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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Nov 24. 2023

도전하는 즐거움!『코스모스』읽기

중1 아이들과『코스모스』완독 도전!

나이 50에 시작한 학원 논술 선생님. 2021년 9월에 시작한 수업이 어느새 2년을 훌쩍 넘겼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는 것부터 책을 꼼꼼히 읽고 무엇을 묻고 무엇을 쓰게 할지 시간과 공을 들여 수업 활동지를 만든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1까지 4개 학년을 준비해야 하니 초보 논술쌤으로서는 만만치 않았다. 20년 넘게 학원밥을 먹었다고 너무 얕잡아 봤나 싶어 프랜차이즈를 마다한 걸 살짝 후회했다. 하지만 잘 버틴 덕분에 내 정성을 알아주는 학부모와 내 수업을 좋아라 하는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라 품은 많이 들지만 수업 활동 하나하나에 내 애정이 들어가 있으니 수업에 더 몰입하게 되고 아이들도 나에게 동화되어 2시간 수업이 지루할 틈 없이 지나가곤 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 보람이 더 컸다. 


교재가 정해져 있는 프랜차이즈 논술 수업이 아니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내 맘에 드는 책을 선정할 수 있고, 아이들이 쓸 글의 주제도 내가 정하고, 다른 학원에서는 하지 않는 도전도 시도할 수 있다. 올해 논술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중1 아이들과 『코스모스』를 읽는 일일 것이다. 3년 전 혼자 읽다가 멈췄던 책인데 책장에 꽂혀 있던 것을 꺼내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렵겠지만 함께 읽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바로 학부모님들의 의향을 물었다.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중1 아이들과 13장으로 구성된 『코스모스』완독에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어머님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맡은 중1 아이들은 토요일 3반 15명이었는데 그 중 학습 능력이 비교적 좋고 독서 습관이 잡힌 학생들의 학부모만 찬성하고 나머지 학부모들은 좀 무모한 도전이지 않냐며 난색을 표할 수도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한두 분만 '우리 애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정도로 걱정을 표하시고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아주 반기시며 대찬성을 외치셨다. 과연 될까 하던 일이 학부모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에 대한 약간의 기대와 너무 두꺼운 책에 대한 걱정, 그래도 함께하는 거니까 그냥 따라가보지 하는 마음이 뒤섞인 채로 700페이지에 달하는 『코스모스』를 들고 등장했다. 

 


나의 논술 수업은 초등 4학년부터 중1까지만 한다. 나 혼자 3일만 하는 수업이라 많은 학년, 많은 반을 구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 욕심, 돈 욕심을 부리면 일주일에 5일 이상 수업하면서 더 많은 아이들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나이 50이 넘으니 나의 깜냥을 알게 되기도 했고 천천히 오래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덕분에 나 스스로 '워, 워'하며 삶의 속도를 조절한다. 아무튼 주 3일, 4개 학년 수업을 하고 있고 중1은 매년 12월까지만 수업하고 졸업을 시킨다. 내가 일하는 지역은 올해까지 자유학년제라 중1까지는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없지만 중2부터는 학교 시험이 생기기 때문에 논술 수업에 대한 수요가 주는 탓이다. 작년에는 중1 하반기에 미리부터 학교 시험을 걱정해 국어 수업을 듣겠다고 빠져나가는 중1 학생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코스모스』과정 덕분에 중간에 2명이 더 늘어 3반, 17명이 강의실을 꽉 채워 수업하고 있다. 


학부모님들이 응원해주고 아이들이 묵묵히 따라와주는 것이 무척 고맙지만『코스모스』수업을 준비하는 나는 사실 부담이 크다. 어려운 책을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고, 논술 수업답게 글로 표현하도록 해야하니 매 장 진도를 나갈 때마다 고민이 많다. 책을 두세 번 읽는 것은 물론 유튜브로 『코스모스』강의를 듣기도 한다. 문학과 비문학 균형을 맞춰 책을 읽었던 전과는 달리 한 권의 과학 지식서를 3개월 동안 끌고 가야하니 수업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질까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말랑말랑한 글을 쓰도록 질문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기도 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각자 밑줄 그은 부분을 읽고 감상을 발표하게 한다. 책의 같은 곳을 펼쳐 친구의 목소리로 함께 읽고 자신과는 다른 친구의 생각을 듣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힘든 과정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뿌뜻한 수업의 맛을 느끼고 있다. 


앤 드루얀을 위하여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서문을 이렇게 썼다. 자신과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연인이자 아내이자 동료인 앤 드루얀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이 담뿍 담긴 글이다. 나도 이 말을 빌려 나와 함께 『코스모스』를 읽고 있는 우리 중1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논술 선생님으로서 온전히 내 뜻과 의지로 이런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12월이면 너희들과 헤어지게 되겠지만 너희와 『코스모스』를 함께 읽었던 3개월이 나의 우주에는 영원히 잊지 못할 찰나의 순간이 될 거야." 칼 세이건처럼 좀 멋지게 말하고 싶었는데 수업 준비가 더 급하고 바빠서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내일 수업은 제목도 의미심장한 '9장 별들의 삶과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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