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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01. 2018

제가 선배 밥 좀 먹어도 될까요@인턴

인사이드 다음에 노출되었어요. 감동이야요. 제 글은 못찾아서 유입률 통계 캡쳐했어요. 저 같은 사람들이 많은가봐요. 여튼 기분 짱 좋습니당. 퇴사하고싶어요. 감사합니다!

잡지사 어시스턴트 시절, 그때 난 별의별 실수를 다 하고 다녔다. 근데 난생처음 회사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건데 어떻게 완벽하게 일을 타다닥 할 수 있을까?라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위로해본다. 뭐 합리화가 아닌 사실이기도 하고. 간혹 로봇 같은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아도 프로처럼 일하겠지만 난 아니었다. 

 

난, 날 것 그대로의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먼저 첫 번째 저질렀던 실수는 이전 글에도 적었듯이 논현에 있는 회사를 신논현으로 착각해 신논혁역에서 10년 차 에디터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 "저 신논현역입니다." 전화 받은 매거진 차장님은 속으로 "어쩌라고." 했을 것 같던 내 첫 실수.

 

그리고 자잘한 실수는 어시스턴트를 그만두기 전까지 꾸준히 저질렀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내게 한 가지 실수를 지적하면 이 한 가지를 제외한 다른 실수를 하는 거다. 어찌 보면 참 실수도 창의적으로 했다. 모양만 바꿔 연달아 했으니. 창의력 점수는 100점을 줘본다.

 

창의력 일지 day 1

잡지사는 회의가 많다. 어시스턴트들을 제외한 모든 에디터들은 한 달에 한 번 어떤 기사를 낼지 회의를 한다. 모두 회의에 들어가고 난 사무실에서 혼자 자리를 지켰다. 띠링. 전화가 울렸다. 내가 회사에 출근하고 나서 처음 받는 전화였다. 심장 터지기 일보 직전.

"여보세요." 

"나 $%#@ 부서에 %$^# 차장인데 부장님 자리에 있나?" 

"아 지금 회의하십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회의실로 후다닥 뛰어갔다. 회의실 문을 똑똑 두들겼다. 회의에 참여했던 에디터들은 편집장님을 포함해 10명 정도 되는 인원이었다. 문을 빼꼼히 열고 "부장님 전화 왔습니다."라고 야심 차게 말했다. "누군데?"라고 되물으셨고 나는 "모르겠습니다. 무슨 차장님이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잘 모르겠지만 무슨 차장님이랍니다. 라고 말해버렸다. manner makes man. 매너가 탑재되신 부장님. 나를 보고 비웃지 않으셨다. "지금 회의 중이라고 전해줘. 누구인지 메모해놓고 다시 걸겠다고 전해줘."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난 후다닥. 와다다. 다시 사무실로 와서 "저 누구시죠? 부장님 지금 회의 중이라고 전해달랍니다."

"삶은 약간의 실수투성이예요. 우리는 늘 실수를 해요." / 영화 주토피아

사실 난 내가 이렇게 전화를 못 받는 사람인지 사회에 와서 처음 느꼈다. 그 뒤로 이상한 전화 공포증에 휩싸여 사무실에 전화만 울리면 눈과 귀가 멀어지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을 수 없었다. 분명 한국말이었고 어렵지 않은 말일 텐데 머릿속에 왜 이렇게 입력이 안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회사의 낯선 환경과 분위기가 날 얼어붙게 만들고, 미숙한 내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상대방의 전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나 진땀이 나고 말을 알아듣기 힘든지 회사에 적응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전화 공포증에 시달렸다.

 

창의력 일지 day 2

전화응대가 좀 쉬워질 무렵의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난 점심을 고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스타일이다.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다. 돈가스 집을 갔는데 치돈을 먹을까. 생선가스를 먹을까. 고민을 하다 치돈을 시켰다. 그리고 나의 전담 에디터 기자님은 생선가스를 시켰다. 치돈을 먹던 도중 갑자기 생선가스가 먹고 싶어졌다. 이 눈치 없는 식욕아. 

