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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랬구나 Jul 28. 2023

친정아빠를 혼내다 아이에게 혼나다

나의 친정은 우리 집에서 안 막히면 차로 1시간 반정도 거리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곳이다.

어버이날에 찾아뵙고 두 달여 만에 뵈러 갔다.


어쩌다가 작은 방에 들어가서 방 문을 닫을 일이 있었는데 훅 하고 가전제품 가열되는 냄새가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청소기와 전기밥솥이 보였다.

전기밥솥은 엄마가 구운 계란 만드는 용으로 방에다 놓고 쓰시는 걸로 알고 있다. 청소기는 가열될 일이 없을 듯하여 우선 용의자 1순위 전기밥솥 뚜껑을 만져보았다.  


오 마이 갓.

뜨끈 뜨근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텅 빈 내솥이 이글이글 달궈져 있었다.


"여기 이 밥솥 왜 켜져 있어?" 전기 코드를 뽑으며 소리쳤다.


아빠가 머쓱한 얼굴로 오시더니

"내가 그랬나 보다" 하신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집 아들들을 다그치듯 앙칼지게 물었다.


아빠가 설명하신 상황은 이랬다.

아빠는 청소를 하려고 청소기를 벽 콘센트에 꽂으려는데 잘 안 꽂혀서, 멀티탭에 꽂으신 다음 멀티탭 코드를 벽에 꽂고 청소를 하셨는데, 밥솥 코드도 같이 멀티탭에 꽂혀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밥솥은 취사가 눌러졌던 것이었다. 청소기를 어제 쓰셨다는데 하루동안 빈솥이 가열되어서 그런 냄새가 났던 것이다.


나는 혹시 어른들 두 분만 계시는 집에 불이라도 났으면 어쩔뻔했나 싶은 생각에 목소리가 커졌다.

제발 이런 거 조심 좀 하시라고 아빠를 다그치고 있었는데 우리 집 둘째가 내 옆을 지나가며 한마디 했다.


"엄마는 맨날 할아버지를 혼내더라?"


순간 나는 헉! 하고 놀랬다.

어머나. 내가 언제 그랬어하며 멋쩍게 웃으니 큰아이까지 합세하여 엄마는 늘 그랬다고 한다.


집에 올 때마다 아빠의 다리를 만져보면 점점 근육이 빠지는 게 느껴져서 운동 좀 하시라며 한 소리했는데 그것도 아이들 눈엔 숙제 왜 안 했냐고 본인들 혼내는 모습 같았나 보다.


할아버지 건강하시라고 엄마가 애정이 담긴 잔소리를 하는 거라고 애써 변명했지만 아이들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한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에 둘째가 했던 이야기가 또 생각나서 큰아이에게 정말 엄마가 할아버지를 혼내는 거로 보였냐고 물으니 한 술 더 뜬다.


“응 엄마. 더구나 우리도 있는데 아이들 앞에서 할아버지가 엄마한테 혼나시면 더 속상하셨을 것 같아.”


흑, 엄마가 그 정도였니? 너희가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가 할아버지께 사과해야겠다 하며 아빠께 전화를 했다.


“아빠, 나야. 애들이 아빠한테 사과하래.”


허허 녀석들 하시더니 첫째를 바꿔달라 하셨다.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첫째 둘째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옹기종기 모였다.


“ㅇㅇ아, 엄마가 혹시 %%할아버지(친할아버지)도 혼내니?”


“아니요~”


“너희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걱정되는 마음에 그랬던 거야. 내 아빠니까 편하기도 하고. 혼내는 건 아니야. 할아버지 안 속상해. “


“네 할아버지. 그래도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화내는 것처럼은 안 하는 게 좋겠어요.”


허허 웃는 아빠께 손자 둘이 이렇게 챙겨주니 좋으시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한테 이제는 할아버지한테 말을 예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내 나름의 애정 어린 잔소리였어도 아이들이 그렇게 봤다니 조심해야겠다.


아우 그러니 제발 걷기 운동 좀 하시고,

전기코드도 잘 보시고,

엄마한테 잘 좀 하시면 좋겠는데 아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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