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었다면 지금 난 더 행복했을까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아픈 이 마음을 너에게는 숨기고 싶다. 늙었지만 여전히 어린 너에게는 이 아픔을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나는 너를 쓰다듬는다. 새 옷을 입어도 어릴 적의 활기는 커녕,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마도 백내장 때문일 것 같은 희게 바랜 동공 뿐이다. 그럼에도 너는 나를 보고 있구나. 아마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구나.
언제부터인가 너는 내 품에 마음껏 달려오지도 못하는구나. 기운 빠진 꼴을 하고 눈동자를 굴려서, 운이 좋은 날에는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는 게 다구나. 지금 그게 최선이라면, 나는 지금 그것에 만족한다. 하지만, 네가 다시 어려질 수 있다면 해줄 수 있었던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데 너는 점점 늙어가기만 하는구나.
하루하루가 너에게 고맙다. 낮밤 없이 자는 너를 덮은 담요에 수시로 손을 얹는다. 그것이 오르내리면, 숨을 쉬고 있구나 하고 나도 참던 숨을 내쉰다. 얼굴을 갖다대면 그릉거리는 숨소리가 미세하게 들린다. 그런 모습조차 너무도 애틋하다. 이 순간을 그리워 할 언젠가가 그려져 도무지 얼굴을 떼기가 힘들다. 이런 내 마음을 너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구나. 그러면 너의 뒤통수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자리를 비켜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너에게 화내지 말 걸, 너를 더 많이 안아줄걸, 더 많이 쓰다듬어주고, 더 많이 바라볼걸. 그래, 더 많이 바라볼걸. 이것이 가장 후회된다. 내 기억에 너를 더 많이 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
늙은 아기, 네가 떠나기 전까지 나는 최대한 너를 많이 바라보려고 한다. 너는 귀찮겠지만, 자꾸 쓰다듬고 안아주려고 한다. 나의 욕심 때문이다. 그렇게 쓰다듬고 안고 있으면 네가 아직 내 옆에 있다는 것이 가슴에 와닿아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네가 없었다면 지금 나는 더 행복했을까. 이런 아픔을 느끼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너는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었다. 사랑은 사실 아픔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이제부터 이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겠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네가 없었다면, 이 행복을, 사랑을, 나는 모른 채 살아가고 있겠지. 그래서 행복하다. 너의 존재가 나를 사랑하게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 아픈 마음을 모른 채 힘겨운 숨소리를 내면서 담요 속에서 자고 있는 아기야. 너는 사랑하는 방법과 사랑받는 방법을 알고 태어나, 그것을 모르던 어리석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너를 사랑하는 너의 가족 중 한명,
너를 늘 귀찮게 굴던 고약한 사람,
너를 떠나보낼 준비가 영영 되지 않을 어리석은 사람,
이 사람에게 너는 오늘도 너무나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