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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 관중의 기립박수

오늘, 내게 일어난 일입니다.

by 고재욱

십만 관중이 내게 박수를 칩니다.

작은 손바닥들입니다. 볕과 바람이 만든 손길입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들은 왜 내게 박수를 보내는 걸까요.


사건은 이랬습니다.

삼 교대라는 핑계로 나는, 가을이 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가을이 나를 위해 준비한 공연들을 무시했습니다.

출퇴근을 위해 앞만 보며 운전을 했습니다.

거리에 나무들은 그저, 도로에 집중하기 위한 배경이었습니다.


나이트 근무 다음날에 아침부터 잠을 청했습니다.

방에는 두꺼운 암막 커튼이 해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고 그 틈으로, 애태우던 햇살이 방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나는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으로 스며든 햇볕이 견딜 수 없게 따듯했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이미 끝나고 있었지요.

키 큰 은행나무는 곧 업무를 끝낼 은행처럼 셔터를 내린 상태였어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껍질은 물기를 말리며 거친 상태였지요.

아직 내부에서는 업무가 끝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볕을 저장한 노랑 잎들이 퇴근 준비를 서두르는 듯보였습니다.


나는 나무 아래에 섰습니다.

수직 낙하를 준비하던 잎사귀들과 눈을 마주칩니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습니다.

떨어지는 것이 끝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키 큰 나무 아래에서,

노란 잎을 응원하는 하늘을 봅니다.

덕분에 노랑이 만든 선이 더 선명해집니다.


우연처럼 바람이 불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잎사귀들이 춤을 춥니다.

나비 떼 같기도 하고

얄팍한 내 마음 같기도 한 노란 잎들이 거대한 꽃으로 변합니다.

이 순간은 기억만으로 기억될 수 없음을 압니다.

나는 짧은 글을 메모합니다.

글을 쓰는 일이 무슨 가치가 있을지, 고민하던 요즘입니다.


그때 작지만 선명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볕과 바람과 마른 잎의 합창,

작은 손바닥들의 부딪침,

십만 관중의 기립박수가 내 속으로 들어옵니다.


가을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는데,

가을은 나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녀는 같은 볕을 받고도 제각각인 잎사귀를 보여줍니다.

십만 개의 잎은 제각각 품을 수 있는 해를 담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너는 너일 뿐이라고,

그녀가 노랑 박수로 나를 응원합니다.

너는 너대로 익어가라고,

십만의 작은 손바닥을 부딪칩니다.


할 일을 다한 은행잎이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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