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선포

by JK

해리포터를 읽거나 본 사람은 그린고트 은행 저 밑에 살던 용을 기억할 것이다.

목은 쇠고랑에 잠겨있고 여기저기 사슬에 묶여 온몸이 흉터 투성이로 그린고트 은행 바닥을 지키던 용.

고블린들은 이 용을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기고, 자신들이 유용하게 부려먹을 수 있게 학대를 일삼았다.


나도 엄마에겐 '소유물'이었다.

넌 내 딸이니까 친구랑도 놀면 안 돼.

넌 내 딸이니까 남자친구도 안돼.

넌 내 딸이니까 남자들과 말 섞는 것도 안돼.

넌 내 딸이니까 나에게 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돼.

넌 내 딸이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돼.


내가 엄마의 소유물로서 반하는 행동을 했을 경우, 어릴 적엔 폭력과 폭언, 정서적 학대.

성인이 되고선 폭력과 폭언, 정서적 학대.

지금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엄마의 폭언과 정서적 학대는 계속되지만, 이제는 내가 저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린고트 은행 지하 바닥에서 올라왔다.

내 나이 35살에.

그리고 내가 그렇게 쇠사슬에 묶여사는 용이라는 걸 알아채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36살이 되고 나서 난 엄마에게 선포했다.


"난 더 이상 당하고 살지 않을 거야. 엄마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이제 내 맘대로 살 거야."


방치만 하던 아빠에게 끓어오르던 분노는 어느 정도 멈추었다.

내가 쇠사슬에 묶인 용이라는 걸 깨닫고 엄마 아빠에게 모든 걸 질문하고 확실히 답변을 듣기를 원했다.

그들이 에둘러 말하면 재차 물어보았다. 폭언과 정서적 학대를 다시 받을 것을 감수하고 계속 물어봤다.


엄마가 나를 찔러 죽이고 엄마 스스로도 죽을 것 같아서,

아빠가 내 편을 들어주면 엄마가 더 날 뛰며 날 죽일 것 같아서 아빠는 방치했다고 했다.

실제로 엄마는 내 손에 칼을 쥐어준 적도 있고, 차에 뛰어들겠다며 뛰쳐나간 적도 있다. 아빠는 엄마를 잡으러 다니기 바빴다.


그 소리를 듣고 처음엔 화가 났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내가 정신과에 다니고 몸에 칼을 계속 대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던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 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냥 순간을 모면하려는 행동이겠거니,

내가 옛 일을 들춰내는 게 싫어서 장단 맞춰주려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나도 지금 해결책은 원망이 아닌 move on 인 것 같아서

그들에게서 돌아서고 최대한 차단하려고 노력했다.


아빠는 계속 '정상적인(?)'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나도 어느 정도는 아빠와 화해가 된 것 같다.


엄마는 성향상 그럴 가능성이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정이라는 게 있다. 참 무서운 단어다. 엄마의 말과 행동을 증오하지만 엄마라는 존재 자체를 증오하는 건 쉽지 않다.


2025년 3월 12일.

내가 태어난 뱀 띠해의 내 생일.

나는 엄마에게 선포했다.


"난 더 이상 당하고 살지 않을 거야. 엄마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이제 내 맘대로 살 거야."


엄마는 정서적 학대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생일이라 봐준 것일 수도,


나는 그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들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 스스로 다짐을 한 번더,


평안하리(Rest In Peace)_53cmX65cm(15F)_2023_Acrylic on canvas.jpg 평안하리(Rest In Peace)_53cmX65cm(15F)_2023_Acrylic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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