그리고. 그리고. 난 기어코 기자님께 말했다. "선배, 저 생선가스 좀 먹어도 될까요? 먹고 싶어서. 저희 바꿔먹을까요?" 나이 차이가 최소 10살 이상 났던 선배였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선배는 매거진에서 한 까칠하기로 유명했던 분이셨다. "저희 바꿔먹을까요?" 에 날아온 선배의 답은 이랬다. 기가 차는 듯 웃으시며 "내가 너 나이 때에는 이런 말 했다가 바로 끌려갔어. 이것아~"하고 "그래 먹어!"라고 하셨다. 난 사실 이때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생선가스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감사합니다. 기자님! 나머지는 제가 먹겠습니다!" 눈치 없는 배야. 입마저 제멋대로인 나는 아마 사회와 학교를 동일시 했나 보다. 학교 선배인 줄 알았나 보지.

 

창의력 일지 day3

그리고 비슷한 모양의 실수 하나 더.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어시스턴트를 했던 그 당시는 참 많이도 더웠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는데, 부장님이 "아이고 시원하겠네." 하시는 거다. 나와는 20년 이상 차이 나는 부장님께 "그럼 한 입 드시겠어요?" 라며 부장님 입 앞으로 친히 배달해 드렸다. 내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권한 것이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참.. 하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부장님이 더워하시니 그저 그 더위를 함께 잊어보기 위한 나의 바람이 담겼던 애정 어린 제안이랄까. 그렇게 실수를 실수로 돌려막고 있었다. 실수 돌려막기를 하루에 몇 번이나 저질렀는지 모른다.

 

창의력 일지 day4

그 실수는 어시스턴트 마지막 날까지 계속됐다. 내가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은 한 달 동안 열심히 노력했던 결과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던 날. 잡지가 출간되던 날이었다. 내가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글을 쓴 건 아니지만 나의 도움으로 탄생한 잡지가 서점에 나온다니. 이 뿌듯함의 크기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좋은 추억과 나의 첫 사회생활의 생생한 현장을 자축하고 싶었나 보다.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나와 함께 했던 회사, 정말 멋진 에디터들, 노력의 결과물인 잡지를 사진기로 담고 있었다. 

그러던 내 모습을 보던 에디터님은 한 말씀 하셨다. "아이야. 우리 이번 호 생각대로 안 담겨서 기분이 별로 안 좋단다." 좋아 날뛰던 난 금세 민망해져 버렸다. 그저 내 상황만 생각했던 것이다. 한 달간 열심히 노력했던 결과물이 나온 것만으로도 좋았던 나와 그 결과가 '잘'나와야만 만족함을 느끼는 현직 에디터와는 엄연히 상황이 달랐다. 결론적으로 난 끝까지 눈치가 없었다.

"자책하지 말아. 너무 빨리 달릴 필욘 없어. 마지막으로 들어왔더라도 최선을 다한거야." / 영화 주토피아

내겐 모든 게 다 새로웠고, 

처음인 것들로 가득했다. 

'사회생활은 힘들다. 사회는 학교가 아니다.'라고 

이미 사회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지만 

그 말들을 실감하고 적응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실수 경험담과 성공 경험담을 구구절절 말한다 한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를 새로운 실수로 돌려 막았던 것처럼.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난 또 더 다양한 실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실수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또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쌓여야만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수하지도 않는다. 자기 전 이불찰 일도 없다. 실수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난 그만큼 나를 더 알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명 어제보다는 덜 실수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도 내가 저질렀던 일을 떠올리면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고, 갑자기 어딘가가 아팠으면 좋겠고. 그래도 분명한 것은 1년 전보다, 6개월 전보다, 1개월 전보다, 바로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무언가를 위해 시도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휴. 아무리 이렇게 정신승리를 해봐도 저번 주에 회사에서 이불킥 실수한 게 자꾸 떠오른다. 지금은 너무 창피해서 글로 옮길 수도 없다. 진짜 솔직히 요즘 진짜 회사 가기 너무 싫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겪고 있는 이 일도 극복하게 되면 글로 적어봐야겠다. 언젠간 내 실수가 엄청 값지단 것을 깨닫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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