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서치 힐데 Jul 13. 2021

힐데의 일성록

다음 달에 있을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준비 중이다. 함께 공부 중인 딸과 함께 시험 접수도 마쳤다. 클릭 한 번 할 때마다 인내의 시간을 견딘 덕에 무사히 같은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매일 밤, 퇴근 후 오랜만에 역사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암기할 게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나이 들어 공부하는 역사는 단순히 연대기표를 넘어선다.


사상 간 충돌지점, 이념의 접점과 균열선, 사회변혁을 꿈꾸는 자들의 꿈틀거림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암기 팁 고수들이 만들어놓은 기상천외한 두음자 암기법 세계를 하나하나 정복해가는 여정도 유쾌하다.




어제는 조선 후기를 공부했다. 내 블로그와 브런치 타이틀인 간서치 원조 이덕무가 나오는 파트가 너무 짧아 느껴지는 아쉬움을 정조의 치적을 유심히 살펴보며 달랬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 그의 일성록은 매일 밤 하루 반성과, 매달 마지막 한 달 성찰 글로 채워져 있다.


그의 공식 일기는 왕이 된 후에도 이어졌다. 즉위 후 규장각 신하들이 매일 정사를 기록했고 이 새로운 리추얼은 정조 이후 왕들까지 151년에 걸쳐 이어졌다. 조선왕조실록은 당대 왕이 열람할 수 없었기에, 왕과 신하가 모두 열람이 가능한 일성록이 국정 운영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이 되었다고 한다.




이 귀한 일성록은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됐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편이다. 최근에 브런치에 남기려고 서랍 속에 담아두고 미처 글을 잇지 못한 자투리 글 조각을 <일성록>과는 무관함에도 이 타이틀로 엉성하게나마 남겨둬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Jun 17, 2021
다시 찾은 1cm

오늘도 변함없이 밤 11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여니 왁자지껄한 웃음이 나를 반긴다. 반긴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나를 제외한 네 명의 가족이 한데 모여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집 다섯 가족이 종종 바른 자세로 서곤 하는 큰방의 문지방 벽보가 화제의 중심에 있다. 남편이 뭔가 낯선 연장으로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완성 후 살펴보니 키를 재는 도구다.  


그 전에는 연필로 볼펜으로 벽에 알록달록 선을 긋곤 했는데, 이제는 병원에서 재는 것처럼 위에서 뭔가가 툭 떨어지면 키를 알 수 있다. 이런 신기방기한 걸 어디서 구입했는지 궁금했다.


내가 첫 번째 마르모트가 되어야 한다며 아들이 나를 질질 끌고 간다. 밤이라 키가 더 줄었을 텐데. 안 그래도 우리 집에서 제일 작다고 늘 놀림감인데.. 170 초반이었다가 한밤중 160대로 내려앉아버려 상심을 미리 겪은 남편이 통 크게 1mm를 올려서 157이라고 퉁쳐주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다.


문득 기숙사 생활하던 당시가 떠오른다. 나를 비롯한 네 명 모두 키가 아담해 우리가 지나갈 때면 다른 방 선배들이 스머프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온 힘을 다해 쭉쭉 기지개를 부지런히 켠 덕분에  잃어버린 1cm를 되찾았다.


난 아직 건재하다궁! 158cm는  나이  평균 신장이라고!

가족들에게 외치고 위풍당당하게 출근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자신감이 넘쳤다.






작가의 이전글 기시감과 미시감 가운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