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랑은 손편지를 타고 온다.

매년 기념일마다 말이다.

by 한보통

우리 남편은 나를 참 많이 사랑한다.


작은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아무도 믿지 않고

매일 이유도 없이 불안해하며 살던 나를

우리 남편은 그냥 좋아해 준다.


가끔씩 뜬금없이 '경은아, 사랑해요.'라는

고백을 한다던지

'너무 이뻐요.'라는 얼토당토않는 칭찬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까지도 말이다.

참 내가 뭐라고 이렇게 사랑해주는지

정말 고맙다.


그런 우리 남편한테 어제 서운했다.

아주 조금.


어제는 밸런타인데이였다.

호주도 밸런타인데이를 커플들은 챙기는 편이다.

우리 남편한테 꽃은 저번에 책 출간 때 받았으니까

안 줘도 된다고 했더니

그럼 손편지만 써서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어제 아이들을 재우면서 남편이 잠들어버렸다.

결국 손편지를 못 받았다.


기념일마다 사실 선물은 내가 원하지 않는다.

어차피 공동계좌에서 나오는 돈으로 산 선물이

그렇게 스릴 넘치게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손편지만으로도 난 만족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그 손편지를 남편이 안주는 것이다.

아, 이런 충격!


그래서 일단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첫째가 7시 반까지 학교에 가는 날이라서

남편이 아침을 했다.


볶음밥을 하고 나서

내가 아침을 첫째랑 같이 일찍 먹는다니까

작은 프라이팬을 꺼냈다.


"뭐해요?"

"아내 계란 프라이 해주려고요."

그런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아내 볶음밥에는 계란 프라이가 필요하다며

서니 사이드업을 해서 내 밥에 올려줬다.


볶음밥에 올려진 계란 프라이 하나에 약간 서운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손편지 조금 늦으면 어떤가.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데.


2022년 핸드메이드 남편의 한글 손편지

그날 오후에 우리 남편의 손편지를 받았다.

밸런타인데이가 아닌

'벨렌타인 데의' 라고 쓰인 (ㅋㅋㅋㅋㅋ)

20프로 오타가 가득한 한글로 쓴 손편지를.


읽으면서 나를 한참 웃게 한

그 귀여운 손편지를 드디어 받았다.


"정말 손편지만 받아서 되겠어요?"라는

걱정스러운 말에

"이걸로 충분해요!"라고 답했다.


올해도 아마 기념일마다 손편지가

배달이 될 것이다.


우리 남편이 직접 적고 그린

한글로 쓴 오타 가득한 손편지가 말이다.


그리고 그 손편지를 받을 때마다

나는 십 대 소녀처럼 키득거리며 웃을 것이다.

사랑받고 있다는 즐거움을

한껏 만끽하면서 말이다.


한글 손편지는 사랑이다.

하루 정도 늦게 도착한다고 해도 말이다.


사랑은 정말 좋은 거다.

진짜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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