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내가 키우고 싶었다.
마흔을 앞두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나를 "노산모"라 불렀고,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출산 전, 계획은 나름 완벽했다. 서울에 살았던 우리는 지방에 계신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리와 남편 회사와의 접근성을 고려해 이사를 결정했고, 복직 후 출퇴근길에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어린이집이 많은 단지를 골랐다. 부모와의 분리가 용이하도록 아이가 태어나면 분리 수면을 하고, 12개월에 어린이집에 적응시켜 15개월쯤 복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계획과 너무 달랐다. 육아휴직 7개월 차, 나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동료들을 보면서도, 회사를 떠나는 엄마들을 보면서도 나는 끝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이를 낳기 전, 주말 아침이면 침대에 누워 여유롭게 브런치카페를 검색할 때, 친구들의 단톡방이 놀이공원과 키즈카페 이야기로 가득할 때도 그 세계가 내 것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형 마트 옆에는 키즈카페가 있었고, 아이들의 노는 모습과 휴대폰을 번갈아 바라보는 부모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저렇게 못 살아…’
그래서 엄마가 되는 걸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교육 분야 연구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했기에 나는 육아를 잘할 줄 알았다. 부모교육 이론과 아동 발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될 거라 믿었다.
(*실제 나의 MBTI는 J(계획형)에서 엄마가 된 후 P(인식형)으로 바뀌었다. 육아는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아는 6년 차 엄마이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치열했고, 매 순간이 예측 불가능했다. 아이는 우주최강 엄마껌딱지였고, 나는 자유영혼이었기에 자유를 뺏긴 나는 점점 지쳐갔다. 출산 후 무너지는 체력을 버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머릿속에 있던 육아 이론은 현실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없지만 호르몬의 영향이었을지, 아직 딸아이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의 모성애는 매우 강렬했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심했을 때 미리 말을 하는 게 회사를 위해서도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12월은 내년의 업무 편성을 위해서도 중요한 시기였으니..
뉴스에 나오는 육아도우미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고, 이른 아침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밤늦게 퇴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암울했다.
아직 너무 작은 이 아이를 내 품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은 일을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 소식을 전했을 때, 주변 반응은 다양했다.
"네가? 바로 복직할 줄 알았어." "육아휴직 급여 다 받고 퇴사하지 그랬어?" "도우미 이모 쓰면 되잖아~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야?" "부모님께 맡기고 주말에만 보면 어때? 어차피 기억도 못할 텐데."
… 하아.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나는 나의 일을 잠시 미루기로 결정했고, 그 대가를 기꺼이 감당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