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인간의 세계
인간의 세계
조그만 창문으로 햇볕이 쏟아졌다.
어느새 아침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힘겹게 다시 눈을 떴다.
이곳은 천국의 어디쯤 일까?
여느 아침보다 상쾌한 느낌에 나는 내가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자살 시도 후에 상쾌한 기분 일 수 없으니까.
몸을 일으키자 눈물, 콧물, 침, 피 등이 뒤섞인 액체가 얼굴에 묻어 껌처럼 찐득거렸다.
‘확실히 죽은 건 아니군.’
어젯밤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분명 죽어가고 있었는데, 누가 날 살린 거지?
나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마음대로 쉽사리 되지 않았다. 손발이 제 기능을 못하는 작동 불능 상태였다.
잠시 욕조에 몸을 기댔다.
벽에 붙어있던 샤워기는 욕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벽면에 타일 몇 개가 떨어져 나가 욕조 안으로 날카로운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지난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치열했던 사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침의 상쾌함도 잠시 뿐, 이내 밀려오는 허탈감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을 생각의 늪에 빠졌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옮겨 손을 뻗었다. 온몸의 근육들이 몇십 년 만에 움직이는 듯 매우 서툴렀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간신히 수도꼭지를 돌리자 욕조 바닥으로 물줄기가 세차게 떨어지며 금세 물이차 오르기 시작했다.
물은 어느새 내 가슴까지 차 올라왔다. 그리고 욕조 밖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물이 가득한 욕조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깊은 바다 밑으로 떨어지듯 내 몸은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눈을 떴다. 태양빛이 작은 창을 통해 물 위로 떨어져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물의 움직임에 따라 빛이 이리저리로 춤을 추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 붙잡고 싶었다. 손을 뻗었지만 빛은 잡힐 듯 잡힐 듯 이리저리로 빠져나갔다.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생의 궁극적 해답처럼 말이다.
나는 길고도 길었던 시간을 뒤로한 채 욕조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살아서 나올 거라고 생각 못한 욕실에서 내 두발로 걸어 나왔다.
내가 다시 ‘인간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2주가 지나갔다.
2주 동안 나는 잠만 잤다. 자다가 깨면 허기를 달래려 닥치는 대로 먹었다. 배를 채우면 다시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니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루는 먹을 게 다 떨어져 집 앞 슈퍼로 달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바구니에 한가득 집어넣으니 주인아줌마가 멍한 표정으로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물건을 계산했다.
아마도 정확히 계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본 주인아주머니도 정신을 놓았지만 나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졸음에 잠시도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리고 먹었다. 그리고 또 잠을 잤다.
그렇게 2주가 흐르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생각보다 상쾌했다. 다시 졸음이 오지 않았다.
집안은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오랜 여행 후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집안 곳곳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어질러 놓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먹다 버려진 음식이 내뿜는 악취가 코끝을 날카롭게 찔렀다.
한여름도 아닌데 집안에는 온갖 벌레들이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축제, 나에게는 절망.
나는 다시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로 온몸을 적셨다. 2주 동안 쌓였던 모든 것이 38.5 도의 화학물질이 몸에 닿는 순간 스르르 녹아내렸다. 샤워를 마친 후 엉망이 된 욕실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온종일 집안을 치우고 닦기를 반복하니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쓰레기 더미를 모두 치우자 집안 곳곳이 새집처럼 반짝였다.
쓰레기장 같았던 집이 이처럼 깨끗해지듯 나 역시 내 안의 공간을 깨끗이 치우고 싶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1평도 안 되는 좁디좁은 마음의 공간일 뿐인데…….
지금 나는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도 무섭다. 하지만 동시에 죽는 것 또한 무섭다. 죽음 이후 나의 영혼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난 지금 죽음이 무서운, 하지만 살고 싶지 않은 남자다.
죽지 못하면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디든 갈 수는 있겠지만 나의 과거는 내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내가 더 이상 이쪽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은 기자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단지 그냥 살아가는 것뿐이리라.
그날부터 나는 일용직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지하철 공사현장 또 다른 날은 텐트 지지대를 깎고 다듬는 공장 등 매일매일 다른 일을 했다.
