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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라소니 Sep 21. 2020

시발 정신으로 이제는 커피도 잘 탑니다.

#일-1

“신입 사원이라고 이런 일 까지 해야 할까요”

“종일 커피 타고 복사하고, 잡무만 하려고 입사한 건 아닌데요”


  두 번째 회사는 십 년째 다니다 보니 신입사원들, 경력이지만 연차가 아래인 후배들 하소연을 들을 일도 종종 생긴다. 남들이 더 힘들었던 얘기를 듣는다고, 내가 덜 힘든 건 아니지만, 그냥 이렇게 넘긴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내 첫 번째 회사는 오너가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처음에는 갓 졸업해서 정직원이 되었다는 점, 남들이 알만한 글로벌 브랜드의 마케팅 비슷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사실 딱히 불만을 가질 틈도 없었다. 나 외에도 몇 명의 입사 동기가 있었는데 그들과 얘기하다 보니 뭔가 나만 아무 생각도 없이 이용당하나 싶었다. 비서가 따로 없어서 아침에 사장님의 커피를 내리고 신문을 세팅하고, 손님이 오셨을 때 커피를 내리는 정도의 일이었다. 십수 년이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한 달에 두 번인가 전 직원이 점심을 사내에서 식사 준비하는 것도 도왔다. 그리고 총무를 담당하시는 차장님의 전표처리나 비품 정리 등의 잡무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거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뭐 그 정도 일은 지금도 하는 수준이지만 사실 현타가 온건 이런 잡무 때문이 아니었다. 사장님과 다른 선배 직원들과 식사를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 주고받는 말을 듣는 것이 사회 초년생 시절에 상처가 되었다. 분명히 이 힘든 시기에 취업했다는 격려로 시작했는데, 끝맺음은 더 좋은 회사는 못 가서 여기도 감지덕지하지 않냐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열심히 학점관리를 하고 취업 스터디를 하면서 준비하고 원서를 백 개도 넘게 썼는데 최종 합격이 된 곳이 그곳뿐이었다. 비록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브랜드 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꿈 언저리에 간듯해서 기쁘기만 했는데 사실 나의 실제 위치는 이 정도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 슬픔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매일 써야 하는 못하는 영어가 더 버겁게 느껴지고 너무 힘들었다. 같이 일하는 선배가 별 뜻 없이 했을 말이나 스타킹 사 오기 등의 잔심부름 하나에도 속을 썩이면서 집에 오면 끙끙 앓았다. 결국 나는 일 년을 겨우 넘기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 대학원을 가게 되었다.


  그때 퇴사를 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었다. 처음으로 길게 다녀본 회사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거는 적은 월급, 잦은 야근, 작은 회사 규모가 아니었다.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할지, 부당한 대우나 무리한 요구 등이 있을 때 당당하게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나약한 병아리 같은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었다. 가족들, 학교 친구들, 부모님께 차마 다 말하지 못했지만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아직 업무에 미숙하고 어리니깐 내가 해야지, 토를 달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걸지도 몰라’라고 하는 생각들에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고 그것들이 내 안에 수치스러움으로 남아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회 통념상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엄청 힘든 일도 아니었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든 “다시는 나한테 쪽팔리지 말자, 할 말은 하고 살자”가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놈의 모토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은 대학원에서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래서 스스로와 타협하여 또 수정했다. ‘시발 시발 계속 욕할 것 같은 일은 반드시 항의하고(꼭 처음부터 항의하지 않아도 된다), 분한 일은 꼭 욕이라도 하면서 풀자’. 사실하기 싫은 잡일 또는 부당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변치 않았지만, 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주지시키고 늦게라도 공식적으로 항의를 한다는 점이 조금 바뀐 점이다.


  덕분에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24살에 집에 돌아와 시름시름 앓기만 하던 나를 상상도 못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누가 나와 한참 후배를 비교하면서 “확실이 XX 씨랑 옆에 서니깐 어린 사람 피부는 못 당하겠다 그렇지”라고 했을 때, “그렇게 말씀하시면 마음이 편하신가요, 다음번에는 그냥 안 넘깁니다”라고 나름 드라이하게 받아치는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이게 너무 쿨한 척을 하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다. 친구들이랑 19금 유머를 하던 버릇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회사 동료나 선배들과 하기도 하고, 세게 받아친다는 게 오버액션으로 내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생겼다. 즉, 너무 갔다. 이후에도 모토를 계속해서 수정해서 현재는 “시발 인생 별거 없다” 정신으로 살고 있다.


  이 모토는 이렇게 실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사하고 커피 타고 이런 거는 빨리 후딱 해치우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이런 잡무 하면서 돈 버네, 앗싸 시급 올라간다’라고 정신 승리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바빠 보이면 내 일도 아닌데 복사하기 과자 세팅하기 커피 타기 하면서 이게 내 적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몇 번 하면 내가 진짜 바쁠 때 동료한테 부탁해도 덜 미안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 외에도 외모 비하, 나이 비하, 아줌마 어쩌고 하는 인간들에게는 말도 안 한다. 절대 같이 웃어주지 않고 눈빛으로 때리면서 “좋으십니까” 정도 하면 웬만한 인간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사과를 한다.  


  십몇 년 전에 ‘그깟’ 일로 일의 흥미를 잃고 퇴사하고 싶어 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당장 때려치우라고 얘기해줄 거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분명 같은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젊은 치기 때문에 힘들게 찾은 직장과 꿈을 포기한 게 아니었으며, 내가 느꼈던 그 모멸감이 가득 찬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힘들고 수치심에 괴롭다면 일단 도망쳐라. 그래도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시발 정신’이 효력을 가지는 걸까. 그 해답은 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수치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겠다고 생각하고 연습하던 나, 받아쳤다고 좋아하던 나, 19금 드립은 그만해야지 결심하던 내가 쌓여서 여러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오늘의 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단 작은 것부터 분명히 말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본인만의 매뉴얼을 만들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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