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에 있을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준비 중이다. 함께 공부 중인 딸과 함께 시험 접수도 마쳤다. 클릭 한 번 할 때마다 인내의 시간을 견딘 덕에 무사히 같은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매일 밤, 퇴근 후 오랜만에 역사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암기할 게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나이 들어 공부하는 역사는 단순히 연대기표를 넘어선다.
사상 간 충돌지점, 이념의 접점과 균열선, 사회변혁을 꿈꾸는 자들의 꿈틀거림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암기 팁 고수들이 만들어놓은 기상천외한 두음자 암기법 세계를 하나하나 정복해가는 여정도 유쾌하다.
어제는 조선 후기를 공부했다. 내 블로그와 브런치 타이틀인 간서치 원조 이덕무가 나오는 파트가 너무 짧아 느껴지는 아쉬움을 정조의 치적을 유심히 살펴보며 달랬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 그의 일성록은 매일 밤 하루 반성과, 매달 마지막 한 달 성찰 글로 채워져 있다.
그의 공식 일기는 왕이 된 후에도 이어졌다. 즉위 후 규장각 신하들이 매일 정사를 기록했고 이 새로운 리추얼은 정조 이후 왕들까지 151년에 걸쳐 이어졌다. 조선왕조실록은 당대 왕이 열람할 수 없었기에, 왕과 신하가 모두 열람이 가능한 일성록이 국정 운영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이 되었다고 한다.
이 귀한 일성록은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됐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편이다. 최근에 브런치에 남기려고 서랍 속에 담아두고 미처 글을 잇지 못한 자투리 글 조각을 <일성록>과는 무관함에도 이 타이틀로 엉성하게나마 남겨둬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Jun 17, 2021 다시 찾은 1cm
오늘도 변함없이 밤 11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여니 왁자지껄한 웃음이 나를 반긴다. 반긴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나를 제외한 네 명의 가족이 한데 모여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집 다섯 가족이 종종 바른 자세로 서곤 하는 큰방의 문지방 벽보가 화제의 중심에 있다. 남편이 뭔가 낯선 연장으로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완성 후 살펴보니 키를 재는 도구다.
그 전에는 연필로 볼펜으로 벽에 알록달록 선을 긋곤 했는데, 이제는 병원에서 재는 것처럼 위에서 뭔가가 툭 떨어지면 키를 알 수 있다. 이런 신기방기한 걸 어디서 구입했는지 궁금했다.
내가 첫 번째 마르모트가 되어야 한다며 아들이 나를 질질 끌고 간다. 밤이라 키가 더 줄었을 텐데. 안 그래도 우리 집에서 제일 작다고 늘 놀림감인데.. 170 초반이었다가 한밤중 160대로 내려앉아버려 상심을 미리 겪은 남편이 통 크게 1mm를 올려서 157이라고 퉁쳐주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다.
문득 기숙사 생활하던 당시가 떠오른다. 나를 비롯한 네 명 모두 키가 아담해 우리가 지나갈 때면 다른 방 선배들이 스머프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온 힘을 다해 쭉쭉 기지개를 부지런히 켠 덕분에 잃어버린 1cm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