일에 적응될 때면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쉽지 많은 않았다. 일도 고되고 힘들었다. 일용직이다 보니 내게 주어진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힘들고 지쳐 잠들면 그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지 않는 것도 매력 중 하나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올 때면 항상 거짓말을 했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기 때문에 일용직을 하며 살아간다고 하면 꼭 일이 끝난 후 저녁을 사준다. 그렇게 순댓국에 소주 한잔을 기울인 뒤 집으로 와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잠들면 꿈속에서 지난날 행복했던 나의 모습을 만난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는 현재의 나를 발견한다. 둘 다 존재 가능한 나의 모습일까?
몇 개월 동안 내 삶은 쳇바퀴 돌듯 그런 식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만 그녀를 잊자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주변 설렁탕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뭐 드시겠습니까?”
“설렁탕 하나....... 고 기자님?”
놀랍게도 그곳에 고 기자가 있었다.
“자네 행색이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은데, 하하하.”
나는 내 모습을 힐끗 한번 내려다보고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 기자는 예전보다 살이 오른 모습이었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있었다(작음 음식점 사장의 전형적인 모습). 하이에나 같은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후덕한 인상 좋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제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긴 아세요?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신 거예요?”
“이봐. 말은 바로 해야지. 난 잠시 여행을 다녀왔을 뿐이라고. 난 서울을 떠나지 않았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유명하신 기자양반이 이 꼴이 뭐야.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다녀야지.”
그는 나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기자 그만뒀어요. 아, 아니다. 정확히 잘린 거죠.”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의자를 빼고 앉으며 물었다.
그는 장사도 잊은 채(물론 손님이라고는 몇 명 되지 않았지만) 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나는 그동안 겪었던 모든 걸 털어놓았다. 하지만 죽으려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제 가 볼게요.”
“그래.”
나는 가게를 빠져나왔다.
“박윤재!”
고 기자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와. 그리고 일자리가 필요하면 여기다 연락 한번 해봐. 최소한 지금 하는 일보다 낫지 않겠어. 집에 가서 거울에 비친 자네 얼굴 좀 보라고.”
그가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건네주었다.
“네?”
“자네 가족도 친구도 없잖아. 그러니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나도 별 볼일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자네 이야기는 들어줄 수 있지 않겠어? 그리고 그곳이 꼭 아니더라도 다른 일자리 찾아보도록 해.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지금 생활이 좋아요.”
나는 메모를 다시 돌려주려고 했지만 그가 이미 돌아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냥 가지고 있다가 버려도 늦지 않을 거야.”
고 기자를 만난 후에도 나는 계속 같은 생활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지 주머니에 있던 메모지를 발견했다.
나는 메모지를 방바닥에 던져버렸지만 며칠 후 그것이 다시 나의 눈에 띄었다.
나는 왠지 모를 끌림에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가 한참 동안 울리다 수화기 너머로 굉장히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귀찮으니 용건만 말하고 빨리 끊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거기 여성 매거진 아닌가요?”
“네에.”
나는 내가 전화한 곳이 제대로 맞는 곳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 그 편집장님 계신가요?"
"네에."
"바꿔주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결 신호음이 들리더니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에, 이대로 편집장입니다."
"저....... 고진우 기자 소개로……."
"에....... 그 이력서 가지고 한번 오세요."
"네?"
"뭐, 그냥 오시던가. 에....... 내일 오세요. 자, 그럼 내일 보는 거로 하고 저는 이만 끊겠습니다."
그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조금 이상한 말투였지만 전화를 건네준 여성보다 건방져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구깃구깃한 메모지를 들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자 종점 '강화'라고 적혀있었다.
긴 한숨을 내쉰 후 창가에 기대앉았다.
창문 밖으로 키가 큰 건물들이 보였다. 조금 지나자 좀 더 작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 달리자 작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푸르른 논과 밭이 펼쳐졌다.
벼들이 마치 초록색 바다처럼 바람에 넘실거렸다.
바다처럼?
내가 바다를 실제로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바다를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그녀와 함께 바다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 이대로 바다로 향한다면 아마도 난 시체로 둥둥 떠다니다 어느 해변에서 살이 퉁퉁 부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왜냐면 바다는 슬프니까.
창밖을 구경하는 사이 버스는 강화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 밖으로는 자그마한 시장이 펼쳐져 있었는데 주로 할머니들이 집에서 가져온 채소들을 팔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그곳의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낯선 풍경, 하지만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 이국적이지 않은 모습의 터미널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노인들만의 나라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잡지사는 그나마 제일 높은 건물에 있어 찾기 어렵지 않았다. 건물은 기껏해야 5층 정도 되어 보였고 지어진지 10년 이상 된 것 같았다. 이 지역은 큰 건물이 없어 어디든 쉽게 찾을 수 있어 보였다.
