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뭘 입어도 예뻐!
초등학교 1학년의 시간은 매우 빠르게 돌아간다.
기상과 동시에 비몽사몽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하는 아이들과 씨름하며 겨우 깨워 대충 먹이고 큰아이는 학교로 둘째와 막둥이는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을 한다.
사무실 정리를 하고, 마당에 나와 아주 잠시 일 하고 있으면 하교시간은 왜 그렇게나 빨리 돌아오는지, 알람소리에 맞춰하던 일 대충 정리해 두고 현장에서 30분 거리 큰아이의 초등학교 앞 드라이브 쓰루가 있는 커피 전문점으로 향한다.
매번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좀 줄여보려고 사무실에 사복도 가져다 놓았지만,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하다 보면 어김없이 시간에 쫓기듯 출발해야 해서 작업복 차림일 때가 더 많았다.
사복으로 갈아입으려면 세수도 좀 해야 하고 얼굴에 뭐 좀 찍어 발라야 하는데,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간식 등을 챙겨주고 다시 현장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 과정이 귀찮고 번거로움이 더 컸다.
마침 드라이브 쓰루가 있는 커피 전문점도 초등학교 후문에서 바로 횡단보도만 건너면 위치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커피와 음료 하나를 시켜 주차장에서 기다리면 아이가 차로 찾아온다.
커피값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음에도 아이와 나 둘에겐 아주 잠시의 행복이었다.
서른 초반의 나는 작업복 차림이 늘 부끄러웠다.
매일 저녁마다 들어가야 하던 대학교 앞은 젊음의 거리로 유명했다.
누구 하나 나의 차림을 신경 쓸 사람은 없는데, 나는 늘 쭈뼛거렸다.
모두가 잠든 심야시간에 작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의 안전과 학업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컸다.
각 동에서 수집된 재활용품들이 폐목장이라고 불리는 곳에 생활 쓰레기와 함께 모이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생활쓰레기를 수거하는 차량이 들어오기 전(보통 오전 7시)에 재활용품만 골라 장비를 이용해 차량으로 수거해 현장으로 돌아온다.
친정 부모님들은 새벽 4시경에 들어가 대충 골라서 나오셨는데, 당시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돈이 되는 물건(재활용이 되는)을 골라 나오려고 자정부터 최대한 골라서 가져왔다.
처음엔 둘이서 함께 고르다가, 어느 정도 내가 손에 익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남편은 내가 고르고 있는 사이 남편은 근처에 다른 빌딩을 들려 수거해 왔다.
그렇게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을 알차게 쪼개고 쪼개 썼다.
불 꺼진 학교의 밤, 고요함이 사방을 에워싸면 아주 작은 소리에도 흠칫 놀라곤 했다.
그래서 일부러 휴대폰의 음량을 키우고 음악을 틀어 놓고 재활용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젊음의 동네라 아주 가끔은 술 취한 불청객의 난동으로 경찰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 어느 날은 도서관 앞 재활용품을 수거하는데,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 둘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아... 저러고 살고 싶을까? 더럽다. 아니 왜 여기서 저 지랄이야 냄새나게!”
하면서 보란 듯이 내 앞에 가래침을 뱉고 건물로 유유히 들어간 적도 있었다.
화가 나는 건 둘째, 우선은 너무 창피해서 숨고만 싶었다.
신경 써서 매일 갈아입어도 땀에 찌든 냄새는 어쩔 수 없고 폐목장서 분리하다 보면 오물들이 묻는 경우도 종종 있던 터라 내 옷차림부터 살폈다.
평소엔 답답해서 끼지도 않던 마스크도 꺼내 뒤집어쓰고 대충 고른 재활용품 마대를 짊어지고 폐목장으로 향하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던지...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내가 너네 학교를 그리 치워주지 않으면 더러운 환경에서 너희는 학업을 이어가야 해! 분리수거를 잘해놨으면 그 시간에 내가 쓰레기통을 뒤져 재활용품을 골라내고 있었겠니? 나도 내가 너네 학교에서 받은 돈이 부끄럽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깨끗하게 일한 거야. 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 떠들기를!!!”
차마 그 학생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속으로 삼키고 말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자꾸만 위축되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커피전문점 주차장에 막 도착했을 때 큰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짐이 많아 횡단보도까지 나와달라는 큰아이의 부탁에 쭈뼛거리며 모자를 푹 눌러쓰고 횡단보도 앞까지 나갔는데, 때마침 길 건너에서 아이의 짐을 함께 들어준 같은 반 엄마를 만났다.
학기 초 만남의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직업을 이야기했던 터지만, 직접적으로 마주하니 부끄러웠다.
하필 작업복 차림일 때...
신호대기 중 그 짧은 시간에 좀 서둘러서 옷이라도 갈아입고 올 걸...
오늘 미술 준비물이 많았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자책했다.
“엄마~”
“어머~형석맘! 많이 바빠? 얼굴보기 왜 이렇게 힘들어!”
아이의 반가움 섞인 인사와 친구 엄마의 환영에 부끄럼 가득한 얼굴로 인사하고 차로 돌아왔을 때, 눈치가 빠른 큰 아이가 그랬다.
“엄마는 뭘 입어도 예뻐! 나는 엄마가 치마 입어도 이쁜데, 일할 때 입는 꽃바지도 예뻐”
쭈그리고 앉았다 일어서야 하는 자세를 많이 해야 하고 몸에 붙는 옷이나 땀 차는 옷은 절대 입을 수가 없어서 택한 옷이 몸빼 바지였다.
풍덩하고, 움직일 때마다 걸리적 거림 없는 세상 편한 바지.
그게 내 작업복이었는데, 나는 너무 창피했던 그 꽃바지가 예쁘다고 해주는 아이의 맑은 얼굴에 그제야 내 시름이 눈 녹듯 사라졌다.
사실 그 누구도 나의 차림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만의 자격지심.
그것이 가장 힘들게 했을 뿐...
지금도 여전히 나는 풍덩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땀이 잘 마르는 소재의 옷을 작업복으로 입고 허리에는 핸드폰과 작업할 때 찾아 쓰기 좋게 커터칼을 넣고 다니는 작은 힙쌕을 두르고 있다.
꼼꼼하게 바른다고 발라도 기미와 잡티가 광대 위로 거뭇하게 올라오고 팔뚝은 투톤이 되어버렸다.
세월이 흘렀다고 이제는 작업복을 입고 은행, 관공서, 식당까지 눈치 보지 않고 곧 잘 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길에서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마주치기도 했다.
슬그머니 아이들이 못 봤을 때 돌아가야 할까? 고민할 틈도 안 주고 우리 아이들은 밝은 얼굴로 엄마를 향해 하이파이브를 한다.
“우리 엄마야! 인사해!”
어떤 곳, 어떤 차림으로 있든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만 않으면 그걸로도 나는 내가 자랑스러워진다.
세상 그 어떤 시련과 고통이 와도 한방에 다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파워가 생긴다.
혼자 있을 땐 작아지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이 곁에서 지켜준다면 무서울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