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관심이 제일 무서워요.
"무댓글보다 차라리 악성 댓글이 좋아요. 저를 욕하는 게 잊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지 않은 어느 연예인이 인터뷰에서 토로한 심경을 본 적이 있다.
"실존주의에서 주체는 존재와 비존재의 불일치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 이러한 모순을 하나의 의식 속에 통일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실존(불일치)에 불성실한 존재로 살아갈 때 불안이 발생한다고 본다[나무위키]
현대인에게는 불안이 일상이다. 타인과의 비교, 불확실성 증대, 타자에 맞춘 맹목적 삶, 자신의 존재 인정 욕구 등 ‘자리',‘위치’는 견고한 고체가 아니라 마구 흘러내리는 유동성이다. 여기에 모든 위험이 개인 책임으로 대응하니, 그 틈에는 어느 때보다 큰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로 작동하기는 한다. 그러나 사회구조가 지속적이고도 광범위하게 둔감함을 드러내면서 소외가 일상화될 때는 그 불안은 병리 현상으로 전회된다. 불안이 이 경계선을 넘는 오늘날은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가 정신병적 증세를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일기 쓰기 모임을 통해, 소외와 불안을 ‘짧은 계절, 영원한 기억 속에서' 되돌아보는 내용이지만, 사실은 ‘긴 계절, 짧은 기억 속’에서 우리 삶의 맹목적성과 그의 탈출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일상은 반복되며 지속하지만 거기에서 진정한 삶에로의 회귀를 말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2. 소외와 불안
우선 일기 쓰기 모임의 마웨, 고슴과 도치, 시옷이라는 인물들은 이런 현실의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웨는 현실에 고착되어 고집스럽게 사는 인물, 고슴과 도치는 생김새라는 비존재는 일치하지만 서로 가시를 세우는 존재의 불일치를 의미하는 대립이라 볼 수 있다. 시옷은 맹목적 삶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흔들리는 존재를 은유한다.
이들은 모두 현대적 삶의 ‘림자'에 포획된 존재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일기를 통해 자신을 만나고, 만나서 비로소 헤어질 수 있다”라는 반성의 장에 나섰다. 주로 시옷의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가 되나, 그들은 사실 시옷의 지난 세월의 편면들인 셈이다.
시옷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을 통해 자신이 아닌, 타자로서의 삶 (여장을 한 맑은 소년, ̒우리 강아지 터 팔아서 장하다', 동생 수호가 잉태되자 관심이 그리로 집중되는 등 남성과 아버지의 법 중심 사회에서의 소외를 보여준다. 이를 반복하는 것이 남편 석구의 보살핌 아래 있는 시옷의 딸, 해준의 엄마에 대한 적대에서 나타난다. 남편 석구는 한때 학생운동 등 현실의 삶을 벗어나 본래적 삶을 살려는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시옷과 학원을 운영하면서 성폭력 가해자로 고발당하는 등 현실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다. 석구는 "목련은 역시 자목련/ 꽃이 진 게 꽃의 잘못은 아니잖아”에서 보듯, 현실로부터의 탈출에 실패함을 보인다.
그리고는 별거 후 딸 해준과는 정치적 성향 등 유사성을 보임으로써 동질적이나 시옷은 그러지 못함으로써 가족에게서조차 소외된다. 그녀는 사실상 보호자라는 전통적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며, 이럴 때의 소외는 불가피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소외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3. 목적 있는 삶으로의 회귀
이런 그녀에게 어릴 때 제비 다방 아들은 그녀에게 일상을 탈출토록 자극하는 존재이다. "높이 날고 싶으면 높은 것을 먹어”라는 것처럼, 아버지 법의 영역인 시옷 아빠의 응접실을 장악하고는, 시옷에 제비가 되어 비상을 꿈꾸는 존재가 될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는 동성애자로 밝혀짐으로써 응접실에서 쫓겨나고, 다시 한번 현실은 예전처럼 귀환한다. 작중에서 시옷의 친구 애니, 동생 수호는 관심받는 존재, 시옷과 윤수, 해준은 소외된 삶을 사는 존재들이다. 림자는 별명에서 보듯이, 존재의 회복은 자신속에 희미한 음광에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 환경 속 시옷의 삶은 "폭폭함 :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애가 타고 갑갑함”에서 나타나듯 불안 그 자체이다. 그녀의 본질 회복을 향한 저항에는 곳곳에 장애물들을 배치한다. 예를 들면, 집 나간 아버지의 복귀로 아버지의 금지가 복귀하는 것이라든지, 그의 귀가를 기원하는 앞 이마 긁기 같은 게 상징되어 있다. 또, 시옷이 여식애라는 것에 대한 지휘자의 경악, 혐오, 경멸 등도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과거에 갇힌 시옷이 이를 뚫고 나가고자 하는 바는 군경묘지 근처 응달집에서의 윤수와의 만남이다. 윤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했지만, 그의 죽음은 소외와 불안에서 탈출을 말하는 것이다.
세대를 연속할 것 같았지만, 해준의 행동에서는 마침내 이런 현실 탈피를 읽을 수 있다. 제비는 9.9에 둥지를 떠나 3.3에 다시 오는 회귀성 조류이다. 그런데 해준이 보낸 사진과 함께, "처음 출발지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지? 라고 하는 것은, 해준이 본래적 삶을 추구할 것이란 걸 말한다. 아마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소외와 불안은 그 속에서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서전은 거짓말 비중이 높을수록 그에 다치는 사람은 자신이다”란 말처럼, 일기 쓰기 회원들은 "복수의 자서전"을 씀으로써, 이런 소외와 불안으로 얼룩지고,‘타인들’의 삶을 살아온 자신들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