나는 잡지사에 도착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에....... 뭐, 그렇게 멀진 않죠? 하하하."
'아니 엄청 멀어.'
"네, 멀지 않네요."
나는 속마음과 다른 대답을 무표정하게 했다.
나는 가끔 궁금하다. 왜 우리는 속마음을 숨기고 사는지. 왜 세상은 마음대로 말하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편집장은 나를 웃으며 맞았다. 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키는 크지도 그리 작지 않았고 갈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누렇게 아이보리 색으로 변한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 왼쪽 주머니에는 오래돼 보이는 만년필이 꽂혀 있었다.
잡지, 신문뿐 아니라 낚싯대, 철가방, 각종 신발과 배낭 등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난잡한 사무실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두 명의 불친절한 여직원이 있었다.
편집장은 재빨리 종이컵 두 개를 펼쳐 놓더니 싸구려 인스턴트 스틱 커피 두 개를 뜯어 부었다.
그리고는 양손을 이용 빈 커피스틱으로 두 잔의 커피를 동시에 휘휘 저었다.
"자, 드셔 봐."
나는 아무 말 없이 종이컵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생각보다 맛있어 놀랐지만 다음 그의 말에 더 놀랐다.
"유명한 기자양반을 이렇게 보니 반갑습니다."
"네?"
"에……뭐, 나쁜 뜻은 아닙니다. 하하."
그의 말에 나는 입 꼬리를 미세하게 올린 채 쓴웃음을 지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았다.
그는 말을 시작할 때마다 '에'를 붙였다. 흡사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것 같지만
'에'라고 하는 짧은 순간 생각을 정리하는 것 일 테다. 마치 박찬호가 인터뷰 때마다 ‘음, 음’ 했던 것처럼.
"이력서 여기 있습니다."
나는 이력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아, 이력서! 에....... 출근하시죠 뭐. 하하."
그가 이력서를 집어 들며 말했다. 잠시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에....... 솔직히 시골이다 보니까 하겠다는 사람이 그리 많이 없습니다."
그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으로 보였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띄어주며 말할 수 있었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활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에....... 아시다시피 여기가 서울 하고는 많이 틀립니다. 보수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기존에 지내시던 곳이랑 많이 다를 수 있다 이겁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에, 그럼 이제 한 식구입니다. 하하하."
그는 내게 악수를 청하더니 크게 웃었다.
아직은 새로운 곳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일단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먼저 이전 잡지들을 모두 읽어보며 이 회사의 특징(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예정이지만) 등을 파악했다.
오후 5시가 되자 편집장이 오늘은 새로운 직원이 왔으니 회식이라며 먼저 가방을 들었다. 나머지 직원들도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편집장은 아주 맛있다며 내게 '젖국'이라는 음식을 권했다. 그리고 순무김치라는 것도 처음으로 맛보았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처음 맛보고 처음 보는 광경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생겼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이런 낯선 감정에 대해 첫 번째 기사를 쓰려고 마음먹었다.
편집장은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예술가라며 예술가는 스스로 제한을 두면 진정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곳에 펼쳐진 모든 것들에 대해 기사를 썼다. 노파, 사물, 풍경까지 의미를 두고 철학적으로 접근했다.
내 글을 본 편집장은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건 좀 난해 합니다. 구독자는 대부분 일반 여성들이지 뭐, 학자나 철학가 들이 아니다 이겁니다."
"무슨 내용이든지 다 가능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에....... 에....... 그랬죠. 그랬습니다만 이건 좀 그렇습니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자!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이걸 좀 대중적으로다가 바꿔서 실어보도록 하죠."
그는 안경 너머로 나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좋습니다."
나는 그의 의견을 수용해 기사를 교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 다른 내용이 되어버렸다.
제목은 '감성의 발견, 그 섬 강화'. "
'젠장.'
어쨌거나 나는 이곳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것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내 할 일에만 충실했다. 관찰도 때론 일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특히 두 명의 여직원이 하는 행동에 집중했다. 두 명의 행동은 아침 출근 후부터 극명하게 갈린다. 한 명은 출근하고 얼마 안 있어 책상 위에 있는 큼지막한 공주 거울로 시선이 간다. 그리고 머리를 이리저리 만진다던지 화장을 쉴 새 없이 고치는 작업을 계속한다.
