항상 사실이 되고 만다.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교외에서 만났고 가벼운 스킨십으로 서로를 반겼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더니 끝도 없이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두 사람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급히 차를 돌려 어디론 가로 향했다.

홍보수석은 유명 연예인과도 염문을 뿌리고 다닐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미국 최고 명문대를 졸업 후 최연소 홍보수석이 된 인물이었다. 그의 외모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40대 초반이지만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고 항상 깔끔한 정장과 넥타이에 잘 정돈된 머리 그리고 20대도 울고 갈 만큼 다부진 체격, 세상은 한 사람에게 모두 다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얼굴은 영화배우도 울고 갈 만큼 매력적으로 잘생겼고 집안은 국내 서열 3위안에 드는 재벌가의 손자였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틈만 나면 봉사를 하러 다니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이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더 존중해주었다. 누구 하나 뒤에서 그를 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너무 완벽한 사람이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철저한 계획 하에 만들어진 ‘로봇설’ 이 인터넷상에서 떠돌기도 했다.

그가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라는 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두 사람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황급히 돌아선 이유는 인정하기 싫지만 두 사람이 그림같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마치 유럽의 왕자와 왕비의 모습 같아 보였다.

품위 있고 아름다운 두 사람을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내가 그 사람보다 잘난 것이 있을까? 아쉽게도 없다. 굳이 찾자면 김치찌개를 더 잘 끓이는 정도였다. 그녀를 위해 수백 번도 더 끓여 본 김치찌개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 길로 지방 어느 모텔에 박혀서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물론 그녀도 날 찾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먼저 접근했다면 그건 이미 끝난 게임이다.

사실 그녀가 나를 걱정하며 찾아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 일뿐이었다. 내가 사라져도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

누구 하나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과거 그리고 현재도 똑같다. 다른 이들에게 나는 언제 왔다 언제 가는지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선들바람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녀에게도 나는 그런 걸까?

절망스러웠지만 그렇게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오래전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땐 단 한 번이라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싶었고 그녀를 갖기 전에는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때는 더 이상은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이루어졌을 땐 그녀가 평생 내 곁에서 나만 바라보기를 원했다.

그녀를 향한 나의 작은 바람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이루어졌다. 예전의 나였다면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했던 것에 만족하며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훗날 후회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컴퓨터를 열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왕자님은 열애 중?’

모든 여성의 로망이자 한국판 프린스로 불리는 김건우(現청와대 홍보수석) 가 목하 열애 중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소식이다.

그의 열애 상대는 청와대 홍보부 직원으로 미모의 재원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측근에 의하면 두 사람은 최근에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서울 외곽에서 몰래 데이트를 종종 즐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미혼인 그와 달리 그녀는 미혼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승진도 ‘홍보수석의 세심한 배려가 아니었겠느냐’ 라며 두 사람의 열애설에 힘을 실었다.

정확한 사실은 김 홍보수석이 밝혀야 하지만 직속 부하직원과 열애설은 그의 청렴한 명성에 큰 흠집을 남길 것만은 확실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미혼여성의 설렘은 절망과 실망으로 뒤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기사를 다 쓰고 안면이 있던 연예부 기자에게 메일을 전송했다. 잠시의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녀가 행복해지기 위한 하나의 힘든 과정이라고…….

다음날, 연예부 기자는 청와대 출입기자인 나를 믿고 기사를 냈다. 나의 부인이 연루된 스캔들의 정보를 주고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반응은 예상대로 전국이 들썩였다.

기자들은 홍보수석의 입장을 들으려고 기다렸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 침착하게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생각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들려오는 그녀의 하이힐 소리 템포가 평소보다 미세하게 빨라진 것을 느꼈다.

순간, 나의 손도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몹시 불편한 표정인 것 같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혹시, 알고 있는 걸까?’

그녀는 왼손을 핸드백에 살짝 얻고 오른손을 이용해 양발의 구두를 벗었다.

오른발을 약간 올린 상태에서 무릎을 접는다. 그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발을 내려다본다. 그 순간 오른손으로 올라와 있던 오른발의 구두를 부드럽게 벗긴다.

그 찰나의 순간에서 나는 강한 성욕을 느낀다. 물의 흐름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육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가슴, 그리고 구두가 벗겨지면서 나타나는 그녀의 우아하고 섹시한 발, 스타킹 혹은 양말을 벗을 때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구두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재빨리 나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것 역시 그녀를 사랑하는 수만 가지 방법 중 하나였지만 남들과 다른 나의 성적 쾌감이 그녀의 존중을 받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기에 말하지 않았다.

나의 심장 박동 수는 굉장히 빨라졌지만 그녀의 행위를 보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꼈다.

그녀는 나를 의식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몇 시간 후,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식사해."

"어?"

나는 순간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혼란도 잠시, 나는 일어나 식탁으로 갔다.

