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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Nov 14. 2016

겨울이 오면 그리움이 하나 더 쌓인다.



겨울이 오면 그리움이 하나 더 쌓인다.   

 

또다시 그 겨울이 온다. 아니,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이쯤이면 오는 녀석.

나는 그 겨울이 싫다. 괜스레 서글퍼진다.

혹자는 그러니까 결혼을 하라고, 소리 높여 말할 것이다. 결혼하면 모든 외로움과 그리움이 싹 사라질까? 거짓말처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생기가 돌던 풍경은 사라지고 황량한 잿빛 풍경만이 남는다.

매년 겨울은 더 추워지는 것 같다.

차가운 바람, 뼈를 애는 추위의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전기장판이 깔린 이불속으로 굼벵이처럼 온몸을 쑤셔 넣는다.

현대문명의 따스함에 몸을 맡긴 채 잠이 들라치면 밤새 창문을 두드리는 차가운 바람 때문에 눈을 뜬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창문을 조금 열어보면 시베리아 뺨치는 칼바람이 순식간에 들여 닥친다.

멍청한 짓을 자책한 뒤 다시 이불속으로 뛰어 들어가곤 한다.

그리고 잠을 잃어버린 채 밤새 이런저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겨울의 서글픔은 어디서 온 것일까?

거리에 손을 잡고 다니는 커플들? 아니면 차갑게 사라져 버린 지난 기억들?

어릴 적 내게 겨울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논바닥에 불을 피우고 깡통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여 신나게 돌리곤 했다. 그러면 못으로 낸 수십 개의 구멍에서 불꽃이 솟구쳐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과학적이다. 그 수십 개의 구멍으로 바람이 들락날락 거리며 공기를 공급해주니 더 활활 탈 수 있던 것이었다.

밤에는 대보름이던 아니던 늘 그렇게 놀았고 낮에는 공을 차거나 물이 얼어붙은 논에서는 썰매를 만들어 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춥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겨울도 몹시 추웠다.

손발이 꽁꽁 얼고 얼굴이 얼고 녹고를 반복해 터버려서 하얗게 일어났다. 귀는 늘 빨갰다.

손이 발이 얼굴이 다 터도 뭐하나 제대로 바르지 않아 붓기도 하고 홍조를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추운 겨울에 누군가에게 대차게 차인 사건도 없었고 트라우마로 남은 겨울의 기억도 없다.

그런데 왜 그리 서글프고 추운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인간의 감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조사도 있고 손잡고 추운 거리를 함께 거닐 사람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예전처럼 해 질 녘 이 집 저 집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지도 않고 더 이상 호빵을 들고 길거리에서 호호 불며 먹지도 않는다.

또 동네 형 누나 친구들과 방구석에 이불을 덮고 둘러앉아 부루마블을 할 일도 없고 시뻘건 불이 활활 타는 석탄 난로 위에 주전자가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단지 그 시절이 그리워서 겨울이 서글픈 것만은 아니다.

그저 자기 일에 바쁜 시절에 사는 것이 서글픈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누군가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겨울과 지금이 다른 것은 그때 나는 걱정할 거 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자괴감 그리고 지나가버린의 추억들에 대한 상실감.

괴로울 것 많은 현실에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추울 수밖에 없다.    

겨울, 나의 그리움은 하나 더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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