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킵고잉 Jan 28. 2024

#13. 이혼은 현실이다

감정에 치우칠 겨를이 없는 이혼과정

그가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그의 퇴근시간만 되면 불안해졌다. 그가 집에 오면 마주치지 싫어 급히 저녁밥을 먹고 방문을 잠그고 내 방에 들어가 있었다


잘못을 한 거는 그인데 왜 내가 이렇게 숨어있어야 하는지 정말 억울하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돈 빌릴 수 있는 날은 좀 더 있어야 해서 이 상황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그에게 성병이라도 옮았을까 봐 병원을 다녀온 날 드디어 최종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만 보면 정말 그냥 우리는 성격차이로 그냥 헤어지는 것처럼 보여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억울한 일들이 쌓여서 분하고 슬프지만 그런 감정에 빠져있을 겨를이 없었다.


아직 그는 나랑 살고 있고, 그가 나가고 돈의 정산이 되기까지는 이 관계가 끝난 게 아니기에 감정에 휩쓸려서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이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최대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은행도 가야 했고 그와 하루라도 빨리 최종으로 헤어지려면 정신 차리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 회사 면접이 잡히고 면접준비까지 하는 나 자신이 대단했다.


그런데 그가 집으로 다시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되었으쯤 그에게 다음 주에 재택을 해도 되냐고 카톡이 왔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이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지하철 안에서 이 카톡을 보고 진짜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나는 너랑 사는 게 하루하루 지옥 같고 죽을 거 같은데 재택이 말이 되냐고 답장을 했더니 팔자 좋게 놀려고 재택 하려는 게 아니라 부동산 알아보고 대출도 알아보려고 하는데 회사에서는 눈치가 보여 재택 하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카페도 있고 거점근무지까지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정말 생각이 없는 건가? 내 생각은 정말 하나도 안 하고 자기만 생각하나? 등등 여러 생각이 나고 이해가 안 되며 열이 받아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니 돈을 빌려주겠단 친구는 당장 어떻게 서든 돈을 마련할 테니까 9월 안에 빨리 나가게 하라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지금 나에게 돈만 있으면 재택을 한다는 소리도 듣지 않고 나 또한 지옥에서 죽을 거 같다느니 이런 얘기조차 안 해도 되는데 그걸 해결해 주니 든든하고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주말 그에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네가 원하는 돈 구해서 입금할 테니까 하루빨리 나가라고. 그는 집 알아본 곳이 10월에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너도 돈 무리하지 말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일주일만 같이 지내는 것조차 너무 힘들다고 에어비앤비 아니면 레지던스 같은 곳에 임시 거처를 구해서라도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 대화를 하다 알게 된 그의 집. 방 3개짜리에 집이었다. 그 큰 평수에 적당한 가격을 찾느라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이었다. 불과 일 년 반 정도 전까지 원룸에서 잘 지내온 그 사람이 이제 신혼집 크기에서 살다 보니 원룸 크기에서는 못 지낸다고 했다.

정말 이제 실망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 뻔뻔한 생각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당장 내 앞에서 나갈 텐데 당당히 저렇게 잘 사려고 아득바득 거리는 모습이 너무 꼴불견이었다.


화를 내봤자 얘기만 길어지기 때문에 추석 연휴 전까지 나가하고 했고 이번주말까지 단기임대에서 필요한 짐과 이사 최종으로 할 때 짐을 나눠서 정리하라고 했고 추서연휴 시작인 날 아침에 나가하고 했다.


짐을 싸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의 공동명의로 된 차의 지분을 해지하러 같이 가야 하는 일, 그 사람 계좌에 자동이체 시켜놨던 것들 해지, 이번달 생활비 나누기 등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이 꽤나 있었다.

지치고 피곤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모두 끝을 향해 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참고 참으며 지냈다.









이전 13화 #12. 가해자와 같이 산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