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많이 내렸는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한국이 아닌 마치 텔레비전에서 본 일본의 어느 산간 지방에 있는 듯한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오랜만에 새벽에 잠을 깨지 않고 자서 인지 머리가 맑았다. 오늘은 신랑이 출근하는 일요일이다. 아침에 원두를 갈아 에스프레소로 커피를 내려 작은 텀블러에 담아 놓은 신랑의 흔적만이 나의 시선에 머물렀다. 잠이 조금 덜 깬 나는 신랑이 정성껏 준비해 놓은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나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고 눈 내린 밖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은 채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아이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본인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제 내가 집에서 구워놓은 빵을 아이가 먹었는지 물어보고 아이가 아직 안 먹었다고 말을 해서 아이의 아침으로 빵을 데워서 주고는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시간들이 나에게는 소중한 의미가 있다. 한창 바쁘게 살았던 시기에 나는 내 몸을 돌보지 않았고 아파트 분양받을 때 대출받은 대출금을 빨리 갚고 싶은 마음에 욕심껏 웹디자인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받아서 컴퓨터 앞에서 일을 했었다. 그때 나는 아이를 집에서 내가 돌보면서 일을 했고 육아와 회사 재택근무와 또 다른 디자인 아르바이트까지 몇 년간 병행하다가 결국 나는 건강을 크게 잃어 보았다. 그때 평범하게 주어지는 일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눈부시게 찬란한 소중한 하루" 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가족과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다고 나는 일을 먼저 하고 가족과 마음을 나눌 시간을 뒤로 미루었다. 다시 건강을 되찾은 지금의 나는 가족과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내 삶에서 제일 위에 두었다. 그래서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내다보며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이 시간도 나에게는 의미가 있고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시간의 망중한을 즐기다가 오전 11시쯤 되었을 때 나는 점심으로 따뜻한 수제비가 먹고 싶어 져서 공부하는 아이에게 수제비 반죽을 부탁했다. 나는 수제비 반죽을 배웠는데 이상하게도수제비를 끓여 놓으면 반죽이 쫄깃쫄깃한 맛이 안 나서 입맛이 까다로운 내 입에는 맛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반죽하는 것을 한번 배우고 나서는 아이의 반죽은 정말 신기하게도 수제비를 끓여 놓았을 때 반죽이 쫄깃쫄깃한 맛이 나서 너무 맛이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 집의 수제비 반죽은 아이가 항상 하는 일이 되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이가 반죽을 하기로 하였다. 공부하다가 갑자기 수제비 반죽을 하게 되어서 마음이 귀찮을 만도 한데 아이는 본인이 반죽한 수제비로 요리를 했을 때 나오는 그 맛을 미리 기대하면서 또 엄마가 무한 칭찬과 감탄을 하면서 먹는 그 시간의 행복을 상상하면서 즐겁게 반죽을 하였다. 수제비 반죽을 하는 아이 옆에서 나는 아이와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밖은 눈이 내려 키가 큰 소나무들이 마치 솜옷을 입은 듯 하얀 눈을 솔가지 사이사이에 걸쳐 입고 있었다. 그 풍경이 예쁜지 아이는 반죽을 하면서 연신 밖을 내다보며 나에게 "엄마 우리 집은 한국 아니고 꼭 북유럽 같아요!"라고 말을 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유 없이 본인 일을 하던 아이가 수제비 반죽을 하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이 시간에 드디어 밖의 풍경이 아이의 눈 안으로 들어왔나 보다. 나는 그런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우리 딸, 엄마 점심 맛있게 먹으라고 수제비 반죽을 열심히 하는 거야?"라고 말을 했다. 아이는 "네! 엄마는 내가 수제비 반죽을 해 주면 너무 행복해 하잖아요!"라고 대답을 하였고 나는 아이의 말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문득 '행복이 뭐 별건가... 사랑하는 가족과 밖은 추운데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것을 만들어서 함께 먹는 것이 행복인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일요일인데도 출근한 신랑이 생각났고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아쉬웠다. 내가 맞벌이를 할 때는 신랑의 무게를 덜어주어서 마음이 편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내가 퇴직을 하고 지금은 혼자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신랑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삶에서 간소함을 추구하며 되도록이면 "최소한의 소비"를 한다. 돈을 최대한 모으고 투자를 해서 그가 퇴직을 할 때 행복하게 퇴직할 수 있도록 지금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가 퇴직을 하고 난 후 "누구의 아빠" 또는 "누구의 남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살게 해 주고 싶다. 그에게 가장의 책임을 벗게 하고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서 나아가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 최대로 아끼고 살아가는 이 삶이 나는 슬프지 않고 오히려 행복한 마음까지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에 아이는 수제비 반죽을 완성하였고 나는 표고버섯과 양파를 썰어서 육수를 내고 생협에서 구입한 천연조미료와 멸치 액젓으로 간을 한 후 수제비 반죽을 떼어서 넣었다. 수제비가 다 완성되었고 나와 아이는 따뜻하고 시원한 수제비 국물과 쫄깃쫄깃한 수제비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소박한 점심을 먹었지만 아이가 엄마를 위해 열심히 반죽한 그 수제비는 더없이 귀한 것이었고 나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수제비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