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필요할 때

샬롯 블론테의 『제인에어』와 미아 와시코브스카 주연 <제인 에어>

by 유쾌한 주용씨

고전 소설과 영화를 묶어보는 즐거움을 소개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8,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세계 문학을 아주 좋아합니다. 유명한 세계 문학과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를 함께 보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여행하는 듯해요. 코로나 시기에 저는 고전 소설과 영화를 함께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우울한 때였지만 나만이 즐길 수 있는 이런 취미 덕분에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고전 소설과 영화, 이런 조합이 진짜 많은데 우선 가장 좋았던 작품을 어렵게 골라봤습니다.


-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당당하게 살고 싶다면, 샬롯 브론테 『제인에어』


제가 읽은 민음사의 『제인에어』는 1권과 2권 두 권 모두 400페이지가 넘습니다. 장편 중에서도 꽤 긴 소설이지만 불우한 환경과 감당하기 힘든 역경에도 꿋꿋하고 당차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제인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됩니다. 여성이 소설가로 성공하기 어려웠던 19세기 영국에서 샬롯 브론테의 소설은 170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도 충분히 가슴 뜨거운 자극이 되었답니다. 뜨거운 열정과 독립적인 자아의식으로 똘똘 뭉친 제인 에어는 딱 제 스타일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샬롯 브론테처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제인 에어처럼 내 삶의 주인으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외숙모 리드 부인에게 버려진 제인은 열악한 환경의 로우드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실의에 빠집니다. 그때 만난 친구 헬리 번스가 죽기 전에 제인에게 이런 말을 해요.


“설사 이 세상 사람들이 널 미워해도, 너를 나쁜 아이라 생각해도, 네 양심이 너 자신을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죄에서 풀어준다면 너에게 친구가 없을 리 없어”


당시 열 살의 제인은 이후로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제인은 안정보다는 도전을 택하는 용기 있는 아이였어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주저앉는다면 더 이상의 깨달음과 성장은 없겠죠?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 환경에서 살아가는 내가 변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제인과 나를 비교하는 게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저는 15살에 익숙한 고향과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촌스러운 아이 취급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더군요.


제인은 로우드 학교의 교사로 일하다가 스스로 변화를 찾아 손필드 저택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주인 로체스터를 만나면서 제인은 이성에 눈을 뜨고 조금씩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돼요. 이후 18살 제인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로체스터와의 러브스토리는 정말 흥미진진하답니다. 단순하고 안정된 생활에 싫증을 내는 제인에게 폭풍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30대 후반의 로체스터 씨가 18살 제인에게 호감을 느끼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합니다.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파도에 그들은 어떤 길을 선택할까요?


“언젠가는 바위가 많은 물길에 다다르게 될 거요. 인생의 모든 흐름이 소용돌이치고 왁자지껄해지고 물거품과 소음이 부서지는 곳으로 말이오. 길은 두 가지밖에 없소. 험한 바위 너설에 부딪혀 온통 바스러져 버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나처럼 커다란 파도에 실려 보다 평온한 물길로 나서게 되든가.”

『제인에어 1』 p. 259


제인은 리드 부인의 죽음이 멀리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먼 길을 달려갑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기만 했던 외숙모를 용서하고, 그녀의 두 딸까지 챙기고 보살펴요. 18살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성숙함과 관대함을 지닐 수 있을까요? 힘든 시간을 고스란히 자신의 정신력을 키우는 데 쓴 제인의 현명함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모든 이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죠. 누군가에게는 후회와 안타까움이었을 그 시간이 제인에게는 알찬 열매를 맺게 하는 값진 거름이 돼 주었답니다. 시간이 복수하려는 열망을 누그러뜨려 주고 분노와 증오를 달래어준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소설을 읽느라 밤을 지새웠습니다. 『제인에어1』을 읽고나니 『제인에어2』를 자연스럽게 이어 보게 되고, 읽다 보니 결말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여고 시절로 돌아간 듯 제인 에어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에 빠져 잠을 설치며 소설에 빠져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건 역시 사랑입니다. 제인에게 고백하는 로체스터의 말에 제가 제인이 된 듯 심쿵했습니다.


“나는 여태껏 당신과 같은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소. 제인, 당신은 나를 즐겁게 해주오. 그러면서도 나를 지배해. 겉보기에 당신은 양순하게 나에게 복종하는 것 같소. 당신이 주는 그 유순한 느낌이 나는 좋소. 그런데 내가 당신이라는 부드러운 실타래를 손가락에 감아보면 그것은 기분 좋은 전율을 내 팔에 전해 주고 그것이 점점 퍼져 심장에까지 이르게 되오. 나는 지배를 당하는 거요, 정복을 당하는 거요. 그런데 그 지배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미로운 것이고, 내가 당하는 정복은 내가 얻을 수 있는 어떤 승리도 미치지 못할 만큼 마력적인 데가 있소.”


제인은 밀땅의 고수입니다. 잡은 물고기에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남자들의 고약한 심리를 알고 있는 듯해요. 자신보다 20살 많은 주인님 로체스터를 자신의 남자로 길들이는 18살 제인에게서 한 수 배웁니다.


'됐어.' 나는 생각했다. '실컷 화도 내고 속도 좀 태워 보시라지. 하지만 당신과 함께 살아나가는 데는 이게 제일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어요.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감정을 용두사미로 끝나게 하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저는 이 재치 있는 응답이란 바늘을 가지고 당신이 심연의 언저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드리겠어요. 뿐만 아니라 그 날카로운 바늘의 힘을 빌려 피차를 위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거리를 당신과 저 사이에 유지하려는 거예요.'