그녀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나 역시 밥을 먹는 일에만 집중했다.

너무나 고요한 순간이었다. 음식물을 입에 구겨 넣고 아주 조심스레 씹었지만 그 소리마저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가 내게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 관계가 이렇게 되기 전에는 그녀가 가끔씩 하던 행동 중 하나였지만 (물론 기분 좋을 때만) 지금 상황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침묵을 깨며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어땠어?"

"당신도 알고 있잖아."

그녀가 밥을 먹는 일에 집중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숨은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는 기사를 쓴 주인공이 나란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았다면 나와 같은 식탁 위에 앉아있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

"말해봐."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 곤란에 처해있어."

나는 슬며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다시 말을 꺼냈다.

"당신이 잠시 동안 이 집을 나갔으면 해"

"뭐?"

예상치 못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 때문에 조금 놀랐다.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한 거 당신도 알잖아. 그리고 때마침 나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거든."

"아니, 난 몰라. 최소한 변명이라도 해줄래?"

"싫어. 솔직히 당신과 당분간 얼굴도 마주치기 싫어. 당신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오르거든. 근데 이 상황에서 변명이나 하라고? 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바보같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사실이냐고?"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믿지 않았어."

"그놈의 믿음, 믿음! 그럼 소문은 뭔데?"

"그만하자."

"무얼 그만해?"

그녀가 일어났다. 그리고 집을 나가며 말했다.

“당신이 못 나간다면 내가 나갈게.”

여자들이란 이렇게 답답한 존재인 걸까?

그녀의 새로운 남자 그리고 내가 한 짓을 생각하니 갑자기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은 마치 예전 대학시절의 그녀처럼 내가 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멀리 있는 듯했다.

스캔들이 터진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홍보수석의 입장표명이 있었다.

이번 기사는 심각한 명예훼손이며 날조되었기에 신문사와 담당기자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명인으로써 많은 스캔들을 겪어왔고 때론 웃으며 넘기는 일도 많았지만 이번 건만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첫 번째 이유는 기사에서 지목한 상대가 홍보부 직원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인사 청탁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그가 광분한 이유는 아마도 이 부분 때문일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의 이미지는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항상 원칙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를 차기 대통령 감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은 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안길 수밖에 없는 사건이기에 초강수를 띄운 것 같았다.

확실히 그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

'그녀와 내 입을 막고 이번 사건을 덮으시겠다.'

나는 화가 났다.

성공에 목마른 사람들, 아니 이미 성공한 사람들에겐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자신의 명예란 말인가.

그를 무너뜨리고 그녀를 구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녀의 휴대폰 통화목록 등 찾아보면 증거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물 중에 거물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쉽게 덮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니, 이미 시작했을 것이 분명하다.

과연 그런 것들로 그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사실 이번 기사가 나간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

권력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권력으로 안 되는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들어와 새삼 실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나와 언론고시라고 하는 좁디좁은 관문을 통과해 기자가 됐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굉장히 똑똑하고 거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물론 사실이다. 나 역시도 그랬고 어떤 기자들은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자신은 그 누구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들은 진정한 권력의 힘을 맛보지 못했다. 웃으며 약한 척하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무섭게 돌변하는 것이 이곳이며 권력자들이다.

그래서일까,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정보를 주지 않는 이상 이번 사건을 다룰 수 있는 기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어떤 것이 최선일까?

단호하게 나가는 홍보수석 발언에 신문사와 연예부 기자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연예부 기자는 이번 기사는 자신이 취재한 것이 아니며 청와대 출입기자의 부탁으로 터트렸다는 발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신문사는 이번 스캔들에 대해서 전혀 아는 봐가 없으며 사실여부가 밝혀지는 대로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진위여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며 내게 주사위를 넘기고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어쩌다 내가 세상에 중심에 서있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게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또 그녀가 누군지 무척이나 궁금해하며 이런저런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일은 자꾸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었지만 그녀를 놓칠 수는 없기에 이제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어차피 나는 지금 케이지에 들어와 있고 문은 닫혔다. 상대는 분명하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스캔들 기사의 정보를 준 기자가 나라는 것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정신은 놀랍도록 맑았다. 이제 종이 울리고 카운터 펀치를 던질 일만 남았다.

얄미웠지만 나는 연예부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밝히겠으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침이 밝았다. 그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 어떤 날보다 더 아침이 밝아오는 게 싫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움츠려 있을 땐 그나마 편안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을 감싸고 있는 피부에 누군가 불을 지핀 것처럼 열이 나기 시작했다.

현재 시각은 아침 6시 43분. 기자회견은 11시.

시간을 멈출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그녀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어차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아. 그 뒤에 나와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 비록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말이야.’

그저 그녀가 내 진심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어느덧 시간은 나를 찾아와 문밖에서 노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오며 가며 만났던 정치, 사회, 연예부 기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기자들은 나를 보고 놀란 듯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이크 앞에 서 정면을 응시한 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앞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그 앞에 놓인 노트북들 그리고 카메라.

