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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흔

호기로움과 다정 사이 밀크티 한잔

by 주원

요즘 뜨끈한 밀크티를 즐깁니다. 먼저 냄비에 물을 약간 넣고 끓이다가 찻잎이나 밀크티 분말을 넣어 찻물을 만든 뒤에 우유를 부어 팔팔 끓입니다. 화끈하게 마시고 싶어서요.


완성된 밀크티가 머그에 딱 떨어지게 담기면 그마저도 만족스럽습니다. 호호 불어가며 천천히 조금씩 마십니다. 밀크티를 마시는 동안은 바쁠 것이 없습니다. 시간마저 부드럽게 흐릅니다.


혈관을 타고 빠르게 흘러간 찻물은 심장을 북돋아 더 빠르게 요동치게 합니다. 밀크티가 만든 파동은 미뤄뒀던 설거지를 거뜬하게 해치우게 합니다. 몸도 마음도 가뿐합니다. 묵혀둔 일, 새일 뭐든 다 해낼 수 있다는 기세로 방방 떠다닙니다.


손, 발 없이 붕떠버린 마음은 밤이 되어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새벽녘까지 잠 못 이루게 합니다. 다음날이 고생스러운 건 필연이지요.


밀크티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끊지 않 건 잠깐이지만 스스로가 호기롭게 느껴지는 그 시간이 만족스러워서입니다. 그만큼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네요.


밀크티 한잔 마시는 거에 뭐 그리 의미를 부여하고 심각해질 필요가 있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줄이긴 해야겠습니다. 연이어 잠을 잘 못 잤더니 세상일이 다 못마땅합니다. 저는 호기로움보다 다정함을 선택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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