그러나 다른 여직원은 거울이 아닌 핸드폰에 시선이 가있다. 핸드폰을 들고 있다가 내려놓고 10초도 안되어 다시 집어 들기를 반복한다.
한 명은 핸드폰에 중독되고 다른 한 명은 거울에 중독된 듯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뒷전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두 여직원의 다른 행동은 매일같이 똑같이 반복되었다. 처음 통화할 때도 느꼈지만 그들에게는 웃음과 친절은 찾아볼 수 없다. 억지로 일하는 사람들처럼 굉장히 지루해하며 시간을 때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로 거울에 중독된 여직원은 유독 출근 후 거울에 집착했는데 그 이유는 남자에 있었다.
아침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우편물을 가지고 방문하는 우체부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10시가 되면 안절부절못하며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우체부가 들어오면 웃는 얼굴로 벌떡 일어나 우편물을 받는다.
나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놀랐다. 그녀가 유일하게 웃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편물을 받는 건 언제나 자연스럽게 그녀의 몫이었다. 물론 우체부가 다녀간 뒤에 그녀가 거울을 보는 횟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또 다른 여직원은 분명 아침에 쉴 새 없이 핸드폰만을 만지작거리지만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한쪽 손으로는 핸드폰을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그녀 역시도 그때가 되면 거울을 보기 시작한다. 확실히 그녀는 회사밖에 남자가 있을 것이다.
궁금해서 쫒아 나가고 싶기도 했지만 참았다. 내 일상은 사실 그녀들보다 더 지루하고 할 일이 없다. 나는 딱히 매력적인 기삿거리를 찾지 못했다.
그저 강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날도 나는 가방을 메고 이곳저곳을 걷고 있었다. 서울처럼 길마다 사람들로 꽉 차있는 게 아니라 반대로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왼쪽으로는 산이 펼쳐져있고 그 산을 따라 해안 로가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강이 왼쪽으로는 산이 있는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해안 도로를 따라 설치되어 있는 철조망은 마치 내 안을 가로지르는 그 무엇처럼 치유될 수 상처였다. 분단의 아픔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마저 앗아간다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지나는 이 하나 없는 그곳을 혼자 걸었다. 많은 생각을 하며 걷다 오른쪽 머리 위로 보이는 강화대교를 올려다보았다. 데자뷔처럼 언제가 이곳과 비슷한 곳을 와서 똑같은 행동을 하는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다리 난간 위에 한 사람이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어렴풋 보였다. 시력이 좋지 않아 몇 번이고 찡그려 다시 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봐요!"
내가 힘껏 소리쳤지만 다리 위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 때문인지 그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지체 없이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자 강화대교가 눈앞에 나타났다. 전방 100미터 즈음에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달리고 있는가? 왜 달리는 것일까?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심장박동수를 높이자 내 안에 숨어있던 모든 감정들이 터질 듯 순간 움직였다.
단지 달리기만 했을 뿐인데 마음이 일렁이는 게 이상했다.
끝없이 달리고 싶었지만 다리 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 중년 남자를 보고 멈춰 섰다.
남자는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뭐하시는 거죠?"
내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그러시는 거죠?"
남자는 그제야 내게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뭐하냐고 물었죠? 보다시피."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듯 한 표정과 손동작.
"지금 자살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요."
"왜요?"
나도 모르게 바로 그 이유를 물었다.
남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나는 재빨리 난간 위로 올라가 남자 옆에 걸터앉았다.
"뭐하시는 거예요? 놀랐잖아요!"
남자는 놀란 나머지 다리 아래로 떨어질 뻔했지만 난간을 본능적으로 꽉 잡았다.
"어떤 기분인가 저도 느껴 보려고요."
"지금 나를 설득하려나 본데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어요. 괜히 위험하니까 당장 내려가요."
"그쪽을 설득하고 싶은 마음 조금도 없는데요. 말했잖아요, 저도 느껴보고 싶다고."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몇 번 가로저었다.
"무슨 일 해요?"
"기자예요."
"직업도 좋은데 왜 죽으려고 그래요. 잘 살아보지."
갑작스러운 남자의 말에 나는 놀랐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무슨 말이죠? 죽으려고 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잖아요."
