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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담킴 Dec 12. 2019

의정부역 녹색거리

@그린분식

송이네 가게는 시내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내가 끝나는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다. 가위질을 4번 이상 하지 않으면 삼키기 힘든 싸구려 냉면과 고기보다 튀김옷이 더 두꺼운 돈까스로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십대들의 허기를 저렴하게 속여주는, 학교 앞 번화가에 흔히 있는 그런 식당이었다. 의외로 단순하고 깊이 없는 그 맛을 아이들은 꽤나 좋아해서 장사는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중심부인 녹색거리로부터 조금 외떨어진 곳에 자리했음에도 아이들은 나름 가게를 잊지않고 끊임없이 찾아왔고, 가게세도 그런 위치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그래서 장사는 그럭저럭 되었지만, 송이네 형편도 늘 그럭저럭이었다.


송이네 가게는 시내에 있었다. 시내라 불리는 의정부역 앞 녹색거리는 송이네의 생업 터전이면서 동시에 송이의 모든 대외관계 활동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이었다. 이 거리 끄트머리에서 엄마가 오래된 기름에 돈까스를 튀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송이는 갑자기 기분이 눅진해지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거의 매일 친구들과 녹색거리를 찾으면서도 가게 쪽은 부러 피해 다녔다. 송이와 친한 같은 반 선아와 희연 만이 가게가 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송이네 가게는 시내에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이 송이 주변엔 더 많았다. 노래방에서 열창을 하고 나와서 주린 배를 잡고, 또는 오락실 펌프 위에서 신나게 뛰고 땀을 닦으며, 간혹 아이들은 송이네 가게에 가자고 얘기하곤 했다. 처음에 송이는 식은 땀이 났다. 유난히 창백해진 얼굴을 눈치채고 선아와 희연이 아이들에게 다른 데로 가자고 유도했다. 그 과정에선 어쩔 수 없이 송이네 가게에 대해, 송이 엄마가 만들어내는 음식의 퀄리티에 대해, 다른 곳과 빗대며 깎아내릴 수 밖에 없었다. 송이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척 발 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정부 녹색거리 (이미지 출처: <경기북부 시민신문 - 의정부의 거리가 경제를 살린다>)


송이네 가게는 시내에 있었다. 선아와 희연의 의리 덕분에 3학년이 될 때까지 가게에 대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한 학년 올라가면서 셋은 뿔뿔이 다른 반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송이는 전보다 더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런 송이에게 자리를 바꿔도 항상 교실 맨 뒷자리에만 앉는 아름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름은 송이에게 고데기와 눈썹펜슬을 빌려줬다. 송이는 아름에게 숙제를 보여주고 때때로 답안지도 보여줬다. 어느 토요일 둘은 방과 후 시내에 가기로 했다.


송이네 가게는 시내에 있었다. 그걸 알리가 없는 아름이 불쑥 송이네 가게에 가자고 했다. 송이 곁에는 대신 둘러대 줄 선아도 희연도 없었다. 식은 땀을 흘리며 희연이 아이들에게 으레 읊던 대사들을 주절 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그 가게 존나 더럽고, 맛도 존나게 없고, 난 거기 가면 돈 아깝더라. 우리 거기 말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름의 걸음이 가게를 향했다. 야, 이 동네에 그만한 데 없어. 맛은 솔직히 디지게 없는데 싸잖아. 너 돈 있냐. 송이는 돈이 없었다. 아름의 논리에 반박할 말도 없었다.


송이네 가게는 시내에 있었다. 친구와 들어서는 송이를 보고 엄마의 두 눈이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휘둥그레해졌다. 아름은 짧은 조끼를 풀어헤치며 아무 자리에나 비스듬히 앉았다. 아줌마 여기 돈까스 하나 냉면 하나. 송이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엄마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전구가 켜진 얼굴로 다가오던 엄마는 송이의 고갯짓을 보고는 천천히 뒤돌아 발을 끌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돈까스 하나 냉면 하나를 비우는 둥 마는 둥 하고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설 때까지 엄마는 그렇게 주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아름은 가게 문 앞에 짝다리로 서서 이를 쑤셨다. 하, 씨발. 니 말 들을걸. 진짜 드럽게 맛없네. 이딴 걸 음식이라고 만들어 파냐. 야 여기 다신 오지 말자. 칵-퉤. 가게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아름이 뱉어놓은 가래침을 보고 있자니 몸 안의 모든 것이 차갑게 식어내렸다. 송이는 스스로 파 놓은 깊은 구덩이에 끝도 없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떨리는 손 끝으로 조용히 가게 문을 닫은 송이는 그 손으로 아름의 뺨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뭐야 미친년아. 아름이 뺨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뭐긴 뭐야 미친년아. 내가 그린분식 딸래미다. 어안이 벙벙한 아름을 그대로 세워두고 송이는 뒤돌아 걸었다. 어깨 뒤꼍에서 뒤늦게 미안하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송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가게를 등지고 몇 시간이고 걷고 또 걸었다. 꼭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같았다.


송이네 가게는 시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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