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집 딸네미.

엄마와 같은 길을 가다!

by 십이월의봄날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세상 모든 딸들의 다짐처럼 나 역시 절대적으로 거부하던 유일한 일이 엄마처럼 사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 몸 아끼지 않고(가꾸지 않고) 무식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것.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엄마는 딱 그렇게 표현해야 했다.

늘 곱게 화장하고 단정한 차림의 엄마는 아빠가 고물상을 차리면서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찌든 때 가득한 작업복 차림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어린 내가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선크림조차 바르지 않고 챙모자 하나 쓰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일하던 모습. 게다가 새벽에 출근해 밤이 늦은 시간에 들어와 그나마 얼굴 마주하는 저녁 먹는 시간에도 밥 먹다 말고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생글생글 웃으며 하루 일과를 쫑알쫑알 나누던 곱던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뽀얀 얼굴이 검게 그을리며, 엄마의 말투와 성격 또한 투박하게 변해 갔다.

고만고만한 살림이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이고, 하루가 다르게 크던 우리 자매를 부족함 없이 키우려던 엄마의 노력과 희생이 철없는 내 눈에는 부정적으로만 보였더랬다.


900_20250307_100551.jpg 우리가 취급하는 종이류 중에 가장 고 급지(먹발)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아빠의 고물상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하필 작은 동네였고, 학교의 친구들이 모여 살던 말 많은 동네였다.

사실 종이류를 주로 취급하던 고물상이었음에도 순식간에 내 별명은 ‘더러운 고물상 집 딸네미’로 전락해 버렸다.

차라리, 못난이나 난쟁 이루자 똥(=난쟁이똥자루)으로 불리던 시절이 더 좋다 싶을 만큼의 놀림이 시작되었다.

고물상을 한다고 없이 사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의 그 시절. 그 동네는 참 지독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부모님에게 한없이 다정하게 굴던 이웃들이 막상 동네에서 고물상을 한다고 하자 그렇게 민원을 넣고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우리 부모님과 우리 자매는 변함없이 늘 그대로였는데, 이상한 프레임을 우리 가족에게 씌우고 순식간에 태도가 달라진 사람들...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의 무던한 노력으로 점차 민원은 줄어들고, 예전의 다정한 이웃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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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교에서 나를 대하는 몇몇 친구들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더 악랄해지고 심해졌다.

또래보다 왜소했던 나는 티 없는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다.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고 간 옷이 더럽다 수군거리고, 내가 지나가면 어디선가 묘한 향기 같은 게 난다며 키득거렸다. 앞에 앉은 아이는 의자를 최대한 뒤로 빼며 내 책상을 밀었고, 뒤에 앉은 아이는 책상을 앞으로 쭉 빼며 내 의자를 밀었다. 사이에 끼어버린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빨리 수업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혹시라도 선생님께 이르면 각오하라는 협박에 겁을 먹은 나는 그 어떤 도움의 요청을 하지 못했다. 중학교 3년의 기억이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나를 이따금씩 괴롭힌다.

그나마 모두가 괴롭혔던 건 아니라는 것. 못된 녀석들의 괴롭힘에 힘들어할 때면 함께 손 잡고 울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는 것. 그것이 나를 버티게 했던 힘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빠의 고물상이 규모가 커지고, 살던 동네를 벗어나 고물상들이 모여있는 외곽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자연스레 나를 따라다니던 호칭도, 놀림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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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고물상을 하는 엄마 아빠를 자랑스러워하지는 못했다.

늘 바쁘게 살고, 즐길 여유라고는 없는 사람들이라고 심지어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바쁘게 부지런히 살아냈던 모든 이유가 바로 ‘나’ 였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던 일을 내가 이어받아 운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한 치 앞도 모른다고, 물려받은 그 당시만 해도 그래도 나는 엄마랑은 다르게 여유도 즐기고, 딱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할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엄마처럼 마당에서 하루 종일 햇볕에 그을리며 절대 일 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900_20250203_171349.jpg 이렇게 섞여 있는 것들을 종류별로 선별해서 상위 단계의 압축장으로 보낼 수 있다.


15년이 흘렀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엄마와 다르게 살고 있느냐고?

엄마보다는 조금 편하지만 기본적으로 땀내 나는 작업복 차림에 사시사철 야외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종이도 고르고, 캔도 고르고,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작업철을 선별한다고 전동 드릴 손에 들고 피스를 풀고, 망치로 깨고, 전선 자르고 기판을 빼낸다.

그래도 엄마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나는 내 시간도 소중하게 꾸려 나간다는 것.

물론 지금의 여유도 기본적으로 부모님이 맨손으로 일궈놔 주신 것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이제야 느끼는 것들.

그때 내가 엄마를 참 외롭게 했겠구나!

엄마라고, 꾸미지 않고 매일을 독하게 일해야 했던 그 세월이 마냥 좋았을까!

같은 길을 걷고 나서야 아주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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