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한 건 30대 이후였다.
처음엔 그때 즈음 조울증, 불안증이 발병한 줄 알았다. 보통 2~30대 때부터 발병 확률이 높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학창 시절엔 머리카락을 뽑거나 몸을 심하게 긁는 등의 행위들이 지금은 몸에 칼을 대게 된 것이고, 죽음에 대한 생각, 늘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 20대가 넘어갈수록 요절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짜증 났던 것이, 스스로 죽음을 행해 볼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한 데는 이유가 있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부모에게 버림받으며 살던 내가, 믿고 소중했던 타인에게 버림받으면서 내 내면에 잠들어 있던 모든 것이 휘몰아쳐 올라온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버림받는구나 라는 생각에 덤프트럭에 치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삶에 의미가 정말 없구나.”라고 느낀 게 그즈음이었다.
5~6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예전엔 ‘미술사에 한 획을 긋고 싶어!’ 라든가, ‘돈이 부족하더라도 이래저래 모아서 여기저기 그림을 내어봐야지!’ ‘다음 전시 주제는 이렇게 해볼까?’ ‘나만의 작업실이 생긴다면 어떻게 꾸밀까?’ 등등 삶의 의미가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해 본 자만 알 수 있을 것이다.
24시간이고 1주일이고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을 수 있다.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나마 몸에 자기 자극을 하면서 앉아있을 수는 있게 되고, 정신과 약을 자주 (솔직히 꾸준히 매일 먹지는 못했다.) 먹으면서 일상생활을 억지로 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 쌤이 해준 좋은 이야기들을, 그 당시에는 귀에 들리지 않지만 나중에는 서서히 깨달을 수 있다.
선생님은 “아주 작은 목표라도 좋아. 작은 목표를 정해서 하나씩 해봐.”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목표들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가령 ‘머그컵 씻기’ ‘돌 한 개 칠하기’ ‘작업대 닦기’ 등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부터 차근차근하기 시작했다.
나를 버렸던 그들이 잘못이라고 마냥 그들을 탓하며 살 수는 없다. 이건 내 인생이다. 빨리 끝내고 싶더라도 생각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조각난 내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며, 험한 꼴로 대롱대롱 매달린 나를 봐야 하는 소방관 경찰관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최대한 살아보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이 있고, 아무리 친족관계, 연인관계, 친구관계였더라고 하더라도 서로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은 그 관계를 반드시 끊게 되어 있다. 그게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더라도, 그리고 나도 그런 관계들을 끊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들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었을 뿐이다. 나뭇가지를 자르면 새순이 또 나고 두 갈래로 새순이 날 수도 있다. 그게 삶인 것 같다.
힘든 삶을 살아왔음에도 나는 바보같이 사랑이라는 걸 믿는다. 엄마아빠는 나의 적이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지금도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그들은 해피앤딩의 왕자님과 공주님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의 원동력이 생긴다. 그들의 말 한마디, 웃음 한 번에 기운을 차리고 일을 할 수 있다.
지금의 나에겐 사랑이 없지만 그걸 대체할 수 있는 걸로 웃음, 즐거움, 재미 등을 이용하고 있다. 가끔은 육체적 고통도 도움이 된다.
좋아하는 시트콤을 계속 틀어두고, 개와 놀고, 새를 구경하고, 카멜레온의 웃긴 표정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정신과 방문을 걱정하거나 꺼려하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남들이 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편협한 것이다. 무시해라. 전문가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게 맞는 것이다.
당신이 생활하는 곳에서 가까운 곳이 좋다. 당신에게 맞는 의사 선생님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의사 선생님의 성별, 연령대 등도 꽤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에 갔던 곳은 의사 쌤과의 캐미가 정말 안 맞아서 병원을 바꾸었다.
현대사회에서 마냥 맨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오히려 그들이 더 대단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솔직히 없지 않을까 싶다.
2025년은 나랑 띠가 같은 뱀의 해이다.
부디 올해엔 내가 헌 옷을 벗어버리고 맑은 정신과 마음으로 작업에 다시 매진할 수 있기를.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