"지금 죽으려고 하는 건 제가 맞겠죠. 근데 그쪽을 처음 본 순간 그냥 그렇게 느껴졌어요. 물론 내가 잘 못 봤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한동안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없이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몇몇 사람들이 뭐라고 소리치기도 했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 걸터앉아 있었다.
어느덧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강 위로 붉은빛을 뿌려 놓기 시작했다.
"다리 난간 위에서 노을 지는 강을 바라본 적 있어요?"
나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행동을 사람들이 평소에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곳에서 이렇게 걸터앉아 노을 지는 강을 보면 너무나 아름다워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에요. 근데 너무나도 위험한 짓이기도 하잖아요."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아름다운 강 위로 뛰어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죽게 되겠죠."
내가 말했다.
"바로 내 앞에 죽음이 있는데 죽음이란 게 이렇게 아름다운 걸까요?"
마치 자신에게 질문한 듯 그는 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실 죽으려고 이곳을 찾았어요. 하지만 고민만 하다가 다시 돌아가곤 하죠. 뒤에서 자꾸 누가 잡아당기는 것만 같아서....... 오늘이 벌써 8번째이네요."
남자가 쓴웃음을 지며 말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노을이 비춰 아름답고 따뜻한 느낌을 주던 강물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차갑고 잔인한 검은 강물이 나를 집어삼킬 듯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겁이나 난간 위에서 내려왔다.
남자도 따라 내려왔다.
"혹시 다시 오 실 건가요?"
내가 물었다.
"만약 제가 이곳에 없다면 두 가지 중에 하나겠죠."
"그게 뭐죠?"
"죽었거나 아니면 다시 살아가고 있겠죠."
남자의 말에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그가 필요한 것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어 줄 수 있는 누군가.
"기자라고 그랬나요? 가능하다면 내 이야기도 멋지게 써줄래요?"
나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를 쳐다봤다.
남자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이야기도 결국 당신의 이야기잖아요."
남자는 뒤돌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반대로 돌아서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마음속 어딘가에 걸려있었다.
지금 내가 본 것은 단지 모르는 어떤 한 사람의 모습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미래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나 역시 계속 궁금해하지 않았다. 사실, 죽고 싶은 이유는 저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생각만큼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삶은 때론 지극히 단순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인생은 복잡한 것보다 기본적인 것들이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직업정신이었을지 모르지만 남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었고 그의 인생사를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그곳을 다시 찾았지만 남자는 없었다. 그렇게 2주를 더 기다려 보았지만 더 이상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남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쓰고 싶지 않았다. 죽음, 자살? 단 한 번도 이런 기사를 내겠다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더욱이 나 자신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남자의 죽음에 대해 글을 써버리고 말았다. 첫 번째 기사를 써내고 한 동안 제대로 된 아이디어 하나 내지 못한 상태였기에 지나가는 똥개라도 잡고 기사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래서 결국 ‘삶과 사람들’이라는 짤막한 기사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다. 죽음과 자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한 고찰이었다. 자살 또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자살을 부각하지는 않았다.
편집장은 잘만 다듬으면 괜찮은 작품 하나 나오겠다며 오랜만에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죽음의 끝에서'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고 자살하는 사람들의 사실적인 인터뷰라며 온갖 자극적인 글로 시선을 끌었다.
나는 편집장을 찾아가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에....... 박 기자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에, 그렇지만 우리는 영리를 추구하는 집단이에요. 사람들이 많이 사서 봐야 한다 이 말인 거죠. 에....... 그니까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사실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며칠간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
얼마 후,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는데 이번 달 판매가 좋다며 내 기사 덕분이라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기분이 썩 나쁘지 많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눈을 홀린 그의 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시골 변두리 잡지사 편집장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겉보기와는 다르게 자리에 맞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편집장은 이런 식의 기사는 언제든 환영한다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찾아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했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싶어 졌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졌다. 그들은 왜 자살을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일이 나에게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더욱더 우울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기에 겁나지 않았다.
어디서 죽음의 끝에 서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가까운 곳에서 찾자면 바로 나 자신이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지만…….
나는 하루를 바쁘게 지냈다. 이곳저곳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그녀에 대한 그리움도 무뎌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척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지는 그녀의 기억에 잠시 과거로 돌아가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익숙해지니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슬픔보다는 이렇게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기뻤다.
나에게는 꿈도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일 뿐이었다.
눈을 감으면 나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우리의 마지막 순간부터 떠올랐고 시간이 갈수록 좋았던 기억이 하나 둘 나를 만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