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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Nov 13. 2023

나의 글쓰기 선생님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의 메타포라 10기입니다!

나는 은유의 메타포라 10기다.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12주 동안 매주 화요일에 글쓰기 수업의 학인이었다.  첫 수업 날이 떠오른다. 수업 전 무척이나 설렜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학원 강사가 직업이니 수업을 이끄는 건 익숙하지만 학생의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낯설다. 은유 작가를 직접 보는 것도, 함께 읽고 쓸 학인들을 만난다는 것도 모두가 떨림이었다. 오전 요가 수업도 빠지고 일찍 서울에 갔다. 합정역에서 옷가게에 들렀다. 그날의 날씨, 기분과는 맞지 않는 칙칙한 옷 대신 청바지와 파란색 셔츠를 사 입었다. 남편이 선물해준 카페 상품권으로 샌드위치와 아이스라떼를 마시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수업 준비물은 은유 작가의 글쓰기 책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다. 수업 신청을 하기 전부터 아껴읽던 책이다. 첫 시간 교재 같은 책이니 더 꼼꼼히 보기로 했다. 좋은 문장에 밑줄 치고 그것 중 내맘에 닿은 것들을 골라 노트에 적었다. 가방 안에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뿐만 아니라 최근에 구입한 《글쓰기의 최전선》과 《쓰기의 말들》도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책 사는 돈도 아끼느라 도서관에서 빌려봤던 책이었다. 은유 작가님의 수업을 듣게 되면서 다시 읽고 소장할 생각으로 구입했다. 그날의 난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학생 같았다.


1. 혼자 쓰다가 주저한다면


2017년 4월,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국어 강사로 풀던 문제집 대신 읽고 싶은 책을 붙들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찾아 봤다. 책과 영화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책을 보다가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이 생겼다. 영화를 보면서 낯선 감정들이 웅성댔다. 블로그에 적기 시작했다. 에세이를 한 권 출간했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 글을 쓴다. 가끔 이 힘든 걸 왜 하나 싶을 때도 있다. 엄마 말처럼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글을 붙들고 있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주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주저한다. 글 쓰기는 혼자여서 편하지만 혼자라서 힘든 일이기도 하다.


나만을 위한 글이었다.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일기 같은 글. 그거라도 쓰자 싶어 계속 쓰다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글이냐고 자문하며 쉽게 힘이 빠졌다. 블로그에 쓰다만 글이 무수히 쌓여 있다. 그날의 기분을 넋두리하듯 쓰다가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지 못해 멈추고,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주제를 찾지 못해 그만뒀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으며 이제부터 글을 완성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로 내안의 이야기를 엮어보고 싶어졌다. 메타포라 수업에서 얻은 소득은 바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힘을 키우고 다른 이들의 평가를 들어봤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나 같은 사람이 쓴 글이 나 말고 누구에게 소용이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드라마틱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엄청난 고통을 이겨낸 경험이 있지도 않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한민국의 여성이고 딸이고 엄마이고 아내일 뿐이다. 그런 내가 무슨 말로 독자를 모으고 감동을 주고 설득시킬 수 있을까. '나에게 힘을 준 글이 남에게도 힘을 준다. 용기도 전염된다.'는 말에 기대보기로 했다. '완벽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완벽해지려는 노력도 할 수 있다'는 말에 힘을 얻듯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보고 싶다.


2. 일단 써보고자 한다면


나는 내가 쓴 글이 자주 부끄러웠다.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과 감정일 뿐인데 그것을 글로 남긴다는 게 영 탐탁치 않았다. 허접하고 엉성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이나 댓글을 기다리고 있는 내꼴이 좀 우습기도 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아직 자랑할 만한 글까지는 아니더라고 어제보다 나은 글을 오늘 쓰고 싶었다. 오늘 쓴 글보다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계속 쓰고 싶다. 그럴려면 내 글이 무엇이 부족한지,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수정하고 개선해야 한다. 은유의 글쓰기 책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희망이 보였다.


자료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 만큼 쓸 수 있으므로, 손수 모아둔 자료의 양과 그것을 이해한 정도에 비례해 글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문장을 읽으며 그동안 나의 글쓰기는 맨땅에 헤딩이었구나 싶어 머리가 띵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읽은 책들을 감상만 했을 뿐이지 내 자료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당장 문장 노트부터 만들기로 했다. 허접한 글을 쓰지 않으려면 하나의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엉성한 글이 되지 않게 밀도를 채우려면 내 글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자료가 필요하다. 총 들고 싸우러 가기 전에 탄알이 충분히 있는지 확인하는 게 필수이듯 글을 쓰기 전에 쓸거리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3. 섬세하게 쓰고 싶다면


내 첫책을 비롯해 블로그에 쓰는 내 글에는 나의 가족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돌아가신 아빠, 엄마, 함께 살고 있는 남편과 두 아들까지. 나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니 어쩔 수 없는 등장 인물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그들을 존중하며 제대로 표현했을까?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그들은 내 감정에 따라 나쁜 사람으로 욕받이가 되기도 하고 좋은 사람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심판자가 아닌 관찰자'로 지켜보지 못했다. '감정이 아닌 행위 중심으로' 쓰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자신 있게 글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내 글이 성장하고 내가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블로그에 자주 글을 올렸다. 브런치에 가끔 글을 발행한다. 나를 위한 글 쓰기라고 했지만 남들이 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내 이야기를 남을 의식해서 쓸 때가 있다. '나만의 사고와 언어'를 갖고 싶은데 남들이 인정할 만한 사고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정도의 언어만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회의가 생길 때도 있다. 글이 많은 SNS이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다보니 적당한 길이에서 미흡한 마무리를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이 정도면 됐겠지' 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이제 '이게 최선이다'라고 생각할 만한 완성도 있는 글을 쓰고 싶다.


4.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내 글이 지겹고 싫어져서 나를 바꿔보자, 다르게 살아보자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술을 끊어봤다. 100일, 56일, 45일, 술을 안 마시면서 잠시 다른 내가 되어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낯선 내가 어색한 글을 썼다. 결국 그 낯섦과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원래의 내가 되었다. 다시 지겨운 글을 고치고, 싫어서 외면한 글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나만의 스타일과 문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 《연인들》을 읽으며 시와 친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많이 읽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며 정리한다.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사람, 오래 쓰는 사람으로 살자고 다짐한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 소개된 책과 문장들이 매혹적이다.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에 나오는 문장이라고 소개한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동안의 글쓰기가 나만을 위한 행위였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글에 타자를 위한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을 지키고 좀더 욕심을 부려 독자까지 생각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서툴고 흔들리는 내가 계속 글을 쓰면서 나날이 단단해지고 확실해지길 바란다. 글을 쓰는 일이 다시 나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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