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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Apr 23. 2020

모두가 작가일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작가이면 좋겠다

나도 작가다

처음으로 나를 작가라고 불러준 사람들이 있다. 브런치 팀이었다. 그들은 내 글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거기에다 소중한 글이라는 표현까지 덧붙였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때마다 독자들이 한 분씩 늘었고 그분들은 댓글에 작가님이란 호칭을 자주 적었다. 와우! 작가라니.



나는 2010년도에 교회가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에서 지냈다. 왜? 여러 핑곗거리가 떠오르지만, 결국 한 가지 이유로 귀결되는데, 그건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거였다.


내가 노숙인 시설에 들어간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목사님께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독후감 대회를 열었다. 인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사회분위기도 한 몫했겠지만, 20년이 넘는 교회 역사 이래로 뜬금없는 일이었다. 이 일에는 개척 교회 때부터 자리를 지킨 안수 집사님의 증언이 있다.


6개월 전에 마포대교 위를 어슬렁거리며 줄 없이 번지 점프할 위치를 탐색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경의 창세기를 넘어서 요한계시록을 마주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마흔 살이 조금 넘었는데, 어릴 때부터 어진 종교 생활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의 벽을 매번 무너뜨리지 못한 채였다. 성경 완독을 해낸 내가 독후감을 위해 선택한 책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었다. 나는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푸얼! 사람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는 책 소개에 눈길이 간 것이다. 40년 만에 드디어 성경을 다 읽은 사람이 선택할 책으로 딱이었다.


나는 A4 용지 4장을 꽉 채워 글을 썼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그렇게 긴 독후감을 써 본 도, 책 한 권을 밤새워 읽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이백여 명의 일반 교인과 백여 명의 노숙인들이 참가한 독후감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 상금이 무려 20만 원이었는데 글을 써서 돈을 번 최초의 사건이었다. 내 시작은 미약했다. 인정!


몇 달 후에 서울시가 주관하고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시행한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글쓰기 공모를 했다. 대상은 서울에 있는 복지 시설 입소자와 직원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이번에도 등인 최우수상을 탔다. '나 금메달 먹었어요.'라고 엄마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당시에 나는 가족과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노숙인의 신분은 그리 내세울 것이 못 되니까. 특히 엄마에게는.

두 번째로 글을 써서 번 돈은 30만 원이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숙인 시설에서 일 년쯤 더 지내다가 나는 그곳을 나왔다. 깊은 우물의 밑바닥에 두 발이 닿고 나서야 나는 일어설 수 있었다. 영등포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님은 떠나는 내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돌아오라고 했는데, 나는 여태 돌아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는 한, 앞으로도 잘 견딜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먹고살다 보니 잠깐의 글쓰기는 금세 잊혔다. 불현듯 글이 생각나면 밴드나 블로그에 낙서를 했다. 진짜 낙서였다. 끄적끄적 두서없는 글쓰기반복하진전이 있었던 걸까. 블로그 이웃 한 분이 브런치를 소개했다. 그분은 몇 안 되는 나의 독자였는데 자주 나를 너무 높이 띄웠다. 브런치를 향해 공중 높이 올랐던 나는 세 번 추락했다. 브런치 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지않아서 내게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먼저는 브런치 팀에서 나를 작가라고 불러준 일이었다. 두 번째 기적은 브런치 통과 후 삼 개월 뒤에 일어났다.


2019년 12월 24일에 나는 출판사, 웅진씽크빅의 출간 제의를 받았다. 브런치를 통해서였다. 나는 온종일 히죽거렸고 기쁜 마음이었는데, 아직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이후로 추가 원고를 쓰고 일러스트 작가님이 정해지고 편집자 피드백에 수정 원고를 보내며 직장을 다녔다.


출간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실감이 안 는 날들이었는데, 올해 3월 중순쯤에 드디어 나는 제대로 현실을 체감했다. 나도 작가란 것을.

농협에서 보낸 입금 알림에는 3백만 원 가까운 숫자가 찍혀있었다. 선인세가 입금된 것이다. 나는 울었다. 스티븐 킹을 울린 <캐리>의 저작권료 40만 달러보다는 적었지만 나는 3백만 원에 밤새 울었다.

아직 책이 나오기까지 몇 가지 작업이 남았다. 출간 예정일은 5월 중순인데, 책은 무사히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아무래도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은 이 느낌, 아뵤!


출판을 준비하며 작가란 호칭을 많이도 들었다. 그래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이다. 책을 몇 권 더 출간해도 이 어색함은 계속될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들어서인지 나는 작가란 단어를 자주 생각한다. 작가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는가? (나는 단어와 문장, 그리고  문단, 혹은 어휘력과 문법 등에 대해서 논하지는 않겠다.  수도 없다.)


나는 종종 사람들을 바라본다. 남편의 지친 어깨를 살피는 아내, 아내의 불안한 시선을 보듬는 남편,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의 얼굴, 몰래 울고 있는 직장 동료,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 종이상자를 줍는 할머니의 굽은 허리, 기억을 잃고 아기가 된 노인들처럼 찬찬히 보아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고통이 우리 주변에 있음을 나는 안다.

글과 말로, 손길과 관심으로 서로를 위안할 수 있기를.


나는 작가는 고요한 눈동자를 가진, 오랜 시간 기다릴 줄 아는, 자신의 고독을 견디며 세상의 외로움은 덜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지 않고 책을 내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작가가 되고 팬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작가일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작가이면 좋겠다.

인생이란 원고지에 사랑이란 글을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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