나는 항상 저 안 어딘가에 있었는데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또 나는 무엇을 원해 이 자리에 서있는 걸까?

현기증이 났다. 너무나 혼란스러워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수근 거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집중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정신을 차린 후, 나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꽤나 조리 있게 이번 스캔들에 대해 설명했다.

홍보수석의 상대는 지금껏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며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상태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부부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그녀는 누구보다 가정에 충실한 여성이라고 그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홍보수석이 사실혼 관계에 있는 그녀에게 접근해 화목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두 사람의 불륜관계를 참을 수 없어 기사로 터트린 것은 기자로써 해서는 안 될 중대한 실수라는 점도 인정했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감정적으로 호소했다. 이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가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긴 것으로 비쳤고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들의 분노를 이끌어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 쏟아졌고 내가 피할 곳은 오로지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집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공포에 떨었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고 문자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솔직히 너무 무서웠지만 기댈 곳이 없었다.

늦은 밤까지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움직이지 않은 채 있었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너무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이프 존을 나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 공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얼마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문 앞에 서서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잠시 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어둠 속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그녀는 불을 켜지 않은 채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불쌍한 사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니,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일어나 그녀를 힘껏 않고 사랑한다고 소리치고 절대로 손을 놓지 않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리를 위한 일이었다고 자신했지만 그녀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서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돌아서 다시 나가버렸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다음 하루가 지나갔다.

온 나라는 최고 인기스타인 홍보수석이 삼각 스캔들에 휘말렸다며 들썩였다. 확실히 그는 무너져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기다렸다는 듯 언론도 그의 복잡한 여자관계의 말로라며 흠집 내기에 열을 올렸다. 언론이란 게 그런 것이다. 그저 여론에 편승하는 박쥐 같은 존재.

사람들은 모두 내편인 듯했지만 그녀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연락도 되지 않았다. 용기 내서 전화를 해도 신호조차 가지 않았다.

입장을 표명하지 않던 홍보수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이번 사건에 대해 공인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느낍니다. 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고 지나 온 길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사실만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녀의 인사발령에 제가 관여한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녀는 능력이 매우 출중한 인재이기에 누구보다도 기회를 빨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의 친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그녀가 아닌 누구라도 똑같이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 저와 그녀의 관계에 대해 떠도는 모든 억측과 의심들은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저 역시 그녀가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린 직장동료 이전에 친구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얼마 전, 그녀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박윤재 기자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분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한 남자로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오해를 할 수 있고 그 결과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이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저의 불찰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그녀와 저는 친구 일뿐 연인관계는 절대 아닙니다.

이일로 그녀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오늘 이후로 청와대를 떠나려 합니다. 저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고 피해를 보았습니다.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자리는 과분하며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그동안 분의 넘치는 사랑을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하는 모든 일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지지를 해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처음으로 돌아가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리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무슨 말이란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분명한 것은 그가 거짓말을 하며 다시 한번 국민을 우롱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믿지 않았지만 그러기엔 그가 포기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는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기자회견이 있은 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설명을 요구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그녀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그럼 내가 본 건 뭔데? 당신 홍보수석과 몰래 만나는 거 다 봤어."

"친구라고 친구! 친구끼리 따로 만나지도 못해? 난 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행동 한 번도 하지 않았어."

"그, 그럼 둘이 스킨십하고 그런 건 뭔데?"

내가 당황하며 물었다. 나의 마지막 반격.

"뭐라고? 그래 좋아, 마음대로 생각해. 당신은 항상 당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잖아. 언제 한번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믿었던 적 있었어?"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언제부터 친구였는지, 정말 친구 이상의 관계는 아닌지 캐묻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끝까지 그녀를 의심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한심하기도 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결혼생활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오해 같다고 해명 기사를 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신의 불찰이라며 물의를 일으킨 것을 사과했다.

결국 삼각 스캔들의 당사자 두 명이 사과를 했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번 스캔들은 오해에서 시작되었다고 결론이 났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패자만 있는 게임이었다. 홍보수석은 자리에서 물러나 자신이 늘 꿈꿔오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일을 시작했다고 언론은 떠들어댔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보고 일종의 '쇼'라고 했다.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지만 한번 더럽혀진 그의 명성은 회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사회활동이 힘들어진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회사는 내게 퇴사를 요구했다. 삼각 스캔들로 인해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에 불과했고 권력의 힘을 나는 다시 한번 느껴야 했다.

또 한 그녀는 내게 결혼생활을 정리하자고 통보했다. 나는 좀 더 시간을 가져보자고 말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사실, 예상 가능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막상 닥쳐오면 마치 예상 못했던 것처럼 슬퍼진다.

그렇게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그녀의 향기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편. 나는 나이 든 나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