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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Oct 12. 2021

상실의 시간

2. 상실의 시간 


         

 쉼터에 입소한 후 첫 번째 밤이었다. 낯선 사람들의 숨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무기력하게만 보였던 한낮의 그들의 숨결이 그 밤에는 코뚜레 없는 성난 소의 뿔처럼 귓가로 달려들었다. 길 위에서도, 이곳에서도 불면의 밤은 여전했다.

 

 내무반 같은 긴 방에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발바닥을 향한 채 잠들었다. 관물대 아래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였다. 

 배는 불렀고 등은 뜨듯했는데, 그게 오히려 비참하고 화가 났다. 긴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터널을 지나는 기차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기차는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었다. 차라리 지금 무너지기를, 출구가 나타나지 않기를 그 밤에 바랐다.     

 

 창밖으로 여린 빛이 스며들었다.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익숙한 듯 이불을 정리하고 씻지도 않은 얼굴로 방을 나섰다. 나는 행렬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우리의 모습은 영화에서 봤던 좀비와 비슷했다. 아니, 좀비는 생각이 없을 테니까. 나는 좀비도 못 되는 가짜 좀비였다.     

 

 사람들은 다들 말이 없었다. 서로에게 다정한 아침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한 사람이 앞장섰고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나선형 난간을 따라 지하로 향했다. 퍼스트 펭귄이 안내한 곳은 지하 예배당이었다. 한 사람이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피아노가 있었지만, 반주는 기계음이었다. 여덟 명 정도면 꽉 찰 것 같은 긴 나무의자 끝쪽에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 가운데쯤을 가리키며 손짓을 했다. 나무의자 가운데로 몸을 옮기는데, 새벽 공기처럼 차가운 나무 감촉이 느껴졌다.

 예배당 안쪽 벽에는 예수 형상이 매달리지 않은 십자가가 있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아있었다. 그 무겁고 큰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자니 인간의 원죄설이 어쩐지 사실일 것 같았다.

 나는 십자가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는데, 만약 십자가가 앞으로 쓰러진다면 정확하게 깔릴 수 있을 자리였다. 그러고는 공사에 참여한 어느 인부가 볼트를 엉성하게 조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자기 할 일에 충실했던 모양이다. 십자가는 꿈적도 안 하고 벽에 붙어있었다.

  작은 단상에 선 남자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 '샤론의 꽃'이란 찬송가였던 것 같다. 잠긴 목소리를 숨기고 입술만 오물거렸다.     

 

 한 시간여의 아침 예배가 끝나면 사람들이 다시 계단을 올랐다. 한 층 위는 식당이었다. 계단에 선 사람들이 식당 입구까지 저절로 밥줄을 만들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식당 출입구 쪽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노숙인들이 만든 줄이다. 그들은 예배로 우선권을 얻은 입소 노숙인들의 배식이 끝나면 그제야 입장할 수 있었다. 간혹 예배에 참석해서 먼저 식사를 하는 노숙인도 있긴 했지만, 대다수는 늦게 먹는 쪽을 택했다. 

 예배에 참석하기는커녕 오히려 삿대질하는 노숙인도 있었다. 한 사내는 교회나 무료급식소가 노숙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약 굴 같은 곳이라고 소리쳤다. 꼬박꼬박 공짜 밥을 주니까 일할 생각이 안 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식사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하룻밤 함께 지냈다는 안면으로 담배를 얻어 피울 수 있었다. 한 남자가 내게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 노숙했는지 등을 캐물었는데, 나는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교회 옆 좁은 골목에 하얀 연기가 물안개처럼 피어났다. 하지만 안개는 오래가지 못했다. 뿌연 연기에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시간은 순간이었다. 그럴수록 노숙인들은 더 힘을 내서 담배를 피워댔다.     

 

 센터 직원들은 노숙인을 형제님이라고 불렀고 형제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을 노숙자라고 칭했다. 나는 노숙자니 노숙인이니 하는 말보다 부랑자나 거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더는 떨어질 곳 없는 바닥에까지 나를 내몰고 싶었다. 그래야 생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쯤이 끝일지, 언제쯤이면 그때가 올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휴대전화를 챙겨 들고 영등포 외곽으로 향했다. 요금을 내지 못해 정지된 휴대전화기를 사주는 곳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상인은 손사래부터 쳤다. 그런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흠집 하나 없는 갤럭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찾아봤다. 거기엔 어린 아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뽀얀 살결이 접힌 백일 사진부터 아장아장 걷던 아기, 얼굴만 한 고구마를 든 유치원생, 제법 청소년 티가 나는 열두 살 초등학생까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는데 상인이 나를 돌려세웠다. 보아하니 사정이 딱해 보여서 사주기는 하는데, 원래 이런 불법은 안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내 손에 2만 원을 쥐여주었는데, 나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내 아들에게 더 좋은 일이 될 거라고 되뇌었다. 손에 쥔 2만 원을 쓰지 않을 영수증처럼 구겨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상인이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을 때 그에게서 휴대폰을 낚아채듯 빼앗았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초기화 버튼을 찾았다. 나와 아이의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다음 입력 신호를 기다리는 핸드폰 설정 화면처럼 멍한 눈빛으로 노숙인 쉼터로 돌아왔다.     

 

 그 밤에 사물함 밑에 머리를 넣고 누웠다. 나무 밑판이 보였다. 누군가의 낙서가 눈에 띄었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를 반복해서 써둔 글이었다.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글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반복되는 문장을 따라 눈동자를 내리깔며 그 끝에서 기대했던 한 문장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에 내가 원하는 답은 없었는데, 그 글의 끝에 쓰인 이름 모를 한 사내의 낙서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진짜 죽을 놈은 여까지 와서 고민 안 해, 븅신!     


 불면이 계속되었고, 어떤 남자가 쓴 낙서가 계속 떠올랐는데, 아침이 오면 보이지 않던 작은 새들이 덩굴장미 속에서 매번 후드득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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