『제인에어 2』 p.72


아시겠지만 시련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 시련을 어떻게 견뎌내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느냐'가 중요하죠. 사랑하면서 짧든 길든 이별을 경험합니다. 서로 헤어져 있는 동안 간절히 그리워한다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인이 떠나는 장면에서 저는 로체스터와의 인연이 끝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별의 시간이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단단하고 간절하게 만들 거라는 확신이 들었죠. 1년 만에 돌아와 사고로 눈이 멀고 불구가 된 로체스터에게 제인은 거침없이 사랑을 고백합니다. 독립적인 그녀에게 선택의 기준은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그녀의 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되지 않았어요. 소설이니까 그렇다고요? 아뇨, 저는 여전히 사랑의 힘을 믿습니다. 제인의 용기 있는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했답니다.


이제 나는 결혼을 한 지가 십 년이 되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그 사람과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축복받은 사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의 남편이 내 생명인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곧 남편의 생명인 까닭이다. (···) 우리는 항시 함께 있다.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혼자 있을 때처럼 자유로우며, 동시에 여럿이 같이 있을 때처럼 즐거운 것을 의미한다.


사랑 이야기는 역시 해피엔딩이 좋아요. 둘의 사랑은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10년이 지나도 둘의 사랑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를 읽으며 나도 제인 에어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내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 매력적인 여자 제인과 함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미아 와시코브스카 주연 <제인 에어>


movie_imageYA8G622N.jpg 영화 <제인 에어>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1, 2권을 다 읽고, 바로 이어 영화 <제인 에어>(2011)를 봤습니다. 책을 읽기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고,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주연의 <마담 보바리>(2015)를 이미 본 터라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연기하는 제인 에어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제인 에어는 환경 탓, 남 탓을 하지 않아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기보다는 인내력과 독립심을 키웁니다. 나쁜 어른들을 보고 그들에게 당하며 자랐지만, 마음에 증오를 품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습니다. 나중엔 자신을 학대했던 외숙모를 용서하는 너그러움까지 보여주죠.


가족도 없고, 돈도 없는 제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부딪치고 견뎌내고, 도전하고 이겨내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에 불덩이 같은 열정을 품고 있었지만,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죠. 넓은 세상을 책으로 익히고, 외로움을 친구 삼아 스스로 성장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인은 단단해졌어요. 돈 앞에서 비굴하지도, 자신의 소박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의 솔직하고 성실한 태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신뢰하고 그녀의 편이 돼 주었어요.


남다른 제인을 알아본 사람은 로체스터입니다. 손필드 저택의 돈 많은 주인이지만 가정교사이며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제인에게 빠져들었죠. 진짜 사랑은 나이, 신분 따위를 훌쩍 넘어 버립니다. 나쁜 남자는 확실히 매력 있어요.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데도 끌리죠. 평소에 무뚝뚝했던 남자가 격정적인 고백을 해 오면 넘어가지 않고 버티기가 쉽지 않아요. 기분 좋은 긴장감인 것 같습니다. 물론 나쁜 남자에게 설레는 건 연애할 때만 그렇습니다. 결혼해서 남편이 불친절하면 그냥 그건 나쁜 놈인 거죠. 용서가 안 돼요. 남편과는 안 되고, 연애할 때만 가능한 것 또 하나, 서로를 향한 뜨거운 눈빛입니다. 말과 행동은 숨길 수 있어도 사랑에 빠진 눈빛은 감출 수가 없잖아요. 상대방의 모든 것을 내 눈 속에 담고 싶은 마음, 나도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 잘 알죠.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내고, 당찬 숙녀로 성장한 제인 에어. 오랜 시간 말 못 할 사연을 안고 사느라 상처 많은 고집쟁이 남자가 되어버린 로체스터. 두 사람의 관계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달콤함도 오래 가지 않았어요. 러브스토리에 빠질 수 없는, 시련과 이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헤어져 있는 기간 동안 제인에게는 사랑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뻔한 유혹이 있었고, 로체스터는 큰 사고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은 결국 두 사람을 이어 줍니다.


똑똑한 열여덟 살 소녀가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아저씨에게 빠진 이유가 집안이나 돈이었다면 제인은 로체스터를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제인은 사랑 앞에서도 주체적이고 용감했습니다. 떠나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떠났고,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냥 사랑했습니다. 자신에게 던져진 운명에 맞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개척하는 제인 에어의 강인함이 좋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녀의 용기 있는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제인 에어는 말합니다. 운명보다 내가 더 강하다고. 사랑도 행복도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고.


유명한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나오면 원작과 영화 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 평가를 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책에 점수를 더 주는 편입니다. 원작의 내용을 2시간 영화에 다 담아낼 수도 없고, 책을 읽으며 저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이 너무 큰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2시간 영화 <제인 에어>보다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 1, 2권을 읽는 시간이 훨씬 오랫동안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고전 문학을 읽고 영화를 찾아보는 일이 저의 새로운 취미가 되었습니다. 이미 읽고 봤던 <오만과 편견>, <안나 카레니나>, <작은 아씨들>, <위대한 개츠비>, <마담 보바리> 등 원작과 영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너무 많아요. 함께 즐겨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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