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는 나이 든 나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5화.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by 박시원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2009년 2월

따스한 햇살, 실크처럼 부드러운 바람, 지중해 바다의 자장가 같은 파도소리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깜박깜박, 뇌의 깜빡이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눈꺼풀도 내려앉았다 다시 올라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른함과 피곤함이 뒤섞여 너무나 기분 좋은 느낌에 나는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무언가 나의 달콤한 낮잠을 방해하는 것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무엇일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자.

기억이 났다!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특별했던 ‘기억’ 때문이다. 내 안에서 나를 막아 세운 건 그녀와의 기억이다. 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서였던 걸까? 그녀는 누구였을까?

오리무중의 질문에 빠져있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노을이 붉게 물든 바닷가를 보며 서있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뒤,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그리고 붉게 물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눈에는 곧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노을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봄의 오후처럼 너무나 따스한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누구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눈을 보고 있자니 나는 이유 모를 슬픈 감정이 올라와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가슴이 답답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숨을 쉴 수 없었고 온몸의 신경이 요동치며 심장을 조여 오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파도가 해일이 되어 나를 집어삼키려 달려드는 순간, 그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나는 욕조 안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처음으로 비싸게 주고 산 넥타이는 나의 목을 있는 힘껏 조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자살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자 겁이나 도망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니까. 하지만 그보다 다른 이유로(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살아야만 한다. 죽으려고 스스로 자신의 목에 넥타이를 감은 사람이 이제 와서 살고 싶다니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가. 죽고 사는 것이 어디 자장면을 짬뽕으로 바꾸는 것처럼 즉흥적인 일이란 말인가. 나 역시도 나의 결정에 당황했다. 이것은 본능일 수 도 있지만 내가 느낀 것은 누군가 나를 잡아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넥타이가 경동맥을 압박하고 있는 바람에 더 이상 머리 쪽으로 가는 혈류가 흐르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되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몇 초 후 실신하게 될 것이다. 뇌의 산소 공급이 멈춘 상태로 일정 시간이 흐르면 나의 뇌세포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없어질 것이다. 나란 존재는 완전히 나의 몸과 분리될 것이다.

내 영혼은 어디론가 사라질 테고 몸은 곧 썩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져 버려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비록 언젠가 사라져 버릴지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근데 왜 나는 하필이면 지금 이 상황에서 죽으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지금 자살 시도를 후회하고 있는 걸까? 과거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영화에서처럼 넥타이가 끊어지거나 튼튼한 샤워기가 떨어지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남아있는 작은 의식만으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시간을 아껴가며 써야 했다. 1초 동안 나는 살아서 이곳을 나가야 할 방법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1초라는 시간은 너무도 짧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해 1초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비누라도 주변에 있었다면 목에 발라 미끄럽게 한 다음 빠져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던 샤워기는 어찌나 그리 튼튼한지 나의 적지 않은 몸무게를 거뜬히 지탱하고 있었고 늘 손에 잡힐만한 곳에 있었던 자그마한 칼 (어디선가 욕조에 앉아 칼을 이용해 목숨을 끊는 것이 조금 더 편안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항상 욕조 옆에 두었다)은 어디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나는 죽는구나. 애초부터 불행한 인생,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생.

내 인생은 늘 외로웠고 아팠다.

누군가 인생은 공평하다고 말한다. 행복과 불행은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고. 아니,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아니었다.

어릴 시절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내게 찾아온 운명 같은 그녀마저 차디찬 기억만을 남긴 채 떠나갔다.

내게는 태어나서부터 늘 불행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제 그 불행도 여기서 끝나리라.

몇 초가 몇 시간처럼 흘러갔다.

고통의 순간은 가고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래 이제 편안히 가자.

나는 모든 걸 포기했다.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지며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아가야, 꼭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사렴."

"엄마, 나는 지금 너무 편안해요. 그냥 이대로 떠나고 싶어요. 또다시 악몽의 터널 속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가야, 꼭 자랑스러운 엄마의 아들이 되어주길 바랄게."

"나, 나는……."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엄청난 고통이 또다시 몰려오고 있었다. 도저히 고통을 벗어날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발버둥 쳤는지 신고 있던 양말이 거의 벗겨져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에 번쩍하고 플래시가 터졌다.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발바닥으로 욕조의 바닥을 밀었다. 물기가 없어 뻣뻣했던 바닥인지라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았다. 나는 계속 밀었다. 그러자 몸이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쉬지 않고 밀고 또 밀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내 몸을 힘껏 밀 수 있었다.

몸이 위로 올라가며 목을 팽팽히 붙잡고 있던 넥타이 끈이 느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손을 위로 올려 샤워기를 붙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서 떨어져 버렸다.

나는 힘없이 욕조 안으로 곤두박질쳤다. 살았다는 기쁨과 환희도 없이 정신을 잃은 채로 욕조 바닥에 누워있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역질을 하고 다시 욕조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시 목숨을 얻은 기쁨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처참히 무너져버린 나의 인생으로 되돌아왔다는 현실 때문이었을까?

이유도 모른 채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말라 없어질 때까지 목 놓아 계속 울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울고 난 뒤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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