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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Dec 09. 2024

아흔 둘

25분 지각 수영

친구랑 이야기 나누며 걷는 게 좋아서 버스로 15분이면 갈 거리를 40분 걸어갔습니다. 친구는 '나 때문에 괜히 늦게 가는 거 아니야? 할 일이 있으면 가봐도 괜찮아'라고 했지만 저는 친구랑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아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늘리고 싶고, 멀리서 온 친구를 기차역까지 배웅하고 싶어서 친구에게 오늘 꼭 해야 할 일도 없고, 저녁을 많이 먹어 좀 걸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랑 헤어지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불현듯 오늘 강습수영 가는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10개월간 매주 같은 요일과 시간에 하던 일정을 어쩜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건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가도 지각, 샤워하고 수영복 입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수영할 수 있는 시간이 20분 남짓 될까 말까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재고 계산하는 대신 곧바로 출발했습니다.


"25분 늦으면 안 받아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강사님께서 타박하셨지만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강습생들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자유형 3바퀴, 접영 연습 3바퀴 돌았을 뿐인데 시간이 다되어 수업이 끝났습니다. 지각을 하니 연습을 한 것도 아니오 아니한 것도 아니요, 하다 만 것 같아 개운치가 않습니다. 그래도 가지 않았더라면 그만큼도 하지 못했겠지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늦었다고 결석 말고 지각이라도 기회를 끝까지 붙잡아 조금이라도 해보려는, 해내려는 마음과 실행력을 종종 꺼내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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