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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Sep 23. 2021

호르몬과 의지력 사이에서

이토 히로시의 <뭐든지 호르몬>에 따르면, 우리 인생은 호르몬에 좌지우지된다. 기분과 몸매는 물론 성격과 건강, 키, 성적, 기억력까지.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오늘따라 저자의 주장을 경청하고 싶어 진다.


2021년이 딱 100일 남았다. 나름 성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가득한 한 해다. 하지만 미흡한 성과 탓을 나 자신의 의지박약 탓만 하기엔 석연치 않다. 혹시 호르몬 불균형 탓은 아니었을까?




인생은 정보 전달 게임이다
부모에게 받은 정보에 자신이 경험한 새로운 정보를
더해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전달하게 된다
호르몬은 정보전달 게임에서 서로가 가진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뭐든지 호르몬, p. 49)


우리 몸의 상당수는 산소로 65%를 차지한다. 두 번째 많은 원소는 탄소다. 몸속 4% 수분을 제외한 절반이 탄소로 이뤄져 있다. 몸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DNA도 탄소로 만들어져 있고, 호르몬도 역시 탄소로 이뤄져 있다. 호르몬은 혈액을 타고 이동하기에 혈액 내에 제대로 투입시켜야 효력 발휘가 가능하다.


100여 종이 넘는 호르몬은 주요 구성성분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뉜다. 아미노산과 콜레스테롤이 주인공이다. 당뇨병에 효과가 있는 인슐린은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호르몬이다. 먹어서는 효과가 없다. 아미노산이 소화액 분해효소에 소화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대신 주사제로 보충할 수 있다.


콜레스테롤로 만들어진 건 스테로이드로 통칭한다. 이 스테로이드는 튼튼한 탄소 골격을 지니고 있어 장에서 분해가 안된다. 먹어도 몸에 흡수되기에 호르몬 기능을 할 수 있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제처럼 말이다.


https://blog.naver.com/justina75/221628801369




금년 들어 내게 큰 영향을 미친 호르몬은 크게 세 가지다. 렙틴,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이다. 렙틴은 식욕조절 호르몬이다. 고3 시절 체중 고점을 찍은 후 임신기를 제외하곤 30년 가까이 늘 비슷한 체중대를 유지해왔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보니 고3 시절 체중으로 되돌아갔다. 5일 추석 연휴 후폭풍을 감안하더라도 경각심이 필요해 보인다.


박용우 박사의 <지방대사 켜는 스위치온 다이어트>는 야식을 탐하는 건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식욕억제 호르몬인 렙틴이 고장 났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조절 시스템이 망가지면 체내 지방이 충분한데도 부족하다고 느껴 식욕을 돋운다. 동시에 지방을 잃고 싶지 않아 가짜 피로감까지 만들어낸다. 식탐과 게으름 쌍둥이를 한꺼번에 맞이하게 되는 이유다.


https://blog.naver.com/justina75/221258381080


40대 후반대에 들어선 후 에스트로겐은 현저하게 낮아지고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높아지는 게 느껴진다. 나이 들면서 외향적으로 바뀌는 것도 호르몬 변화가 한몫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성공 지향성 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은 아침에는 많이, 저녁에는 적게 분비되기에 중요한 결정은 오전에 하라고 권한다.


그래서일까? 오전에는 의욕이 뿜뿜하다. 김유진 변호사는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에서 "새벽은 내가 주도하는 시간, 그 밖의 시간은 운명에 맡기는 시간(p. 38)"이라고 단언한다. 퇴근 후 시간이 오히려 양적으로는 더 길지만, 신체적으로 지쳐있고 의지력 잔고도 바닥난 상태라 의욕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는 거다.


https://blog.naver.com/justina75/222180654536




애정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은 단 9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지만 효과는 대단하다. 코로나 우울증이 만연하는 이 시기를 내가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단연 가족과 끈끈한 유대를 통해 얻은 옥시토신 덕분이다. 켈리 맥고니걸은 TED Talk에서 타인을 도우며 분비되는 옥시토신 영향으로 스트레스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내가 준비한 식사를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부지런히 일한 대가로 아이들이 원하는 걸 사주고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옥시토신 분비를 경험했다. 식사를 준비하는 번거로움과 일하면서 때때로 받는 스트레스는 옥시토신이 상쇄해 켈리 맥고니걸의 말처럼 용기와 회복력의 토대가 되었다.


When you choose to view your stress response as helpful, you create the biology of courage. And when you choose to connect with others under stress, you can create resilience.
(TED, Kelly McGonigal, "How to make stress your friend", 2013)


영상 단 하나로 1,000만 뷰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켈리 맥고니걸. 그녀의 쌍둥이 여동생 제인 맥고니걸도 옥시토신의 힘을 강조한다. 게임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두 편의 TED 강연과 함께 <누구나 게임을 한다>라는 책도 펴냈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아이들과 매일 각종 게임을 하면서 옥시토신 매력을 만끽했고, 남은 인생도 옥시토신과 절친으로 지내고 싶다.


https://blog.naver.com/justina75/221412374974





100일 남은 2021년, 덜 후회하면서 보내고 싶다. 호르몬 분비량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미노산과 콜레스테롤 규모까지 좌지우지할 만큼 유능하지 않은 나는 차선책을 준비했다.


'챌린저스'란 앱을 깔고 오늘부터 새벽 기상과 체중 인증 프로젝트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도하차하게 되면 아까울 정도로 실천 보증금도 넣어뒀다.


요가를 적극 실천 중이신 직장동료이자 글 이웃 요기니 원담님이 추천해주신  '유캔두'도 다운받아 6천보걷기를 비롯한 건강 미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의지력 하나에 기대 인생 좌표를 설계하기엔 다소 위험한 중년의 시기. 이렇게 호르몬과 외재 동기에 기반한 리추얼을 동반한다면 무난하게 보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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